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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니와니완 Jun 22. 2020

선을 넘은 영화 <기생충>

영화 <기생충> 성공요인 분석 


1. 영화 <기생충>의 성공 


영화에서 있어 ‘성공’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미디어를 매개로 대중을 만나는 대중 예술이다. 흔히 구분 지어 말하는 ‘예술 영화’와 ‘상업 영화’는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관객의 취향에 기반해 나뉘는 시장의 성격에 가깝다. 따라서 좋은 영화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춰야 한다. 


#수상충 ; 2019년 칸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기생충에 의해 새롭게 쓰일 역사의 서막에 불과했다.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 오스카 4관왕이 되기까지 2019~2020 1년여 기간 동안 기생충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영화상을 휩쓸었다. 칸과 아카데미 두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역대 두 번째이자 64년 만의 대기록이다. 


#흥행충 ; 개봉 53일 만에 천만을 달성하고, 전 세계 202개국에 판매되었다. 

국내에서의 흥행은 물론 아시아 영화 전체를 통틀어 유례없을 정도로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제작비 1100만 달러, 마케팅비 3600만 달러를 투자해 전 세계 박스오피스 2억 5400만 달러를 기록하며 2억 6천9백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했다. 


기생충은 선을 넘었다. 세계를 대표하는 영화제 수상과 박스오피스 흥행 기록으로 오랜 시간 양분되어 존재하던 ‘상업’과 ‘예술’, ‘주류’와 ‘비주류’, ‘글로벌’과 ‘로컬’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2. 기생충의 성공 요인 ; 스토리 + 마케팅 


기생충이 이처럼 유례없는 대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을 크게 2가지 측면에서 꼽을 수 있다. 하나는 ‘기생충’이라는 작품 속 스토리가 갖는 탄탄함이고, 다른 하나는 입소문을 활용한 영리한 마케팅이다.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스토리’ = 보편적 주제 + 은밀한 상징  


칸은 전통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 우리가 소홀하게 여겼던 특정 국가, 특정 민족, 특정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에 관대하다. 매우 구체적인 한 사건을 확장시켜 더 큰 의미와 범주에서 메시지를 주는 방식을 주목한다. 하지만 기생충은 특정 사회를 표방하지 않으면서도 특정 인물이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영화가 아니다. 한국영화의 특수성을 강조하지 않기에, 로컬 영화의 범주를 넘어 더 크고 다양한 관객을 끌어안을 수 있었다. 

기생충은 경제 계층간 갈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난과 상대적 박탈감은 TV에서 혹은 일상 속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 테마다. 기생충에서의 주제 의식은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에서 보여준 계급 갈등의 연장선 상에 있지만 판타지보다 현실에 더 가까운 방식으로 묘사된다. 누구도 악역이 없지만 서로 대립하게 되는 세 집단 간의 긴장감이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단순히 선과 악, 빈자와 부자로 나뉜 이분법적인 사회 계층이 희미해지면서 모호해지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경제 계층의 갈등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물론 유럽, 남미, 아시아 등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자국의 상황을 대입해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대중적인 미디어가 쉽게 담아내기 어려운 무거운 주제를 발칙하면서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기생충은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의 지적 만족감을 선사한다. 

게다가, 이 영화는 단순히 감독이 전하려는 하나의 메시지만을 던져 놓지 않는다. 뻔한 영화에 머무리지 않고 소위 말하는 떡밥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다. 하나의 큰 서사 안에 무수히 많은 작은 사건을 벽돌처럼 겹겹이 쌓인 구조다. 봉 감독의 별명인 ‘봉테일’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영화의 디테일은 마니아들에게 다양한 영화적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관객과 제작자의 교감은 은밀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기생충을 보고 온 관객은 영화로부터 촉발된 영감과 생각을 영화관 밖으로 어렵지 않게 가지고 나온다.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블로그,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에 자신의 생각과 영화에 대한 감상을 재생산한다. 

웃고 떠들며 즐기는 오락 영화를 기대하고 갔던 사람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재미, 무거운 주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낸 메시지의 균형감은 영화를 가볍게 즐기는 일반 관객들이 충분히 좋아할 만한 요소다. 그러나 기생충은 칸 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감독의 영화적 기교를 기대하는 마니아들을 위해 다양한 상징과 메타포를 곁들임으로써 비로소 더 많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너무나 보고 싶게 하는 ‘마케팅’ = 입소문 전략 + 롤아웃 방식 


칸 영화제는 명성을 인정받은 심사위원단에 의해 보름 남짓 기간 동안 출품된 영화를 심사하고 우수작을 선정한다.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한 예술 영화들에게 기회가 적극적으로 주어지며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 속에서 시대적 화두를 담은 영화들이 많다. 그렇기에 아시아 영화에도 더 우호적이다. 봉준호에게 칸 황금종려상 수상은 상대적으로 오스카에 비해 훨씬 더 쉬운 도전이다. 

