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내부의 압력이다.
압력을 받는 물체는 반작용이 발생한다.
공이 떨어지면 위로 튀어 오르듯 말이다.
힘을 튕겨내지 못할 만큼의 힘이 없는 물체는 이내 짜부라지고 만다.
터지거나, 눌리거나, 압착되고 파괴되어 버린다.
우리는 종종 외부 요인에 대한 압박과 자극으로 강렬한 파괴 욕구를 생성하곤 한다.
그것은 외부의 힘을 견디기 위해 내부의 압력을 분노로 치환하여 폭발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심연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며 충동의 순간에 발생하는 것이기에 더더욱 나의 것이라 믿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것은 엄연히 당신이 선택한 파괴의 길이다.
내면을 폭발시켜 압력을 얻는 것은 손쉬운 방법이다.
단단한 내면을 얻기 위한 지루한 시간을 외면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방식이다.
물건을 파손하는 것으로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다.
이는 '평범함'의 범주에 속한다.
휴대폰을 던지거나 폭언을 하거나 벽을 주먹으로 치는 등의 행위는 분노 혹은 파괴의 대상이 분명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을 넘어가는 행위는 말할 수 없는 문제를 야기한다.
분노를 태도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그 태도는 먹이를 구하는 짐승처럼 목이 말라, 갈증에 미쳐버린 좀비처럼 우리의 내면과 관계를 망쳐버린다.
순서의 문제일까.
망쳐버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혼돈은 우리의 삶을 자꾸만 정상의 궤도에서 벗어나라고 종용한다.
그것은 분명하게도 내가 아니었으면 하고 외면하고 곁눈질해 보는 본연의 자아이다.
해소되지 않는 마음의 갈증은 분노와 파괴를 통해 충족되어진다.
약속의 파괴, 관계의 파탄, 내면의 책장을 밀어버리는 시도에서 후련함을 느끼는 것이다.
파멸의 입구에서 만회의 순간을 기다리며 만끽함으로 편안해지는 것은 '악'의 곁에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다.
바닥에 우르르 흩어진 책들을 보며 지금까지 어지럽게 쌓아온 얕은 정신을 다시금 강화할 기회를 얻었음에 기뻐하는 것이다. 그것을 슬프게 바라보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당신의 뒷모습이다.
당신은 주변을 참혹하게 만든다.
주변의 참혹한 상황을 외면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에 대한 당위를 불러일으키고 자기 연민의 파도를 가져온다.
그렇게 허우적대는 사람은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을 타인의 탓으로 미루게 된다.
모든 것이 핑계로 귀결되는 사람은 결코 멋진 결말을 그려내지 못한다.
당신만은 멋진 장면을 선택하길 바란다.
그것은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에게 닿아있는 것의 일부를 파괴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