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혀 끝에서 부터 시작된다.
나는 노래를 할 줄 모른다.
노래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발성이며, 음계며 하나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엄청나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지식이 없다는 거다. 무슨 일이든 알면 알수록 깊이의 세계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나는 그 지점을 경계한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나. 가수가 되기 위해서. 무턱대고 노래를 배워야 할까 생각했지만 노래는 하다 보면 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런 믿음도 있다. 한 곡만 죽어라 파면 적어도 그 한 곡은 정말 잘 부르게 될 거라는 믿음.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초등학교 시절엔 전교에서 알아주는 동요왕이었다. 노래 부르기를 즐겨하는 편이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불렀고, 대중가요는 물론 동요도 좋아해서 찾아서 부르곤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노래보다 춤을 더 좋아했다. HOT, 젝스키스, 신화, 유승준 등 댄스가수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다 춤을 따라 추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음악시간에는 전문가(당시 음악 선생님)로 부터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가창 시험 점수는 목소리와 별개로 최고점을 받지는 못했지만, 내게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 일의 첫 단추는 떠벌리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자주 쓰는 방식인데,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최대한 널리 떠벌린다. 저기 멀리 바다 건너에 있는 존슨 씨에게도 전해질 때까지 부지런히, 나는 가수가 될 거라고, 앨범을 낼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언젠가 나는 그 일을 시행하고 만다. 하고픈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틈틈이 내 선언을 들은 누군가 '음악 낸다고 하지 않았어?' 하는 한마디에 다시 마음을 잡게 되는 것이다. 여기저기 주위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설치해두는 것과 같다. 프로젝트의 긴 과정 속에서 일에 치여, 혹은 슬럼프가 와서, 또는 여차 저차 한 이유로 마음이 시들해졌을 때, 주변에서 누군가 그렇게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더 이상 아무도 한우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미 아주 늦어버린 후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학교 다닐 적에 어머니는 내가 이것저것 여러 가지 취미활동들을 하는 것에 염려가 많은 편이셨다. 좋아서 하는 일들은 죄다 돈벌이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라서. 게다가 꾸준히 무언가를 해온 경험이 없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들 가운데, 오랫동안 그 관심과 열정이 지속된 경험이 별로 없다. 하다가 아니면 그만두기를 여러 번, 그렇게 포기하고 나면 어머니의 잔소리와 누나의 비아냥거림이 들려왔다. '넌 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니?'
제대로 하는 건 무엇일까?
무언가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긴 시간 고민하면 답을 알 수 있겠지. 저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제대로 해본 사람일 것이다. 음악을 제대로 해야겠다. 마음을 다시 다진다. 하지만 스스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만두고 나서 초라해지는 모습 또한 눈에 아른거린다. 내가 무슨 가수가 되겠다고 이렇게나 열성인 건지. 나이 먹고 뜬금없이 가수라니.
우선 가까운 친구들에게 가수가 될 거라고 말했다.
어이없어하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 조금도 놀라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가수가 된다는 게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시대이기도 하다. 케이팝의 전 지구적 대흥행에 힘입어 전국 고등학교마다 한 명 이상의 아이돌이 있는 시대니까. 가수가 된다는 게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다. 생계를 위해 접어야 했던 트로트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비를 들여 음반을 내고 가수 활동을 하는 시니어들의 소식도 자주 들려온다.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음악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가수가 될 거라고 말하자 자연스럽게 '어떤 음악이 하고 싶어?'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글쎄, 어떤 음악을 해야 할까?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일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음악을 내가 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첫 번째 접근은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다. 음식도 가리지 않고 먹고, 음악도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다 듣는 편이다. 최근에는 테크노 음악을 종종 듣는데, 사실 어디까지가 테크노인지 뭐가 테크노 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음악을 들을 때는 잘 아는 음악을 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기분에 휩싸인다. 힙합, 레게, 락, 재즈, 포크, 일렉트로닉, 블루스, 컨추리, 글쎄... 좋아하는 장르를 말하긴 좀 더 쉽겠지만, 나는 그 어떠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본 적도 없다. '어반 힙합 동요?'라고만 이야기했다. 물론 나는 그게 도무지 어떤 장르인지 알지 못한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장르인 것 같아서 대충 에둘러 대답했다.
자신감이 붙은 뒤 나를 아는 지인들에게, 가수가 될 거라고 말했다.
그들은 놀라기보다 재밌어하는 눈치다. 내가 가수가 된다는 게 나에게만 재밌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재밌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가수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즐겨하는 이야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말을 할 줄 아는 모든 사람, 표현을 할 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말 또는 글일 수 있고, 거기에 멜로디가 붙으면 노래가 된다. 모든 사람은 이미 가수가 될 자질이 있고, 나 또한 충분히 가수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어떤 음악을 할 수 있을까? 그건 역시나 나조차도 너무너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