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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엄마 생활

#자기만의밤 #흔한마음

21년 8월 5일 목요일

요즘 나의 힐링 포인트 중 하나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를 보다 송화와 익준의 대화에 꽂혔다.



또 논문을 쓴다는 송화에게 익준이 묻는다.

익준: 논문 주제가 뭔데?

송화: 엄마가 일 얘기를 물어보면 왜 화가 많이 날까?

(함께 웃는다)

익준: 근데 너도 그러냐? 나도 그런데.

송화: 진짜 신기하지?

        , 이상하게 엄마가  얘기를 물어보면 

        대답도 하기 싫고 

        짜증도 나고 전화 끊기 바빠, 전화 끊기

        근데 전화를 끊잖아?

        그럼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와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하잖아?

        그럼 또 일 얘기를 하거든 그러면 또 화가...


함께 TV를 보던 오빠와 격하게 공감하며 대화를 나눴다. 정말 왜 그런 걸까 하고.


엄마와 나의 통화 속 대화를 떠올려봤다.


잔소리 같지 들리겠지만, 엄마는 늘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니까.

너야 뭐, 항상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걱정이 되니까.

내가 말 안 해도 다 잘하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걱정이 되니까.


맞다. 엄마는 걱정이 되니까 자꾸 묻는 것이고 당부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정말 잘 알면서도, 저 말만 나오면 괜히 한숨부터 나고, "알아요~ 제가 알아서 한다니까요."로 대답하기 일쑤였다. 그냥 "네"라고 짧게 대답만 해도 될 일을. "그만 이야기하세요~" "지난번에도 이야기하셨었잖아요~" 등 괜히 한마디 더해 엄마 마음에 상처를 내곤 했다. (상처인 거 알면서 그랬냐... 으이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는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달라졌다. 적어도 "제가 알아서 한다니까요."라고 네가지 없이 말하지는 않는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잘 챙길게요." 이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짓는다.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나이먹음에 따라 조금 엄마에게 매너가 생긴 것일까.


아마도 내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가빈아, 엄마가 매번 이야기하잖아~

가빈아, 이렇게 하면 위험하니까 안된다고 하는 거야~

가빈아, 그렇게 티비 보면 눈도 나빠지고 어깨랑 등도 굽어지는데~

아휴- 엄마 그만 좀 이야기해.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잖아. 나도 다 알고 있는 거야~


그렇다. 딸에게 한 방 먹었다. 어른들이 늘, 너 같은 자식 낳아봐야 안다고 하더니 정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요즘 들어 부쩍 바른말 고운 말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나의 말에, "지난번에도 말했잖아~" "그만 이야기해도 돼~ 나도 다 아는 거야."라고 말하는 내딸가빈이. 가끔 뒷목 잡을 때가 있고, 또 아직 나이도 어린 딸이 나의 말에 틀린 것 없이 대구를 정확하게 하니 할 말이 없다가도 "알면서 그러는거냐?" 치사하게 되받아치고 싶을 때도 더러 있었다. 가빈이와의 이런 대화 경험이 몇 번 있어서인지 가급적 엄마와의 통화에서 매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엄마 모드일 때와 딸 모드 일 때의 나는 다르다. 가빈이가 내게 따뜻하게 말해줬으면 하는 엄마였다가, 나의 엄마를 마주할 때는 무뚝뚝해지는 딸이 된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엄마와 딸의 심리학: 서운한 엄마, 지긋지긋한 딸의 숨겨진 이야기

딸은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엄마와 딸 사이

엄마와 딸 사이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와 딸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제목이 있다니...)


혹시나 해서 교보문고에 엄마, 딸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전 세계적(?)으로 엄마와 딸 사이를 개선하기 위한 안내서가 많이 있다. 저 중에 읽어본 책도 있으나, 크게 도움은 되지 못하였고 결론도 답도 없었던 기억이 난다.


송화가 농담으로 논문 주제로 [엄마가 일 얘기를 하면 왜 화가 많이 날까]를 삼았다 이야기 했지만, 누군가는 정말 명확한 인과관계를 찾아내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해결책까지 더해주면 좋고.


가끔 가빈이와 나 사이의 찌릿한 감정과, 신경전이 일어날 때면 아찔해지기도 한다. 나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경험들이 이 아이의 자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텐데, 나로 인해 또 나의 말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혹은 트라우마가 생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가끔 들기도 한다. 조심해야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일부 나의 안 좋은 모습이 자꾸만, 나와 나의 딸을 찌르는 것만 같아서 슬기로워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엄격했던 엄마 앞에서 어리광을 부릴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 그래서 무엇이든 혼자 알아서 척척 잘 해내야만 했고, 애교 같은 것은 부릴 줄도 모르고 받을 줄도 모르는 아이였다. 그렇게 완성된 내 모습 중 일부를, 어쩌면 나의 아이들에게 기준이 되어버렸고 나 또한 아주 엄하고 무서운 엄마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슬기로운 엄마 생활을 위해, 계속해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한다. 그리고 딸과의 잦은 다툼 속에서도 왜 그런 감정이었는지를 이야기 나누려 노력한다. 각 자의 모습을 바꾸기는 힘들지만, 왜 그렇게 뾰족한 마음을 나눴는지 감정을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각자 다름을 이해하며 살아가는 힘을 기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엄마와 나는, 그런 대화를 아직도 나누지 못하고 있기에...

나의 딸마저도 서로의 감정을 숨기고, 불쾌감만 쌓여 회피하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도 슬기로운 엄마 생활을 위해 애쓴다.



그런데 말이죠,

딸들이 엄마에게 그렇게 냉정하고, 차갑게 구는 이유는 그냥 나와 같은 사람이어서는 아닐까?

아... 쓰고 보니 이것도 답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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