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중 1994년]
이희중 화가와 함께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반을 함께 다녔었다. 2004년에 작고하신 고 홍종명 화가가 당시 미술 선생님이었다. 미술반에 7-8명 정도가 고 1 신입생으로 들어왔다. 이들 중 이희중 화가, 도흥록 작가는 어찌 된 일인지 일찍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토요일 오후 대광고등학교 체육관 3층의 미술반에서 데생을 할 때 창을 통해 드려 진 햇살이 평온하고 부드러웠다. 석고데생을 하다 보면 날이 저무는지도 모르고 그리곤 했다. 신기하게도 그려지는 석고상 얼굴을 보면서 혹시 미술에 재능이 있는가 하고 놀라기도 했다. 토요일마다 미술반에 와서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하는 것이 너무 좋았던 시절이었다.
홍종명 선생님은 하루 종일 캔버스에 황토색 칠을 하고 다시 칼로 물감을 긁어내는 작업을 반복하셨다. 선생님이 왜 그림은 그리지 않고 황토색 물감만 축내시는지 의아해했었다. 그 황토색 캔버스에 진한 갈색으로 발이 삐쭉삐쭉 튀어나온 눈이 큰 새를 주로 그리셨다. 홍종명선생님이 유명한 화가이신 것은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그런 줄 진작에 알았다면 진한 갈색의 새 그림 한 점 정도는 받아 둘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렇게 평화로운 그림 그리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당시 학교에서 선배가 후배를 괴롭히고 심지어 구타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미술반에서도 이런 문제가 있었다. 특히 나는 중학 때 재수를 하여 고등학교에 들어왔기 때문에 고2 중에 중학 동창이 있기까지 했다. 고2 선배가 동기들을 괴롭히는 것에 더 참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한 명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키 작은 미술반 동기 한 명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를 참지 못하고 내가 나서서 선배에게 그만두라고 항의하다가 선배와 주먹질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음 날 미술반 고3 회장에게 자초지종을 변명하였지만 선배와 주먹다짐을 했으니 상황여부와 관계없이 미술반을 그만두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희중 화가가 독일에서 귀국한 후 교수로, 화가로 활발한 활동을 할 때인 2000년 경에 그림 한 점을 구입하기 위해 만난 적이 있다. 이희중 화가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고1 때의 이 사건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희중 화가가 말하길 내가 선배 구타에 항의하며 미술반을 그만둔 이후 고2 선배들의 괴롭힘과 구타가 없어져 지내기가 좋았다고 했다. 선배와 싸운 일이 자랑도 아닌데, 무슨 영움담인 것처럼 함께 회상을 하기도 했다.
이희중 화가는 당시 벽제 근처 큰 길가에 작업실로 나를 초대하여 화실을 구경시켜 주었다. 이때 1994년에 그린 그림 한 점을 받게 되었다. 궁중화가이셨던 선대의 그림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도 거실에서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그림을 보면서 자주 이희중 화가를 회상하곤 한다. 이희중 화가의 작품은 그의 전통과 닿아있는 정신세계를 담아내면서도 미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희중 화가가 남긴 작품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우리와 함께 남아 있을 것이며, 계속해서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위로를 전해줄 것이다.
작품들을 통해 이희중 화가의 삶과 예술을 기억하며, 함께 공유하는 기억 속에서,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