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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치군 May 02. 2016

미국, 쿠바/ 어네스트 헤밍웨이,
그의 흔적을 찾아서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장소들 - 키웨스트, 아바나 그리고 오크 파크.


헤밍웨이를 제대로 접하게 된 건 대학생 시절 영어공부를 하면서였다. 고등학생 때 추천도서 목록에 헤밍웨이의 책들이 올라있었지만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라는 책이 '문체가 간결하여 영어 공부하기 쉬움'이라는 누군가의 조언에 선뜻 원서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었다. 당시 영어실력에 비해 생소한 단어들이 많이 나왔던 터라 영영사전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영한사전까지 끼고서 읽어야 했다. 아침 일찍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알 수 없는 흡입력 때문에 책을 놓지 못하고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책을 덮을 수 있었다. 그렇게 분량이 긴 책은 아니었지만, 사전과 함께 읽는다는 건 그만큼 시간 소비가 큰 행동이었다.


그렇게 그의 책에 빠져든 뒤에, 학교 도서관에서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등과 같은 대표작들을 원서로 연달아 읽었다. 방학 기간 중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한창 교환학생 준비를 위해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책이 노인과 바다만큼 매력적으로 다녀온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이후의 여행에 있어 헤밍웨이라는 인물이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된 데는 변함이 없었다.




@Road to Key West
@Sunset at Key West
키웨스트(Key West)


헤밍웨이의 흔적을 따라갔던 첫 번째 여행은 미국 플로리다주 남단에 위치한 키 웨스트(Key West)였다. 마이애미에서 멋진 1번 해안 도로를 따라 4시간을 달리게 되면 도착하는 작은 섬으로,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휴양지이기도 하다. 키 웨스트에 도착해서 호텔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섬 남서쪽에 위치한 헤밍웨이 뮤지엄이었다. 헤밍웨이가 키웨스트에 있을 때 머물면서 글을 쓰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곳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 등의 작품이 쓰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 시절 헤밍웨이는 겨울은 키웨스트에서 보내고, 여름은 와이오밍, 몬타나 같은 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캔자스 시티(Kansas City) 역시 헤밍웨이가 많은 시간을 보낸 도시였다.



헤밍웨이 뮤지엄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 내부를 둘러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워낙 방문객들이 많다 보니, 그룹 투어가 계속해서 이어져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많은 사람들이 한 그룹 안에서 함께 움직여야 하다 보니, 집 안에서 움직일 공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입장할 때 한국어로 된 안내문도 나눠줬기 때문에, 설명을 조금 듣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장소로 먼저 이동했다. 기본적으로 가이드 투어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그룹을 자유롭게 놔두는 분위기였다. 


덕분에 조금 앞서 이동을 하면서 집의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여러 공간의 사진을 손쉽게 찍을 수 있었다. 그의 작품들에 대한 전시가 꽤 많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헤밍웨이와 관련된 안내나 전시되어 있는 책 등은 일부에 불과했고, 그가 어떤 환경에서 머무르고 글을 썼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도록 잘 복원되어 있었다. 동선은 이렇게 건물 내부를 순서대로 들여다 보고, 출구로 이어지는 정원을 가볍게 걸어보는 형태로 짜여 있었다. 



헤밍웨이 뮤지엄의 또 다른 특이점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고양이들이었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곳의 고양이들이다 보니, 사람들이 주변에 다니는 것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헤밍웨이는 생전 고양이를 좋아했고, 그 고양이들에게 유명인사의 이름을 붙이곤 했었다. 뮤지엄에서는 그 전통을 그대로 따라 고양이들에게 유명인사의 이름을 붙였는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존 웨인(John Wayne),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등이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고양이들은 뒤뜰의 고양이 묘지에 묻혔고, 정원을 둘러보면서 그 묘지도 살짝 둘러볼 수 있었다. 



