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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Mar 01. 2024

버려야 할 것의 공유

제대로 살아가기 1

여기저기 동시다발로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하룻밤 자고 나도 나아지지 않는다. 손가락, 손목, 발목, 무릎까지 아픈 몸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내 몸을 어르고 달랜다. 놀라운 육체의 노화속도에 비해 정신은 도대체 철이 들지 않는다. 여전히 새 물건을 보면 갖고 싶고 몇 년 동안 쓰지 않는 것을 과감히 버리지도 못한다. 2024년, 정신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을 주고자 결심했다. 구체적으로 정리부터 시작한다.


정리의 범위는 물건과 사람과 음식, 공간을 모두 포함한다. 우선 커피부터 줄이기로 했다. 갱년기와 불면증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닌다. 새벽녘엔 온갖 꿈을 꾸면서 반은 깨어있다. 푹 잠을 자본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하루 두 잔을 마시던 커피를 오전에만 두 잔으로 바꿨다.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어도 여전히 숙면이 불가능했다. 하루 한 잔 아침에만 마시기로 했다. 가끔은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잠들기가 조금 수월하다. 커피가 뭐라고 줄인다.


집을 둘러보니 빈 공간이 없다. 물건들로 가득 채워진 벽에서 여백의 미를 찾기 어렵다. 거실 한 면에는 기다란 소파가 그 맞은편에는 텔레비전이 있다. 소파 앞에는 탁자가 버티고 있다. 겨우 빈 면인 거실창에는 커튼과 블라인드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동양화의 여백의 미가 필요하다. 비어있어 숨 쉴 수 있고 채우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그 여백이 정말 필요하다. 화분도 치운다. 굳이 내 집안에서 꽃을 볼 이유는 없다. 이웃집 마당의 꽃을 얻어 내 마당을 가꾸려는 욕심도 내려놓았다. 즐기는 것이 아닌 내 것으로 채우려는 욕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필요 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것을 나눔 했다. 중고장터에 내놓으니 여행가방이 몇 분도 되지 않아 나눔이 되었다. 언젠가 쓸 수도 있다고 차곡차곡 쟁여 놓았지만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가득 걸린 옷을 바라본다. 입을 일도 없는 옷들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Quora는 누구나 질문과 답을 할 수 있는 사이트라고 한다. 이곳에 유명한 임상심리학자인 조던 피터슨 교수가 정성 들여 답을 달았더니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 반응을 참고하여 책을 쓰고 유튜브도 하며 타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가 나의 질문인 버리든 비우든 떠나보내야 할 것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나눠주면 그들이 내게는 조던 피터슨이니 참 고마울 것이다.


전기도 전화도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네팔에서 하루에 필요한 물을 길어 산을 열 번이나 오르락거려야 했던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가 1998년 서구 세계에서 처음 명상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서양 사람들은 이 편리함으로 삶에 큰 만족감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들도 여전히 많은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단한 명상가가 아니더라도 물질이 정신의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보통사람도 잘 알고 있다.


버리고자 마음먹고 눈을 부릅뜨고 온 집안을 둘러보았다. 만만한 냉장고부터 살폈다. 시들어가는 배추를 꺼내 된장에 조물조물 무쳤다. 남은 양념장도 부었다. 이파리가 시들어가는 대파를 정리하고 싹이 난 양파도 채 썰어 활용했다. 여러 그릇에 흩어진 김치도 잘 정리했다. 이만하면 오늘 냉장고 비움은 우수하다. 내일은 욕실이다.


인간관계의 정리도 떠올렸다. 예의상, 시간 때우기 식의 전화도 줄이고자 한다. 당장은 힘들지만 많이 안다고 모두가 친구는 아니지 않나. 세 사람만 모여도 그중 덜 친한 하나가 있기 마련이다. 타인의 근황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마음아 너는 지금 무엇을 하면 편안하니?라고 자문자답하고 싶다.


티베트어로 명상을 '곰'이리고 하는데 이는 '친해지다'라는 뜻이란다. 명상은 마음을 알게 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름을 묻고 인사를 하며 궁금한 것을 서로 질문한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시간을 들여 익숙해진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신체적인 느낌들을 다정하게 맞아들이는 수행을 '마음 챙김'이라고 한다고 한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 것을 알아차린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젊은 날은 타인에게 잘 보여지는 나를 만들고자 사회의 기준을 따랐다. 외모는 날씬하고 성격은 쿨해 보이는 것, 아는 사람이 많고 나에 대해 좋은 평을 남이 하도록 만드는 그런 쓸데없는 것들에 치중했다.


그러다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알게 되었다. 회사는 우물이었다는 것을. 지금까지 회사에서 얻은 소중한 인연은 열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한다. 내 남은 인생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고자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정확히는,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이제라도 나와 몹시 친해져야겠다. 그래야 나잇값을 하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겠는가. 인연의 정리를 위해 오늘은 여기까지 자각했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잘 알지 못하는 인연도 조금씩 차례차레 정리하자.


다시 읽지 않을 책들도 보내야 한다. 빽빽하게 꽂힌 책장보다 비어있는 책장이 훨씬 친근하다. 오늘 비운 냉장고는 안이 훤히 보여 된장이 떨어졌음도 알았다. 비워야 보이는 것이 정말 맞았다. 자, 그럼 두 눈을 부릅뜨고 버리든 비우든 나누는 정리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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