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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곧 Sep 07. 2022

차례상 간소화

성균관은 금년 추석을 앞두고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간소화 방안의 핵심은 두 가지다. 전을 부치느라 더는 고생하지 말라는 것과 음식 가짓수는 최대 9개면 족하다는 것이다.


표준안에 따르면 간소화한 추석 차례상의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 김치, 과일, 술 등 6가지다. 여기에 조금 더 올린다면 육류, 생선, 떡을 놓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성균관 측은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을 차례상에 올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기름진 음식에 대한 기록은 사계 김장생 선생의 '사계 전서'에 나오며, 밀과나 유병 등 기름진 음식을 써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김장생은 이이의 제자이자 서인의 영수였고 예학을 집대성한 분이다. 낮은 관직에만 있었으나 조선 문묘에 배향된 18현 중 한 명이다. 특히 예학에 기여한 바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이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현급이며,  가정례 정착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실제로 원래 유교에서는 차례상과 제사상을 구분하였으며 차례상은 간단히 차와 술, 다과만을 올리고 제사상은 화려하게 각종 전통음식을 예절에 맞춰 올렸다 한다. 따라서 차례상을 제사상과 달리 간소하게 하는 것을 일반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차례상이 어떤 의미와 목적으로 차려지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유교의 의식과 전통이 올바르게 전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성균관에서는 지난 세월 꾸준히  표준 제사상, 표준 차례상을 발표하면서 가정례 간소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도 성균관에서 김장생의 의례를 들어 차례상 간소화를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간소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애초에 차례나 제사를 하기 싫을 뿐, 그 규모를 줄여서라도 하고 싶은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제사를 싫어하는 층은 제사를 작고 쉽게 지내는 방법을 받아들이면서도 내심 안 지내도 되는 이유를 찾고 있을 것이다.


또한 차례나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유가의 주장에 큰 효과가 없을 수 있다. 조부모님, 부모님께 드리는 정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유가가 나서 그 정성을 간소화하라고 하는 데는 큰 감흥이 없을 것이다.


자칫 제사를 싫어하는 층만 고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이러한 간소화 논쟁을 성균관 같은 유학의 정종에서 나서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예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책으로 출간한 선생님에게 여쭈어 볼 기회가 있었다. “예는 어떤 것입니까? ” 이에 대해 “차례나 제사는 중요한 예이지만, 예는 깨닫고 느낀 것에 따라서 행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질문을 드릴 때는 예는 엄격한 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는 답변일 것이라고 짐작했었는데, 예측과 다른 답변을 주신 것이다.


돌아가신 부모님 등 조상님에 대해 어떤 정성을 담아 예를 행하는가는 부모님 등 조상님에 대해 깨닫고 느낀 만큼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러한 예를 행할 때 그 결과가 사랑이라고도 말씀하신다.


제사 지내기를 싫어하는 젊은 세대가 수백 년 동안 현상으로 나타났겠지만,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은 이 예가 법으로만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차례와 제사를 정성껏 잘 차려서 손주부터 할아버지까지 가족들이 둘러앉아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조상을 회고하고 가족 구성원의 현재와 미래를 얘기하는 것이 곧 예를 행하는 것이고 가족 간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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