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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 Aug 03. 2022

헬싱키

신뢰, 핀란드 사우나, 숲 속에서 걷기, 꿈꾸는 어른

2007년, 내가 좋아하는 윤리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었다.


 “수연이는 왠지 외국인이랑 결혼할 거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그럴 거 같은 느낌인데. 영어도 좋아하고”

“나는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상관없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란다.” 

“못 찾으면 혼자 살아야지. 나는 결혼 안 할래.”


수능만 바라보던 고등학교 생활이 끝났다. 수능만 끝나면 금방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어른처럼 되고 싶었는데 어른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대학교를 들어오니 고등학교와 다른 게 없었다. 시험에, 학점에. 달라진 게 있다면 지루한 인간관계다. 나는 인간이 지겨웠다. 나도 그렇게 뻔한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2011년 여름.


“야 최수”

“왜?”

“이번 여름에 지리산 둘레길 인원 모집하던데..”

“둘레길 가고 싶나?”

“재밌을 거 같지 않나?”

“아… 나는 사람들이랑 이야기 안 하고 싶다. 그냥 조용히 힐링하고 싶다”

“그럼 같이 갈래?”

“그래. 둘레길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우리 이제 곧 졸업할 텐데 추억도 만들 겸 같이 가자”

“오예! 다 안다. 니가 남자한테 관심 없다고 이야기해도 조용히 있고 싶다고 해도 거기서 누군가를 만날 거다 아이가"


은주는 내심 둘레길에서 연애를 할 상대를 찾길 바랬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둘레길을 같이 걸었다. 지리산 둘레길은 바람소리 새소리 나무소리 발자국 소리만 있었다. 은주의 연애도 깜깜무소식이었다. 둘레길을 걸으며 아래서 올려다보면 높은 산들이 나를 감싸는 거 같았다. 폭신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한 사람이 나와 걸음을 맞췄다. 둘레길 행사를 주최한 언니였다.


언니: “안녕”

최수: “네 안녕하세요”

언니: “둘레길 어떤데? 걸을 만 하나?”

최수: “땀 흘리고 자연에서 걸으니까 좋아요”

언니: “둘레길엔 왜 왔는데?”

최수: “대학 생활에 좀 지쳐서요”

언니: “맞나? 왜 지쳤는데? 니는 살면서 뭘 하고 싶은데?”

최수: “성적은 성적대로 잘 안 나오고 제가 꿈꿨던 대학의 모습이랑 달라서요. 그리고 인간관계도 나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잘 모르겠어요. 일단 지금은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 가고 싶은데 돈 좀 더 모으고 가려고요.”

언니: “워킹홀리데이 좋지. 니는 뭘 좋아하는데?”

최수: “저는 정보 찾는 거 좋아해요. 저 검색 잘하거든요.”

언니: “맞나? 잘됐다. 내 친구가 이번에 직장 그만두는데 거기 후임자 찾고 있거든? 한 번 이야기해볼래?”

최수: “네. 한 번 연락해볼게요.”


2011년 가을.


인생 처음 방송국이라는 곳에 갔다. 궁금하고 신기한 게 많았다. 이제 시간 당수당에 벗어나 주급 받는 고액 알바를 하게 됐다. 하지만 기대보다 방송국에 적응하는 건 어려웠다. 이미 서로 알고 지내던 무리를 들어가는 건 썩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했고 그 감정에 제대로 이야기해주거나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사회생활이 이렇겠지만 말이다. 왜 이런 걸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


점심시간이 곤욕이었다.  작가실에 앉아있던 무리들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 먹고 올게요”


나는 주위를 두 리번 두리번거린다.  내 주위엔 나랑 메인 작가만 남아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무리들은 나와 메인 작가를 빼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끔은 M 작가도 점심을 먹지 않고 남아있었다. 사실 차라리 혼자가 편했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나니 더 이상 갈 데가 없어 여기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자 4년이 흘렀다.


25번째 생일날 같이 일하던 용 피디가 나에게 물었다.

“최수여이 생일 소원은 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른이 뭔지 몰랐다. 멋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사람에게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건 도전이었다. 주위엔 그 신념을 무너뜨리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나를 질투하고 괴롭혔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한국을 떠났다.





2017년 여름 헬싱키.


해가 떴다가도 비와 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 다시 해가 떴다. 여름 날씨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그런 날이었다. 육지에서 5분 배를 타고 섬으로 갔다. 날씨가 좋은 여름에 결혼을 많이 한다고 한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의 결혼식에 왔다. 남자 친구의 친구의 결혼식이었다. 가까운 친구의 결혼식만 갔던 나는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축하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에서 우러나 올 정도로 축하할 만큼 저 사람들을 알진 않지.. 그럼 축하하는 마음을 만들어야 하는 건가? 그렇게 나의 헬싱키에 발을 들였다. 


“안녕. (니가 그 애구나?라는 눈빛으로)”

“안녕. (나는 니가 누군지 모르는데 왜 나를 아는 눈빛으로 다가오는 거지?)”

“여기는 내 여자 친구 수연이야”

“어.. 만나서 반가워..”


“근데 직업이 뭐야?”

