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잉타입 Nov 28. 2017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 참고서 훔쳐보기

<경제철학의 전환> 변양균

변양균하면 참여정부 실세보다 그를 몰락시켰던 신정아 사건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허물보다는 그의 열린 시각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펴자마자 그대로 끝까지 읽었다. 중간에 기내식도 나오고 커피도 마시면서 봤는데도 채 3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은 사이즈의 책이 큰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은 거의 사회 전분야에 걸쳐 혁신을 주문한다. 다만 이 책이 큰 호소력을 갖는 까닭은 다른 책과 달리 확실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는 말, 경제철학의 전환이라는 ‘슘페터 경제학 소개’는 책 분량에서 채 30%도 차지하지 않는다. 대부분 방법론으로 차 있고 그 방법론을 논술형 모범답안처럼 요약해 놓기까지 했다. 이대로 추진해달라는 주문으로 보였다. 

내용적으로도 참여정부의 이미지와는 정반대 정책이 수두룩하다. 여기에는 다양한 외국 사례, 구체적인 입법이나 법 개정 방향, 재원 조달 방향까지 구체적이다. 

다양한 정책 중에서 발기맨이 들으면 피꺼솟할 노동유연화가 첫 번째이자 가장 강조돼 있다. 기업가들에게 해고할 자유, 저성과자를 퇴출할 자유를 줘야 우리 경제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 노동자도 노동을 선택할 자유를 줘야한다고 강조한다. 확실한 복지를 바탕으로 노동자도 여러 기업을 선택하거나 최소한 휴직을 해도 일정 기간은 먹고 살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이렇게 거의 모든 정책에서 ‘패키지 딜’을 강조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에서 벗어나 이것과 저것, 둘 다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자는 얘기다. 예를 들면 기업이 투자할 때 지역밖에는 선택지가 없다면 해외 이전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바에는 수도권 발전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 기업을 유치하되 기업을 유치해 번 법인세 등은 기업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말한다.

과감하게 자르자는 주문도 많다. 가장 큰 규모가 국가 R&D 예산이다. 어차피 더 이상 국가가 R&D를 주도할 수도 없고 낭비만 심하다. 과감하게 50% 이하로 줄이자고 말한다. 누군가가 생각나는 발언이다. 녹지를 보호하는 기능이 무의미해진 그린벨트를 없애자고도 하고, 공기업 민영화도 재원 조달을 위해 추진해야 한다고 한다. 가히 경제철학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복지 예산 중에서도 간접 복지 예산(노인 복지에서 예를 들면 은퇴자 직무경험 활용도 제고사업, 저출산 예산에서 저출산 해결에 도움이 안되는 사업 등등)은 과감하게 줄이고 직접 복지 예산(그냥 월 얼마 주는 돈)으로 전환하자고 한다. 

우리 정서에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다. 외국인 이민을 적극 유치해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을 대비하자고 한다. 가까이는 싱가포르에서 멀리는 호주, 캐나다에서 시행하고 있고 실리콘밸리에서도 적극적으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데 우리만 뒤떨어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민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고급인력, 우수두뇌의 유입을 늘려야한다는 단서는 있다. 

그럼에도 <범죄도시>가 인기를 끌고 오웬춘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대림역 뒷골목이 주목받는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 의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한국계 의원, 장관이 탄생하면 박수와 갈채를, 인터뷰를 하고 ‘두유 노우 김치, 두유 노우 싸이, 두유노우 SNSD(소녀시대), 두유노우 BTS(방탄소년단), 사랑해요 연예가중계’를 외치지만 이자스민에 대해서는 돌만 무지하게 던져댔던 국내 현실에서 과연 가능할까 싶다. 

그럼에도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교과서는 못돼도 참고서 수준은 되지 않을까. 이미 책 내용과 거의 똑같이 도입된 정책이 있다. 바로 중소기업벤처부로 기존 중소기업청을 장관급 부처로 만들었다. 뒤떨어진 중소기업과 벤처업계를 활성화 시키고 지원책을 마련해 새로운 초연결사회를 대비하라는 의견이 거의 똑같이 적용된 사례다. 최근 논란 속에 홍종학 전 의원이 중소기업벤처부 수장에 임명됐다.

물론 전혀 맞을 기미가 없는 정책도 많다. 대표적으로는 이 책이 가장 강조했던 노동유연화를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리라 예상하긴 쉽지 않다. 책이 강조했던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바꿔야한다는 정책 조언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보이진 않는다. 포지티브 규제란 “법에 규정한 것만 합법, 나머지는 불법”으로 간주하는 규제 형태이며, 네거티브 규제는 “현행법상 불법이 아닌 모든 것을 합법”으로 보는 방식이다.

뭐 어쨌건 한 번쯤 꼭 읽어볼만한 내용이다. 오히려 미래 정책을 내다볼 수 있어 5년 간 주식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가 끝나면 책 내용의 몇 %가 반영됐는지 대조해보는 작업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구루냐' '구태냐' 구현모, 뉴미디어를 논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