키웨스트에서 머무르는 며칠 동안, 헤밍웨이가 자주 들렸다는 슬로피 조스 바(Sloppy Joe's Bar)에 여러 번 들렸다. 저녁나절이면 언제나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헤밍웨이 팬들의 성지처럼 여겨져서인지 언제나 밤이면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는 식사와 함께 칵테일, 그리고 맥주 등을 마실 수 있었는데 헤밍웨이의 영향인지 모히토를 마시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았다. 바 안에 들어와서 공연을 보며 헤밍웨이가 즐겼던 시간을 잠시나마 느껴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주변의 다양한 바들을 다니며 다양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Havana
아바나(Havana)


쿠바를 방문했던 건 사실 꼭 헤밍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쿠바의 올드카와 라틴 음악(그중에서도 살사), 체 게바라와 같은 요소들의 복합적인 매력에 끌렸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멕시코를 여행하다 즉흥적으로 결정하게 된 쿠바 여행은 여태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으로 남았고, 사실 올해에도 다시 한번 쿠바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번 여행에서 놓쳤던 것들, 그리고 이번에는 쿠바에서 차를 빌려서 한 번 돌아볼 예정이기 때문에 기대되는 것들이 더 많다.


꽤 많은 나라들을 여행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는 다른 나라들과는 확실히 차별되는 이국적인 여행지였다. 현재는 미국의 금수조치가 풀렸지만,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덕분에 다른 나라에서는 사라지고 없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금수조치 해제 이후 수많은 미국 여행자들과 자본이 몰려들면서, 3-4년 정도면 우리가 알고 있던 모습의 쿠바는 사라질 거란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여행을 서둘러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헤밍웨이가 주목적은 아니었더라도, 하바나에서 꼭 해야 할 체크리스트에 올라 있음에는 분명했다. 헤밍웨이와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만큼, 헤밍웨이가 가장 즐겨 찾던 두 술집을 찾았다. 첫 번째는 라 보데기따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로 모히또(Mojito)로 유명하다. 1층은 바이고, 2층은 식당으로 되어 있었는데 간단하게 식사를 한 직후였던지라 바에 앉아서 모히토를 주문했다. 헤밍웨이 덕분에 유명해진 곳이어서 그런지 모히토를 마시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다. 모히토의 맛은 이미 알고 있는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뭐랄까 그 느낌과 분위기는 달랐다. 아마도 바로 뒤에서 연주하고 있던 밴드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살짝 취기가 오른 상태로,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플로리디따(Floridita)로 향했다. 이곳은 모히또가 아닌 다이끼리(Daiquiri)를 마셨던 것으로 유명한데, 역시 이곳에서도 한 잔 주문하는 것을 놓칠 수는 없었다. 연달아서 마신 칵테일 2잔에 기분 좋게 취해, 바 안에 있던 헤밍웨이의 동상을 부여잡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바 안에서 옆에 앉아있던 다른 여행객과 헤밍웨이에 관한 이야기를 몇 마디 더 나누다가 함께 암보스 문도스 호텔(Ambos Mundos Hotel)로 향했다. 


암보스 문도스 호텔은 헤밍웨이가 쿠바에 도착해서 처음 머물렀던 곳으로, 그가 투숙했던 5층의 방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호텔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집필을 시작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그의 물건들은 이미 아바나 외곽에 있는 박물관으로 이전되어 딱히 볼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호텔 객실 하나를 전시관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전시 공간이 넓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낀 것 같기도 했다.



헤밍웨이 박물관은 아바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다른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보니 까삐똘리오(Capitolio) 앞에서 택시나 버스를 이용했다고 되어 있었지만, 버스의 행선지 표지판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근처에서 음악을 듣고 있던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쿠바 현지인에게 말을 건네니, 흔쾌히 어느 버스를 타고 알려줬을 뿐만 아니라 버스가 올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줬다. 버스비는 현지 화폐인 쎄유뻬(CUP)를 이용해서 탔는데, 100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아바나 외곽, 샌프란시스코 데 파울라(San Fancisco de Paula)에 위치한 박물관은 쿠바 정부의 관리 하에 운영되고 있어서인지 상당히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너무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어서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장소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는데, 아마도 복원작업을 진행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헤밍웨이는 이 집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그리고 '노인과 바다'의 집필을 마쳤다. 특히 노인과 바다는 소설 속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쿠바의 작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헤밍웨이의 취미 덕분에 집 곳곳에는 여러 동물들의 박제가 전시되어 있었고, 거실과 작업실 그리고 화장실까지 책이 없는 곳이 없었다. 쿠바의 헤밍웨이의 집은 키웨스트만큼이나 그의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정확히 어느 정도까지 과거의 모습인지는 불분명했지만, 적어도 잠깐 살다 간 느낌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집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지만, 창문을 통해서 거의 대부분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집 외부의 경우에는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었다.



