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진격의 선두에 선 인간력
경영이 더이상 예술이 아닌 과학이 되었다. 경영자 한 사람의 생각과 감으로 경영의 판단이 이루어지던 시대는 지났다.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산업이 AI와 빅데이터로 첨예화 되어가고 있다.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통하여 최신의 트랜드를 잡아내고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이런 시대에 직원 개개인에 최대한 권한을 이양하여 개인의 판단으로 역사적인 성장세를 이루고 있는 회사가 있다.
일본의 소매점 돈키호테(돈키)는 1989년 첫 점포를 시작으로 34년간 한 해를 거르지 않고 연속적인 이익 증가를 이어왔다. 30여년이란 긴 세월 동안 경기의 부침과 무관하게 적자를 한번도 내지 않은 기록도 대단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고객들을 끊임 없이 유입하며 해외로까지 확장하는 왕성한 성장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모든 특이점들 속에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돈키만의 DNA가 있다. 바로 모든 경영자의 오래된 희망 인간력이다.
소설가 무라카미류가 진행하는 텔레비젼 프로그램 <칸브리아 궁전(간부리야 큐덴)>에서 돈키호테를 다루었다. 독특한 경영 방식이나 이념으로 성장을 이루는 기업을 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돈키호테의 모기업 PPIH(Pan Pacific International Holdings)의 요시다 나오키 대표가 나왔다. "아르바이트 생이 판매가격을 조정하고 심지어 수억짜리 구매 결정을 이루는 것이 우리 회사에서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해 오던 일이지요."
돈키는 점포의 직원들에게 극단적으로 권한을 위임한다. 모든 점포에서 같은 가격과 서비스를 유지하고 심지어 메뉴얼에 따라 진열 받식과 고객의 응대 방식까지 통일되어 있는 일본의 프렌차이즈 경영 방식과는 전혀 딴 판이다. 각 점포의 점장은 자기의 점포의 특성에 맞는 제품들을 특화하여 출시하고 매대의 사이즈도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정직원 뿐 아니고 아르바이트 직원들까지도 자신의 판단에 의하여 구매를 결정하고 상품을 기획하고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우리가 돈키호테의 매장에 가면 여라가지 새로운 물건, 신기한 물건들을 만날 수 있고 특히 일본에서 돈키가 가장 가성비 있는 가게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유이다.
돈키의 직원들의 이런 자율적인 활동에는 그 결과에 대한 철저한 평가가 따라온다. 아르바이트 직원도 자기의 생각에 의해 매출 증대에 기여하면 급여가 오르고 정직원이 될 수 있다. 임원까지 이른 사람들도 이미 여럿이 있다. 반대로 실적이 안좋으면 임원이 되어서도 직이 박탈되기도 한다. 현재의 CEO인 요시다 대표는 자기도 전무를 달았을 때 한 달만에 전무직을 반납해야 했던 경험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몇 년 전부터는 100만인 상권의 점포들을 모아 그 중에서 지역의 사장을 결정하는 밀리언스타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매년 이들 중 20%는 다른 점포에 '함락' 당한다고 한다. "저희 회사에는 떨어지는 사람도 많지만 그만큼 승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실적에 따라 오르고 내리는 것은 돈키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요시다 대표의 말이다.
대체 권한 위임이란 무엇인가요?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요시다 대표에게 물었다. 창업자 야스다 타카오(安田隆夫) 회장은 2011년 회사의 경영 이념과 원칙을 정리한 <원류(源流)>라는 책을 발표했다. 이 책은 돈키호테의 모든 경영 활동과 판단에 실질적인 지침이 되는 책으로 돈키호테의 직원들에게는 가히 성경에 필적하는 책이다. 이 책에는 권한 위임이란 '신뢰와 존경의 선순환'이라고 적혀있다.
요시다 대표는 취임 후에 그동안 돈키의 성장에 가장 큰 동력이었던 권한 위임을 보다 적극적으로 경영에 적용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그 방식을 여러가지로 고민하여 야스다 회장에게 보고하였다고 한다. 창업자인 야스다 회장은 그때마다 '이런 방식은 아니네', '완전히 틀렸어'라는 말만 반복하였고 한다. 이렇게 지리한 보고와 거부가 계속되던 어느날 참다 못한 회장은 돈키의 권한 위임에 대한 원칙을 한마디로 정리하였다.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은 프로세스 콘트롤을 하지 않는 것이네. 이상!
