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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언자 Oct 12. 2016

복잡하여라. 그것이 사람이어라

내 안의 야곱DNA <서평>

복잡한건 사람이다. 사람이야말로 복잡하다. 그래서 인간의 복잡성을 긍정하고 함부로 단순화시키길 거부하는 인문정신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단순한게 좋다. 단순해야 쓰기 편하고 실용성 있다. 서점가에 가보면 심심찮게 인간의 마음을 설득하는 비법을 천기누설하는 책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정도로 우리네 사회는 인간의 복잡성을 긍정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단순하게 정리하고 요약해내려 한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네 성경읽기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내 안의 야곱 DNA』는 구약 성경의 대표적 인물이자,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인물인 문제적 남자 ‘야곱’을 톺아본다. 야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축복’을 통해 야곱의 모습을 구약 창세기의 맥락에서 멋지게 복원하려는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야곱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네 모습을 우리가 직면케하고, 복잡한 인간의 이중적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인문정신의 한 갈래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본책의 저자는 구약의 난제라 볼 수 있는 문제, 곧 에서와 야곱을 둘러싼 하나님의 선택 문제를 쉽게 도식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선택과 은혜라는 긴장감 넘치는 개념을 있는 그대로 전시하여 읽는이로 하여금 직접 마주하게 한다. 결국 우리네 성경읽기 방식에 문제가 있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에서냐? 야곱이냐? 결정된 것은 없었다. 야곱은 적극적으로 (그러나 조급하게)하나님의 은혜를 열망했고, 야곱은 그것을 하찮게 여겼다. 우리가 은밀히 욕망하던 축복과 다르게 하나님의 축복은 “체제 전복적 축복”이다.


   그래서 자칫 저자가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을 놓고 양비론을 펼치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겠다. 또는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한 야망 있는 야곱처럼 살아야한다!’고 심심한 주장을 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는 그렇지 않다. 저자의 논지를 좀 더 면밀히 쫓아가보면 이 오해는 쉽게 풀린다. 저자는 ‘축복’이란 키워드를 통해 구약의 야곱을 분석하기 위해서 야곱이라는 인물의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 또한 이를 우리네 자화상과 견주기 위해 축복을 놓고 일어나는 복잡한 일들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건 양쪽이 다 옳다고 주장하는 양비론이 아니다. 야곱처럼 살아야한다고 외치는 전기문이 아니다. 인간의 복잡성, 이중적 욕망을 긍정하고, 어떻게든 표현하려는 인문정신의 발현이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성경 읽는 눈이 참 부러웠다. 야곱을 구약 창세기 본문 맥락을 통해 저자만의 방식으로 그려내는 것이 매력적이었다고나 할까?

   저자의 주장대로 “인생은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써나가는 것”이기에 한 사람의 풍성한 세계가 단순하게 다뤄지고, 결정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성경이 그리는 인간상도 아닐뿐더러, 야곱을 선택한 하나님의 은혜와 일치하지도 않는다. 한 인생의 깊이를 어찌 감히 측량할 수 있으랴. 세상 어디에도 요약정리 할 수 있는 인생은 없다. 미리 모든 것을 결정해놓은 틀에 인간 스스로를 끼워 맞추라 요구하는 세계는 결코 성경이 용납하지 않는 세계이다. 야곱을 통해 우리 사회를 다시 본다. 아직 하나님의 “체제 전복적인 축복”은 이 사회에 유효한가? 하나님은 비루한 우리의 현실을 들어 이 세상에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는가? 매우 요원한 것 같으나, 아직은 그렇다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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