“아.. 나는 프리랜서 작가야”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에서 모든 사람이 의례 하는 ‘너는 뭐하는 사람이니?’라는 질문을 ‘직업이 뭐예요?’라는 겉 번지르르한 질문으로 듣게 되니 당황스러웠다. 사람 사는 곳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친구도 가족도 없는 곳에 오니 속이 시원했다.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졌다니.. 감사합니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마법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낯선 동네를 친구 삼기 위해 내가 제일 먼저 한 건 무작정 걷는 거였다. 처음에 걷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핀란드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헬싱키 길 이름을 이야기하는 게 부러워서였다. 여기에서 오래 산사람처럼 보이는 그런 모습이 좋았다. 헬싱키 구석구석 길 이름을 보면서 걷고 걸었다. 헬싱키랑 친해지는 첫 번째 방법이었다. 무표정한 핀란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시끄러운 속을 달랬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바람소리에, 파도소리에, 나무들이 부대껴 내는 소리에 내 마음을 같이 흘려보내고 싶었다. 가만히 있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도 책상 앞으로는 갔다. 책상 옆에는 아주 큰 창문이 있고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멀리서 걸어오다 가까이 오면 사람들이 얼굴이 더 잘 보인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어떤 날은 힘이 나다가도 어떤 날은 한없이 작아졌다. ’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더 축 가라앉았다. 원래 식탁으로 쓰던 테이블을 내가 책상으로 쓰게 됐다. 책상 앞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생각도 했다. 그러다 답답한 마음이 들면 숲으로 갔다. 핀란드의 자작나무가 무성한 여름의 숲을 걸었다. 해가 지지 않는 여름의 밤이 괴로움에 잠 못 들던 날들이 생각났다. 공기가 촉촉한 여름밤을 걷다 보면 젊은 여름밤의 힘이 느껴졌다. 




2018년 1월 헬싱키.


라우리 (당시의 남자 친구 현 남편)와 핀란드의 겨울을 체험해봐야 핀란드에 살 수 있지 않을까? 의견을 나눴다. 2017년 12월부터 2017년 3월까지 겨울에 살아보기로 했다. 추위와 어두움을 잘 견딜 수 있을까? 


영하 15도다. 라우리와 눈이 쌓인 공원에서 썰매를 탔다. 썰매를 끌고 헬싱키 시내에서 파실라로 30분을 걸었다. 3km 정도의 거리다. 라우리가 일하던 회사 건물에 사우나가 있다. 겉에서 보면 하얀색 시멘트 건물인데 들어가면 수영장도 있고 사우나도 있다. 눈이 소복이 쌓여서 뽀독뽀독 내는 소리가 계속 듣고 싶어서 마냥 걷었다. 영하 15도에서 아무리 따뜻하게 입어도 밖에 오래 걷다 보면 손끝과 발끝이 차가워진다. 건물에 들어와서 옷을 벗고 사우나로 들어간다. 사우나 수증기가 천천히 퍼진다. 발끝이 팅글팅글 간지럽다. 



창문밖에 새하얀 눈이 내린다. 겹겹이 껴입고 울 양말과 따뜻한 신발을 신고 다시 집 밖을 나선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길을 걷는다. 집에서 왕복으로 2시간이 걸리는 헬싱키 시 해변가를 따라 걷는다. 바다라 매서운 바람이 분다. 바람이 얼굴을 때리면 기분이 번쩍 든다. 뇌 안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눈이 나무를 덮어서 나뭇가지가 곧 부러질 거 같은 겨울 숲도 걸었다. 나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만히 눈을 버티고 있었다. 여백이 많은 핀란드의 자연을 걷다 보니 가만히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생각해보니 나는 항상 긴장했다. 어떤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바들바들 손에 쥐고 있었는데 그 끈은 바로 나의 최저 감정 한계선이었다. 이걸 놓는 순간 나에게 우울 구름이 왕창 몰려올 거 같았다. 삶에서 헤어져 나오지 못할 거 같았다. 그래서 멍 때릴 공백이 많이 생기면 안 될 거 같았다. 아찔하게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고 있던 나의 마음에 눈물 폭풍이 몰아칠 거 같았다. 그리고 역시 그랬다. 


부산스러운 아침이 지나고 빈 집에서 책상 앞에 앉는다. 조용히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꽁꽁 숨어있던 내 감정이 찾아왔다. 감사한 일에도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팠던 일에는 더 눈물이 났다. 소리 내어서 울기도 하고 혹시나 이웃집에 내 눈물소리가 들릴까 꺽꺽 소리 죽여 울기도 했다. 가끔 옆집 이웃이 걱정되는 목소리로 ‘Is everything ok?’라고 물으면 꼭 내가 유난한 사람이 된 거 같아 쭈그러들었다. 다들 이런 마음의 무게 정도는 짊고 살아가는 거 아닌가? 무슨 유난이야. 


말은 번지르르 하지만 그렇게 반백수가 됐다. 그 여유도 잠깐.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가 생기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내 인생에 이렇게 공백이 많아도 되는 걸까?’ ‘나는 이렇게 점점 뒤처지게 될까?’ 나에게 주어진 26살이라는 나의 세계를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올려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내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 꼴을 못 봤다. 집에 먼지 한 톨이 없도록 청소하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 걷기도 했지만 내 세계는 멈춰있는 거 같았다.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기분이든 쏟아낼 수 있는 나만의 세계. 그리고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나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발버둥 쳤다. 일기의 의미는 뭐였을까? 나를 돌아보는 것. 나의 부끄러움 못난 감정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부모의 빽도, 학벌의 의리의리함도 아무것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성공하는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사람’ 되기였다.  내가 말하는 '좋은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쇼핑몰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를 위해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 


어느 날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살 때 해외 도시에 살면서 돈은 못 벌더라도 글을 쓰는 작가로 살 거다’ 이렇게 허무맹랑한 꿈을 꿨던 나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 꿈꾸는 어른이 되자.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다. 근데 한 가지는 확실히 안다. 왠지 좋은 어른이 될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거다. 


헬싱키는 나에게 그렇게 조용히 자리를 내줬다. 내 마음에 솔직해질 수 있게 여백을 허락해줬다. 그렇게 느껴도 괜찮아라고 도닥여줬다. 나는 헬싱키에 도착하면 집에 나는 냄새가 좋다. 나에게도 드디어 그런 공간이 생겼다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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