그러나 봉준호와 기생충 팀은 오스카를 받기 위한 긴 레이스를 단행한다. 아카데미 영화제의 후보 대상은 1년간 개봉되는 모든 영화다. 칸이나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보다도 형식적으로는 더 열려있다. 상업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고 영화를 평가하기 위한 시스템은 무려 7000여 명이 되는 아카데미 회원이 투표를 해 수상작을 선정하게 된다. 일종의 선거와도 같다. 자유시장 경제와 민주주의 시스템을 반영한 대단히 미국적인 방식이다. 

기생충이 처음 북미에서 개봉했을 때, 한국에서와 유사한 마케팅을 펼쳤다.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하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트레일러를 공개했고, 관련 기사 또한 영화 줄거리나 장면을 최소한으로 유출하도록 했다. 영화 중반에 배치된 급반전 요소가 드러나기 전까지, 절반에 해당하는 내용만 관객이 상상하고 기대할 수 있도록 했다.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기 위해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팀은 Earned media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기생충은 최종적으로 오스카 수상을 위해 크고 작은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 참여하며, 수많은 기사와 인터뷰를 양산한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일 때, 관객들은 감독 혹은 배우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밖에 없다. 칸 영화제 직후 봉준호 감독의 이름은 수많은 영화 마니아들에 의해 검색된다. 그리고 봉준호의 인터뷰는 영화 <기생충>과 함께 오스카 레이스 기간 동안 내내 화제성을 이어간다. 아카데미는 해마다 칸과 비교해 다양성 부족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봉 감독의 ‘아카데미는 로컬’ 발언은 어쩌면 아카데미에서의 수상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전망이기도 했지만, 시상식이 가까워 올수록 그의 수상 여부는 언론과 마니아들의 관심을 극대화하기에 충분했다. 사실상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릴 즈음, 수상 여부와는 상관없이 <기생충>은 영화인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가 되어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는 보통 400여 개 이상 상영관이 동시 개봉하는 와이드 릴리즈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기생충은 칸 수상부터 아카데미를 수상할 때까지 상영관을 점차 늘려가는 ‘롤아웃 방식’을 추진한다. 북미 평단의 호평 속에서도 이 같은 전략을 구사한 이유는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함도 있지만, 영화 마니아들의 궁금증을 더 증폭시키는데 한몫했다. 14일간 평가가 진행되는 칸과 달리 1년여에 걸친 아카데미의 긴 레이스는 작은 눈을 굴려 큰 눈덩이를 만드는 것과 같다.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함으로써, 더 보고 싶어 지도록 한 결과 SNS 상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품절 대란’처럼 영화를 본 소수의 마니아, 관계자, 배우, 감독들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확산하게끔 했다. 지난해 10월 뉴욕과 LA의 3개 극장에서 선 개봉한 기생충은 2주 차부터 스크린을 늘려 나갔고 11월 비로소 600개의 스크린을 확보했다.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 직전에 10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  

영화제 수상은 영화 관계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예측 가능한 폭발력이 있는 사건이다. 기생충은 더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찾을 수 있도록 단계별로 치밀하고 영리한 마케팅을 펼쳤다.  



3. 기생충의 성공, 다음 선은? 


봉준호는 이제 비로소 전 세계가 다 아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기생충>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은 단기간에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하는 국가 중 하나였다. 봉준호의 <기생충>은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인정받는 대작이 된 배경에는 오랜 기간 축적된 영화 산업의 인프라가 있었다. 영화를 즐기는 국내 팬들과 든든한 국내 시장이 있었다. 

칸에서 오스카까지 <기생충>의 긴 레이스는 끝없이 선을 넘는 여정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지금까지 한국 영화, 오스카 영화, 칸에서 인정받은 소위 예술영화의 모든 선을 넘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넘어야 할 선이 없는 것이 아니다. <기생충> 성공 이후 세계 영화계에 주어진 새로운 과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가 허물 다음 경계를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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