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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Dec 20. 2022

그날의 사진

2019년 6월 28일 오전 11시 1분 42초.

늦은 출근길,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집 근처 폐가 담벼락 위에 있는 아기 고양이였어요.


'아이고 작네' 하며 가볍게 찍은 사진. 캄캄한 퇴근길이 되어서야 진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고 귀여운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털이 듬성듬성 뜯긴 고양이가 고름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어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심장이 찌릿했습니다. 이 고양이를 찾아내어 뭐라도 해줘야겠다 싶었으나 쉽지 않았어요.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건물 사이 틈새에서 귀 한쪽, 꼬리 끝자락만 겨우 볼 수 있었습니다. 경계심이 최고조였던 그 고양이는 결국 양쪽 눈이 다 붙어버리고 나서야 사람 앞에 온 몸을 내보였습니다.


종종 떠오릅니다. 그날 핸드폰을 꺼내어 들고 셔터를 누르던 그 순간이, 어떤 여름의 냄새 같은 것이요.


문제의 사진


몇 년이 흘렀습니다. 사진 속의 고양이는 모카라는 이름과 함께 부부 집사를 얻었어요. 안락한 집과 온수매트와 에어컨은 덤이고요. 집 안 구석구석 모든 것을 자신의 것이라 여기며 당당한 고양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30년가량 개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모카를 보면 종종 먼저 보낸 두 마리의 반려견이 떠오릅니다. 예정된 때에 왔으니 예정된 때에 떠나겠구나, 싶어. 사람과 사람 사이가 그렇듯, 개와 고양이와 인간이, 새와 토끼와 인간이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는 일은 '운명'이라는 말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너와 내가 만나려면 얼마나 많은 우연들이 성립되어야 하는가'는 모든 관계에 적용 가능한 문장이에요. 우연이 쌓이고 쌓여 결국은 운명일 수밖에 없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정해진 마주함과 이별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덤덤한 마음으로 종이와 마음에 글을 쓰지만 기어코 나를 무너뜨릴 것이 분명 존재를

또다시 삶에 들이고,

또다시 보내며.

그렇게요.


2022 김모카. 장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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