치유의글
언젠가 아이들이 크면 (크다는 기준이 몇살일지 잘 모르겠지만), 책장에 가득 꽂힌 여행앨범을 보며 나에게 물을 것 같다. 어린 우리를 데리고 왜 이렇게 여행을 많이 다녔냐고, 엄마는 언제 이런 사진을 다 기록해두었냐고 그리고 이 여행 엽서들은 왜 보내게 되었느냐고...
우리 부부가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 '전투육아 가족'
짐이 가장 많은 시기의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 나라 저 나라 잘 싸돌아 다녀서이다. 돈이 많아 그렇게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많아 그러는 것도 아니다. 이유는 정말 단순한데,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못해서 여행을 많이 다니게 되었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라고 하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 싶지만, 진짜 그 이유이다.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이 있다. 나에게 타인보다 굉장히 강한 두가지의 욕망덩어리가 있는데, 하나는 거실과 화장실이 있는 집에 살아보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동해서해남해 더하기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일이었다. '주거'에 관해서는 다른 때에 다시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하고 왜 여행 욕망덩어리가 생겼는지를 생각해보면...!
돈을 버느라 하루하루가 전쟁이고 전투였던 나의 엄마는 가족보다는 자신의 일과 인생이 먼저였던 욜로족 아빠 덕분에 젊은시절 그리고 오십이 넘도록 여행을 다녀보지 못했었다. 먼지 가득 쌓인 앨범을 넘길 때 낯선 곳에서의 사진에는 아빠 아니면 내 사진이었다. 그나마 기억나는 엄마의 여행은, 화왕산 갈대밭에서 삼촌과 함께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찍은 정말 젊었던 엄마 사진 한 장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엄마는 함께하지 않았지만 아빠와 함께 해외 패키지 관광 여행도 2번 다녀와 보고, 전라도 여행이라든지 소소하게 국내여행도 다녔던 것 같다. 딱 거기까지였다.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던 여행의 순간은 거기서 멈췄다. 입시라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한번쯤은 가졌을 인생의 목표를 위해 공부해야 했던 이유도 있고, 입시의 관문을 뛰어넘고 배낭여행의 낭만과 자유를 마음껏 즐기는 대학생활을 장학금 사수를 위한 생계형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인해 남들 다 가는 MT 한번 가보지 못했다. 당시 방학때면 배낭여행을 다녀온 흔적으로 도배되었던 싸이월드와 달리, 나의 월드에는 'ㄴr는 눈물ㅇl 난ㄷr. 슬퍼서 우는 것ㅇl ㅇr니ㄷr.'와 같은 다소 오글거리지만 신세를 원망도 했다가 새로운 다짐도 했다가 어떻게 해서든 지금의 악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인간의 고뇌만 담겨있었다.
가장 꽃피는 청춘일 때, 소소한 여행이라도 하지 못한 한이 서려서 일까. 언제나 여행을 꿈꾸었다. 그게 왜 되고 싶은지 아직도 미스테리인, 월급쟁이가 되면 꼭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고 직접 차를 운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맛있는 것도 사 먹고 경치 좋은 곳에서 인생샷도 수없이 남기리라 다짐했었다. 기회가 그리 빨리 오지는 않았다. 운전면허도 월급쟁이 신분이 되고도 2년이 더 지나서야 겨우 땄고, 차는 당연히 없었고 세계 여행을 마음대로 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그나마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하며, 남자친구도 동일하게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한 아쉬움의 욕구가 있었던 터라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가는 목표를 세우고 남들 다 간다는 일본, 세부, 홍콩 정도는 국민공통, 수학의정석을 풀어내듯 다녀왔다. 이것이 여행의 시작이었고, 그때의 남자친구는 남편이 되어 함께 가족을 이루고 그 욕망 덩어리는 더 커졌다.
사실 나의 어린시절 속 수 많은 기억 속에 '가족여행'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아무리 사진첩을 뒤져보아도 '가족'은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했을법한 '학급문고'의 가족소개라는 글짓기 주제에서 나는 우리 가족을 언제나 화목한 가족이라고 썼던 것 같다. 엄마는 요리를 잘 하시고, 아빠는 그 요리를 잘 드시고 나는 옆에서 리액션을 잘 하고라고 대충 썼던 것 같은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엄마가 요리를 잘 하셔서 아빠가 식사를 참 잘 하신 것은 맞는데, 화목하지 않았다. 학급문고 원고를 썼을 때의 나는 그것을 화목한 모습이라고 나름 선정했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 같지만,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나의 가족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진작에 눈치 채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때의 마음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가 요리를 잘했고 아빠는 식사를 잘 하셨다고 쓴 것을 보면 짐작이 간다. 그래, 잘먹는 일이 잘 사는 일 앞에 오니 먹는게 얼마나 중요한데... 화목함의 대표성을 갖기에 충분하지. 허허허. 그런데 참... 씁쓸하긴 하다.
