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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치군 Dec 23. 2016

유럽 크리스마스 마켓 기행

11월과 12월에 유럽을 여행해야만 하는 이유

크리스마스 마켓 @뒤셀도르프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처음 경험한 건 2008년도 프랑스의 겨울이었다. 그때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와 코트다쥐르를 여행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마켓 자체에는 커다란 관심이 없었고, 그저 겨울 시즌이 되면 열리는 마켓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비뇽에서부터 아를, 생폴드방스, 액상프로방스, 칸, 니스 등을 거쳐가는 동안 고흐나 세잔, 샤갈과 같은 화가들의 흔적과 관광지들 이상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에 대한 큰 감동을 받았다. 정확히는 크리스마스 마켓 뿐만 아니라 방문했던 모든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도 유럽은 의도치 않게 겨울 시즌에 출장으로, 그리고 여행으로 다녀올 일이 꽤 있었다. 여름의 유럽을 갈 기회보다 겨울에 갈 기회가 더 많았던 덕분에 런던, 파리, 비엔나, 프라하, 밀라노 등의 대도시에서부터 각 나라의 소도시들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어느 도시를 가도 다 비슷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도시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가진 특색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물론, 너무 전형적인 느낌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진곳이 더 많았지만, 이곳이 아니면 안된다고 할 정도로 매력적인 곳들도 많았다.



사실, 유럽의 겨울은 해가 일찍 지는데다가, 습하기 때문에 뼈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져 그리 선호하는 여행시즌은 아니다. 조금 둘러볼까 하면 해가 져버리는데다가, 유럽은 대도시를 제외하면 저녁시간에 할것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월 중순에서부터 12월 말까지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럽 여행을 꼭 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저렴해진 물가와 숙박비는 덤이고, 운이 좋다면 그야말로 로맨틱한 눈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만날수도 있으니까.


여태껏 다녀온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들을 얼추 세어보니 30여곳이 훌쩍 넘었다. 개인적인 취향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와 독일의 드레스덴(Dresden) 이었다.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골목 골목을 지날때마다 새로운 스타일의 장식과 상점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곳이었다면, 드레스덴은 여러가지 테마가 한 도시안에 모여 있어 이 한곳만으로도 웬만한 크리스마스 마켓은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꼭 여행자들만 반기는 그런 곳이 아니라, 유럽 현지인들의 삶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하나의 문화나 다름없었다. 유럽에 살고 있는 현지인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릴때부터 11월 중순이 다가 오면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건 당연하고, 가족과 함께 구경을 하러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했을 정도다. 그렇다보니 일찍부터 마켓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하여 상점을 여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구경거리와 선물 쇼핑을 위해 나오는 현지인들로 크리스마스 마켓은 항상 북적거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중 다수가 가족과 함께 나왔음은 더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팔고 있는 물건들은 나라별로는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같은 나라에서는 거의 비슷한 물건들이 대다수다. 종종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로컬 아티스트의 물건들을 파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비슷한 기념품들을 떼다가 파는 곳들이 더 많았다. 아마도 평소에는 기념품 상점을 하다가,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면 물건을 가지고 와서 파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비슷비슷 하더라도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는 꽤 쏠쏠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물건들이 많다보니, 올 겨울 선물로는 뭘 사갈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정말 내 캐리어의 공간이 무한대였다면 사오고 싶은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비슷한 종류끼리 모여있으면, 더 분위기를 내는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에 한, 두 개가 아니라 여러개를 구입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다만, 물건을 고르는 센스가 없는 내가 중구난방으로 맘에드는걸 골라서 구입하면, 집에서 와이프에게 등짝을 맞을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어떻게 배치를 할 생각으로, 연관도 안보이는 스타일을 마구잡이로 사왔냐고 할게 뻔하니까. 그래서 언제나 출장을 갈때면 작은 인형이나 집 모양의 기념품을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모든 크리스마스 마켓이 가진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특색있는 장식과 함께 쭉 늘어선 상점들 사이에 위치한 회전목마였다. 규모가 크건 작건 상관없이 회전목마는 꼭 1개씩은 위치해 있었는데, 한 번 타는데 2~3 유로 정도였다. 탈것이 10개도 채 안되는 작은 회전목마에서부터 2층 규모의 커다란 회전목마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는데, 회전목마의 크기는 꼭 도시의 크기와 비례하지는 않았다. 가족 나들이를 온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어느곳의 회전목마던지 저녁시간대에는 쉬지않고 열심히 돌아갔다. 나 역시 가족과 함께 떠났던 겨울 여행 때, 아들이 거의 매일 회전목마를 탔을 정도이니 아이들의 선호도는 물어보지 않아도 충분할 만 했다. 



이 시기의 유럽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크리스마스 마켓 덕분에 길거리 음식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몰리는 만큼, 먹거리도 풍부하고 다양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시기가 유럽에서 가장 쉽게 길거리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 독일의 감자전이라 부를 수 있는 라이베쿠헨, 빵에 끼워먹는 다양한 소시지들, 달달한 소스들을 얹어 만든 크레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군것질 거리였다. 식당에 앉아서 먹으면 1시간 가까이 시간이 필요하지만, 길거리에서는 슥 먹고 지나갈 수 있어 가볍게 먹는 점심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추운 겨울이었던 만큼, 저녁마다 빠지지 않고 마시던 따뜻하게 데운 와인을 빼먹으면 섭섭하다. 독일에서는 글뤼바인(Glühwein), 프랑스에서는 뱅쇼(Vin Chaud), 스페인에서는 비노 깔리엔떼(Vino Caliente) 등으로 불리는 이 음료는, 레드 와인에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재료들을 넣고 끓인 와인이다. 당연히 알콜이 남아있지만, 마시면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효과가 있어 꽤 자주 마셨다. 글뤼바인은 보통 컵과 함께 판매하는데, 컵을 반납하면 일부 금액을 돌려주지만 나는 기념품으로 꽤 많은 컵들을 모았다. 몇개 안되었을 때에는 또 어디서 쓰잘데기 없는 걸 사왔다고 혼났지만, 10개정도 되니 나름 전시품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겨울의 유럽의 또다른 먹을거리는 바로 군밤이다. 사실, 유럽에서 군밤을 팔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군밤을 구워서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껍질을 까서 파는 경우가 많다면, 유럽은 껍질채로 파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 차이점이랄까? 어쨌든, 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거의 매일 사먹을 정도로 선호하는 간식이었다. 역시 즉석에서 구워먹는 밤은 출장갈 때 늘 가지고 다니는 맛밤과는 비교할 바가 못될정도로 맛있었다.



이제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다닐만큼 다녔지만, 그래도 작년에 처음 갔던 독일의 에슬링겐(Esslingen)처럼 독특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걸 생각하면 아직 얼마 안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의 복장과 상점, 그리고 도시의 모습까지 모두 중세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 이 작은 소도시는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졌던 크리스마스 마켓 여행 중 꽤 신선한 발견이었다. 정말 중세의 유럽을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 덕분에, 이 마을에서는 정말 오랬동안 머물렀었다.


지금의 내게 유럽 여행을 또 갈거냐고 물으면, 당연히 "예스". 겨울에 또 갈거냐고 묻는다면, 11월~12월이라면 "고려해보겠다.". 1~2월이라면 "노"라고 대답할 것 같다. 안타깝게도 당분간은 출장이 아닌 이상 유럽을 갈 일은 거의 없겠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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