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천히바람 Jan 28. 2024

인연의 유효기간

동갑내기 친구들 중 첫 장례식인 둘리를 보내고 제주로 돌아왔다. 친구의 슬픔은 남겨진 가족의 슬픔에 비할 바 아니었다. 몇십 년 만에 본 친구들은 장례식장에 모여서도 자기 근황과 관심사의 말을 쏟아내었다. 아직은 죽음과는 멀다고 생각하는 살아남은 자의 오만함을 보았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하나이겠지만.


예전에 친했던 친구들을 모처럼 만났지만 반갑다거나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검증이 끝나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않을 사람들에게 마음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한때 친했다 훅 멀어진 A는 우리 아이들의 근황을 체크했다. 첫째가 어느 지역에 사냐는 이상한 질문을 하여 취업된 직장 이름을 말했더니 "아니, 지역이 어디냐고?"라는 이상한 질문을 했다. 그다음은 둘째가 어디에 취업했는지 물었다. 흔한 축하 인사 한마디 없이 전공이 같은 자신의 조카에게 알려주겠다고 했다. 내 아이들의 개인정보를 당당히 물을 만큼 이제는 친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혹시나 변했을까 기대했는데 역시나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했던 2,30대는 지났다. 변화를 인정해야 한다. 음식은 상한 즉시 버리면서 사람과의 유효기간에는 미련을 많이 가졌다.


때로는 저명한 철학자의 가르침보다 드라마가 훨씬 사실적이다. 특히 여자들의 모임은 TV드라마가 철학보다 정확성이 뛰어나다. 속이 허한 사람일수록 우아한 표정과 교양 있는 말투 속에 내가 더 잘났다는 내용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말투와 겉을 둘러싼 허울에 속아서 뒤늦게 유효기간이 지났음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모든 인연에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다. 마침표는 쉼표와 헷갈리지 말고 내가 알아서 잘 찍어야 한다.


몇 년간 소송을 했던 치가 떨리는 자의 부인이 느닷없이 사과한다고 밤 9시에 찾아왔다. 피가 거꾸로 쏟던 시간도 지났고 그들의 인간성도 잘 보았기에 그녀의 사과는 별 의미도 없고 굳이 왜 왔는지가 더 의문인 상황이었다. 갑자기 사과를 한다니 순간 어디가 아픈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본인이 아프다면서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사과한다고 했다. 그럼 그 당시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가? 사과에도 타이밍이 있다. 본인이 아프니 자기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이 사과는 아니다. 그것은 상대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제는 사과도 별 의미 없다고 가지고 온 홍삼도 받지 않겠다고 건강이나 잘 돌보라는 예의상의 말로 돌려보냈다. 유효기간이 이미 끝난 것이다.


삶에서 아쉬운 인연에 혹시나 기대를 걸었지만 다 부질없었다. 친구들은 환경이 바뀌면서 미처 몰랐던 본성이 나타났고 예전에는 안 그랬다는 이상한 착각에 빠져 원치도 않는 기회를 주었다. 환경에 따라 변하는 인간성은 본인의 환경이 바뀌어야만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본인들이 해결하든 말든 알아서 하는 것이고 나는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음을 빨리 자각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잘 가라, 둘리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