이 헤밍웨이 박물관의 가장 인상적인 전시물은 바로 헤밍웨이의 배 삘라르(Pilar)였다. 집 뒤편의 공간에 전시된 이 배는 헤밍웨이가 1934년에 구입한 것으로, 플로리다와 쿠바를 오가며 낚시를 하는데 이용되었으며 노인과 바다를 집필하는 데 있어 큰 영감을 불어넣었다. 소설 속 배가 이 삘라르는 아니지만, 헤밍웨이가 낚시를 하던 모습과 노인이 낚시를 하던 모습을 같이 상상해보면 일부 겹치는 듯하다.



박물관을 떠나 마지막으로 작은 어촌마을 꼬히마르(Cojimar)로 향했다. 역시나 박물관을 갈 때처럼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버스를 이용했는데, 다들 어찌나 친절하던지 내가 혹여나 내리지 못하고 지나칠까 봐 사람들이 계속해서 얼마나 남았는지 계속 체크해줬다. 그러고 보면 아바나 시내에서 만났던 관광객들에 찌든 사람들을 제외하면, 쿠바의 다른 도시들과 아바나 외곽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친철하고 배려가 넘쳤다. 쿠바 특유의 낙천적인 모습은 길 어디에서나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증명했다.


꼬히마르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마을의 항구 쪽에는 헤밍웨이의 동상이 '이 곳이 바로 노인과 바다의 무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기는 했지만, 어촌마을의 느낌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꼬히마르에도 라 떼라싸(La Terraza)라는 헤밍웨이가 즐겨 찾던 레스토랑이 있었다. 이곳에도 역시 헤밍웨이와 관련된 사진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듯, 역시나 모히또 한잔에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꼬히마르를 떠나야 했다.



@Birthplace of Ernest Hemingway
오크 파크(Oak Park)


시카고(Chicago)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근교의 마을 오크파크(Oak Park)를 찾은 건 사실 헤밍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국 건축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프랭크 로이트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집과 작업실이 있다는 것이 더 컸다. 펜실베니아주 남부에 위치한 낙수장(Fallingwater),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 등과 같은 인상적인 건물을 남긴 그의 초창기 작품들을 볼 수 있어 건축과 관련하여 시카고를 찾는 사람들이 꼭 들리는 목적지다. 당연히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집과 작업실 투어, 그리고 마을 곳곳에 위치한 직접 디자인한 건물들을 찾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헤밍웨이를 잊지는 않았다.



헤밍웨이의 생가에서는 헤밍웨이 자신보다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헤밍웨이가 어떤 가족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떤 계기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생가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었는데, 헤밍웨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더욱 애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와 표정으로 우리에게 이 집을 설명해줬다. 의사였던 아버지와, 음악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헤밍웨이는, 잘 교육받고 사랑받으면서 큰 사람이라는 걸 특히 강조했다.



오크파크의 아트 센터에는 헤밍웨이 박물관도 있었다. 사실 이 곳에서 특별한 작품을 집필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생가가 위치한 곳이기 때문에 박물관이 있을만한 이유는 타당했다. 이 박물관은 헤밍웨이의 특정 부분에 집중하지 않고, 그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었다. 그의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과 아프리카에서 생활, 그리고 작품들과 관련된 물건들까지 전시되어 있어, 헤밍웨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를 얻기에 훌륭했다.




아직 헤밍웨이에 관련된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헤밍웨이를 목적으로 여행을 다니지는 않았기 때문에, 언제 또 방문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 갸아할 곳 리스트에 미주리의 캔자스 시티(Kansas City)와  아이다호의 케첨(Ketchum)이 남아있다. 특히, 자살을 하기 직전까지 마지막 여생을 보냈던 케첨은 언젠가는 한번 꼭 다녀오리라고 마음만 먹고 있다. 아이다호의 시골까지 그냥 갈 일은 없을 거고, 아마도 그곳에 있는 스키 리조트에서 한번 스키를 타고 싶다는 핑계로 다녀올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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