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Mar 15. 2017

불온문서(블랙리스트)

자유를 위한 억압



"불법 D 사용은 범죄입니다."


그 불법 D를 막으려고 스마트 D사가 띄워놓은 인공위성만 스물여섯 대라고 했다. 돈을 많이 벌기는 버는 모양이었다.
글자 팔아먹는 사업이라. 글 팔아먹는 사업보다 전망이 훨씬 좋아 보였다.


스마트 D_잡.다.한 책읽기


스마트 D_배명훈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 마음먹은 한 남자가 2029년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SF공모전에 자신 인생 최후의 작품이라는 글을 올린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은 여자 친구 은경과 함께 쓴 합작품, 그 글을 끝으로 마지막을 준비하는 한 남자의 절절한 이야기에 접수담당 직원은 감동한다. 하지만 파일이 첨부되지 않았다. 이런..  다음 날 그는 아직 살아서 다시 메일을 보내왔다. 스마트 D가 부족해 파일이 첨부되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게 그의 마지막 시간은 미루어진 것이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그램 개발사인 스마트 D사에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구매한 'D' 우리말로 'ㄷ' 글자 수가 모자라서 파일 전송을 할 수 없으므로 글자를 재구매하겠느냐 물음이었다. 도대체 글자가 부족해서 파일 첨부가 안 된다니.

스마트 D. 말 그대로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똑똑한 글자이다. 이 글자를 개발한 스마트 D사는 글자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인정받고 '스마트 D 3원칙'을 선언해 글자에 대한 보호에 나섰다. 그 글자는 정확한 설명 없이 워드 프로그램에 포함, 배포되어서 아무도 'D' 혹은'ㄷ' (다른 나라에서는 그에 해당하는 발음의 글자이지 않을까)에 요금이 부과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스마트 D사는 그렇게 글자 끼워팔기를 하며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리고 인공위성 26대를 띄워 더 철저히 글자 사용을 감시한다. 불법 D사용을 감시하기 위해 띄워진 인공지능은 이제 그 단어만으로도 문장의 내용을 60퍼센트 이상 정확하게 추정해 낸다. 즉, 인터넷 상에 오고 가는 거의 모든 문서들이 한 기업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D를 사용하지 않아 감시가 불가능한 문서들에 대해 테러활동의 일부일 가능성을 인정한 국제사회는 기업의 감시기능을 보다 폭넓게 허용한다. 공격 위성에 대한 직접 사용권을 스마트 D 인공지능에 위임한 것이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은경은 불공정 거래에 저항해 기업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그리고 그녀는 'ㄷ'이 한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글을 썼다. 추정컨데 그 감시 불가능한 문서를 대량으로 작성한 은경은 테러리스트로 간주되어 SF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공지능에 의해 공격 위성의 표적이 되어 제거당했다. 남자는 이 사실을 모른 채 그 방대한 분량의 불온문서를 전송하려 한 것이다.


대기업, 초국적기업의 지적재산권이 개인의 자유, 정작 보호받아야 할 창작자의 재산권을 억압하는 이 냉혹한 SF 이야기는 조금 과장되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재산권 보호라는 명목 하에 기업은 사용자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더 나아가 제어할 수 없는 대상들의 이름을 까맣게 적어두고는 공익을 내세워 그들을 사회 위험 대상으로 간주한다. 그렇게 블랙리스트라는 보이지 않는 목록에 이름 올린 사람들은 해택에서 배제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고 공공사회에서 제거 대상이 된다. 큰 힘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아서 한마디로 '찍힌'거다. 낯설지 않은 현실이다.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인한 자유의 억압. 그것은 누구의 자유를 더 중히 여길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칫국과 된장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