다시돌아와, 나에게 '가족', '가족여행'은 없는 단어와 장면이었고 친구들이 주말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고 말 하면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아마 그 부러움과 내 마음의 결핍이 쌓이고 쌓여 아주 강력한 여행 욕망 덩어리를 탄생시켰을 것이다.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면 제동장치가 발동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육상선수가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종목이 장애물 달리기로 바뀌는 느낌이랄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가려고 하니 돈이 발목을 잡았고, 남들이 말하는 좋은 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공들이던 취준생 시절에는 남들보다 빨리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시간의 조급함이 나를 잡았다. 그래서 진로상담 해주던 업체 사장님의 달콤한 제안에 넘어가 인턴으로라도 시작해보다는 마음에 옆길로 새기도 했다. 대학시절 연애했던 오빠는 우리집의 형편과 부모를 들먹이며,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면 너랑 연애를 계속하기 어려울지도 몰라라는 말을 했었다. 결혼도 아니고 연애에 그게 왜 중요하지 싶은데, 그때는 우리 '가족'이 나를 가로막는 것 같았다. 이제는 가족이 사랑 마저도 못하게 하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구남친은 완전별로고, 지금 나의 남편은 매우매우매우 멋있다.
시간과 돈 때문에 수없이 망설였던 시간과 포기해야만 했던 그날들은 상처로 남아있다. 그래서 직장인이 되고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시간과 돈 앞에서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시작이 빚이었기 때문에 남들과 같은 속도를 낼 수는 없었지만 부지런히 애썼고, 계속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조금의 ‘여유’라는 것이 생겼을 때,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여행이었다. 일상을 벗어난 세계에서 돌아와서 갚아야 할 돈들이지만, 새로운 풍경과 맛을 탐닉하는데 들이는 돈은 아깝지 않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여행지에서의 편지와 사진을 기록물로 만드는 과정 속에서도 힐링을 맛보았다. 잊을만한 어느 순간에 다시 여행첩을 꺼내들고 추억에 잠기는 것이 나의 소확행이었다.
내 인생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역 중 하나. 여행을 갈지, 말지 선택하는 것, 그 과정만큼은 ‘망설임’없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고싶은 마음이 들면 엄청난 이유가 아니고서야 몸을 움직였다. 어떤 날은 왕산짬뽕이 먹고 싶다는 핑계로 당일치기 군산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경기도 광주 한적한 계곡에 발 담그러 가기도 한다. TV속 여행풍경 한 장면에 매료되어, 싱가폴로 떠나 아기띠를 하고 자전거 투어를 하기도 하고 샤먼이라는 낯선 도시에 가서 낯선 풍경을 즐기고 오기도 한다. 심지어 집을 팔고 아이 둘을 데리고 한달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남들은 짐도 많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힘들게 여행을 어떻게 다니냐 묻지만, 나에게는 그 힘든 여정마저도 추억의 한 꼭지가 되어 너무 소중하다. 훗날 나의 두 아이들이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순간이 왔을 때, 엄마아빠와 함께 했던 여행의 시간들이 마음을 바로 세우는 지표가 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살지 않은가. 행복했던 기억이 많은 만큼, 아픔을 견딜 힘도 많을 거라고 믿어본다.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들이 많은 가족이 되고 싶었다. 그 날의 여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장소, 그 여행지를 갈 때마다 먹었던 우리 가족만의 음식 등 같이 추억할 거리가 많은 가족이고 싶었다. 아직 돌도 안 된 아들과 '왜요와 아니오' 병에 걸린 다섯살 딸을 데리고 한달 유럽여행을 결심하게 된 것도 언젠가 꺼내 볼 우리 가족의 추억 한 피스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뭐... 더 큰 이유는 그냥 내가 가고 싶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솔직하게.
아무튼, 우리 가족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에서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사진을 들춰보는 것도, 지나온 사건에 대한 감정을 이따금 더올리는 것도, 함께 먹었던 맛있는 음식에 관해 이야기 나누며 기분 좋았던 그날의 감정을 나누는 것도 나의 취미이자 특기이니까...!
아이가 어려서 기억도 못할 여행에 그리 큰 돈을 들여 여행을 다니냐고 물었던 이들도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기억한다. 여행지에서 인상깊었던 순간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왜 좋은지 또 무엇이 기억에 남는지를 이야기 나누다 보니 여행의 순간을 제법 잘 기억하고 있다.
나의 역할은, 그 기억이 희미해지지 않게 - 아니 희미해지더라도 기록의 흔적을 보고나면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남기는 것일테다.
부지런히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