- 야스다 타카오, PPIH 회장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은 담당자에게 완벽한 자율에 맡기는 것, 그 방법에 대하여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의 능력과 그 가능성을 무한히 신뢰하는 방법이다. 인간의 실수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처음부터 마지막 공정까지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순서를 정하고, 이를 메뉴얼로 통제하는 전통적인 일본 기업의 경영 방식과는 정반대의 경영방식이다. 동시에 모든 것들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데이터에 의하여 기계적으로 경영의 방향이 조정되는 최신식의 의사결정 방식과도 전혀 다르다.
그동안 많은 경영자들이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이 힘이다라고 말했지만, 누구도 이처럼 구성원 모두에게 동등한 권한을 이임하지 못했다. 인간은 자의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실수를 하고 이를 통제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통제의 방법은 위계적인 관리 방식과 직함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제한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휴먼 에러를 줄이고 첨예화된 판단을 내리게 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창의성과 능력, 무엇보다 본능적으로 느끼는 '감'을 업무에 구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신뢰와 존경을 바탕으로하는 진정한 권한 위임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인공 지능이 경영의 판단을 돕고 휴먼 에러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구성원의 권한을 넓히기 보다는 보다 더욱 세밀하게 권한을 분산하는 데 주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공지능의 범위가 넓어질 수록 구성원의 권한이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업무의 범위도 점차 더 좁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인공지능의 시대에 야스다 회장의 경영 방식은 반대로 개개인의 능력과 창의성을 신뢰하는 경영 방식이다. 휴먼에러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지만 개인들의 가능성을 믿는다. 이러한 경영 방식은 34년 째 끊임없이 매출과 이익을 신장시키며 실질적인 성과를 이루어 내고 있다. 아마도 한동안, 어쩌면 더 오랜시간동안 인공지능은 개별 인간들의 다양하고 엉뚱한 시도들을 따라오기 힘들것이다.
지금 전세계에 747개의 돈키 점포가 있다. 634개는 일본에 있고 나머지 113개는 회사이름(Pan Pacific)에 걸맞게 태평양을 둘러싼 7개국에 퍼져있다. 현재 2조엔의 매출을 이루는 돈키의 매출 중 해외에서의 매출은 아직 10%대이다. 요시다 대표는 해외 시장의 매출을 전체 매출의 50%, 1조의 매출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해외 매출 1조라는) 황당해 보이는 꿈을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노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사람을 황당한 꿈을 이루는 것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돈키호테는 1978년 동경에 <도둑상점>이란 작은 가게로 시작했다. 당시 점포를 운영해 본 경험이 없던 당시의 야스다 회장은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밤 12시까지 영업을 하였다. 도둑들이 움직이는 한 밤에 문을 연다고 하여 가게 이름도 <도둑상점>이었다. 이 가게는 밤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취객들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사가지고 들어갈 물건들을 파는 컨셉이었다고 한다. 놀라운 컨셉으로 차별성을 지니고 시간대를 독점하여 경쟁에서 자유로운 사업을 이룬 예이다.
PPIP의 웹사이트에는 초기 <도둑 상점>의 경영 방침으로 세가지를 꼽는다. 저녁 시간대의 수요의 발견, 독특한 쇼핑공간의 창조, 믿고 맡기는 권한 위임의 시작.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방침은 돈키호테 매장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엄청난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그 중 가장 강력하고 근원적인 성장의 동력은 권력위임이라 생각이 든다. 인간의 힘, 인간력에 대한 신뢰가 그치지 않는 성장을 이끌고 있다.
기회가 있다면 야스다 회장을 만나 이야기 해 보고 싶다. 사진으로 본 야스다 회장은 아주 박력있는 외모를 지녔다. 시중에는 판매하지 않는 <원류>를 구하여 읽어보고 싶다. 오랜만에 돈키에 들러 무언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제품들을 한 가득 사 들고 나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