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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 Jul 26. 2022

Yes or No?

핀란드 남자 친구와 틴더

“내일 아침에 바나나 팬케익 만들어줄게. 우리 집으로 올래?”


라면 먹고 갈래요?’ 아닌 바나나 팬케이크? 오케이.. ‘라면 먹고 갈래요?’ 서양 버전인가? 한식이 아니고서야 마무리는 라면으로 위장을 코팅해야 하는  입맛 팔레트를 생각하면 바나나 팬케이크가 그렇게 당기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가 내미는 부드럽고 달콤한 제스처는 로맨틱하게 예의 발랐다. 어쨌든 아침은 자기가 해주겠다는 거네. 아침밥 성애자인  어떻게 알았지. 그렇다. 나는 그의 단도직입적이고 담백한 모습에 반했다. ‘손에   방울  묻혀줄게보다  솔직해서 마음이 놓였다. 나를 바나나 팬케익으로 꾀는  남자의 말이 결혼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했다.


사실 나는 비혼 주의자였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 언니처럼 자기 일을 가지고 멋지게 사는 30대 커리어 우먼을 꿈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밥그릇 잘 챙기고 산다는 건 특히 여자한테 중요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자기의 방과 공간을 가지고 책 쓰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돈이 필요할 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당당하게 내 의견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 서다. 한날은 엄마 아빠랑 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엄마 아빠의 의견을 물어봤다.


수연: “엄마 아빠 내가 만약에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면 어떨 거 같은데?”

아빠: “음... (생각 중) “

아빠: “그러면 우리랑 평생 같이 살자.”

수연: “머리 다 큰 어른들이 한집에 같이 사는 건 안 되지.”

엄마: “아이고.  결혼 만다할끼고.  평생 누구 뒷바라지하고 밥해주고.  일도  하고.”

엄마: “니는 그렇게  살걸...”


엄마 아빠의 말을 듣고 결혼을 안 해야겠다 생각이 든 건 아니다. 물론 확신은 들었다. 4대 보험도 들기 힘든 ‘프리랜서 작가로 이렇게 사는 이상 결혼은 어렵겠구나.’라고 이미 생각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가난해서 결혼 예물 이런 것도 못 하고 더군다나 결혼을 하고 일을 그만두게 되거나 아이를 가지고 일을 그만두게 되거나 아이를 낳고 경력 단절이 생기게 되는 그런 불공평을 내 인생에서 벌어지게 둘 수 없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나서 연애 이야기를 했다.


친구 1: “최수 니는 연애가 끊이지 않네.”

수연: “나는 뭐 항상 노력하지.”

친구 2: “너희는 결혼 언제 하고 싶은데?”

친구 1: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누가 있어야 결혼하지.”

수연: “(친구 2를 가리키며) 왠지 니가 제일 먼저 결혼할 거 같다.”

친구 1: “진짜. 우리 중에 (친구 2 보며) 니가 제일 먼저 결혼할  같다. 최수 니는 결혼 생각해본  없나?”

수연: “나는 결혼  할라고.”

친구 1: “그렇게 이야기하는 애들이 제일 먼저 결혼하더라.”


친구들이 ‘나는  살에 결혼하고 싶다’, ‘나는 이런 남자랑 만나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적이 없다. 누군가랑 사는  모습을 상상해  적은 있다. (이성애자인 나의 경우에는 남성이다.) 남성이 나에게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부모 버프나 스펙 없어도 혼자 살아보겠다고 나를 위로하고 다독여왔던 삶에 상대방이 주는 안락함은 벼락에 떨어지는 기분이라 느껴졌다.


삶은 나에게 보란 듯이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이고 ego 산산조각 나는 연애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걷잡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건강하지 않은 연애였다. 서로를 무너뜨리고 바닥을  그런 연애였다. 이별해야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함께 보내왔던 시간과 추억과 이별하는  힘든 일이었다.


2016 12 겨울, 스웨덴 예테보리로 떠났다. 스웨덴은 아빠의 누나인 큰고모와 나의 사촌 동생 슬기가 산다. 고모는 40 전에 스웨덴 남자와 결혼을 하셨다. 중학생일  창원에서 혼자 엄마 아빠도 타보지 못한 KTX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으로 가게 되었다. 시시한 것에도 까르르 웃던 청소년기 여자아이  (나와 사촌동생)  방을 같이 쓰면서 가까워졌다. 사촌 동생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하다가 겨울에 스웨덴에  적이  번도 없었다는  알게 됐고 이번에는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기로 했다. 지루했던 일상에서 변화가 필요했다. 큰고모는 내가 주급 페이에 연연하면서  집도 없다는 것에 못마땅해했다. 어느 한국 고모, 이모들처럼 잔소리를 장전하고  기회가 생긴 거다. 반면에 나는 영화 속에서만 보던 외국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니 벌써 설렜다.

공항에 마중 나온 가족의 표정이 어떨까 궁금해졌다. 익숙한 가족들의 얼굴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역시 머리가 큰 어른 가족은 가끔 봐야 한다. 서로의 심신 건강을 위해서 그게 이롭다. 사촌 동생의 집으로 향했다. 사촌 동생이 자기 집이 생겨서 이제는 고모 댁에 머무르지 않고 사촌 동생 집에서 머무르게 됐다. 사촌 동생 집에 오다니 감회가 남달랐다. 처음으로 스웨덴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재밌게 따뜻하게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고 새해가 다가오기 전날 뉴 이어스 이브. 12월 31일은 사람들이 크게 파티한다. 우리는 사촌 동생 친구와 집에서 파티하기로 했다. 연어 수프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끓이고 보드카 술병에 초록색 사탕을 넣고 흔들어서 술을 만들었다. 술 색깔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오랜만에 보는 사촌 동생 친구들이랑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한 사촌 동생 친구가 나한테 다가와서 물었다.


사촌 동생 친구 T: “혹시 틴더라고 알아?”

순진무구한 만 26세 수연: “아니.. 뭔데?”

사촌 동생 친구 T: “데이팅 앱인데 우리 그룹 만들 테니까 너도 들어와.”


나는 데이팅 앱이라는 걸 모르는 순진한 만 26세 아시아인 여자 성인이 되었다. 나도.. 그런 거 안다고. 순종적인 아시아인의 편견에 나를 못 박은 거 같아 얼른 서둘러 데이팅 앱을 깔았다. 끊임없이 연애를 하고 있던 내가 틴더라는 앱이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없었다. 그래. 온 우주에서 나에게 삐걱거리는 연애도 청산하라고 이야기 하나. 이제 자만추는 그만하자. 사촌 동생이 슬며시 나에게 말했다.


사촌 동생: “근데.. 이 앱이 좀 직설적이거든.”

수연: “응? 뭐가?”

사촌 동생: “아.. 아주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그런 의미를 가졌거든. 하하..”


틴더라는 앱은 정말 말 그대로 목적이 뚜렷한 남녀가 만남을 위한 수단이었다. 나는 어차피 스웨덴을 떠날 날이 3 일 밖에 남지 않아서 ‘나에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 (=아이고 안타깝게도 쓸 시간이 없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일 뒤 나는 침대에 소파에 누워서 엄지손가락으로 열심히 왼쪽 오른쪽 Yes와 No를 눌렀다. 물론 한 사람을 사진으로만 보고 Yes와 No를 하는 행위가 야만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아니,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판단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 재미에 빠지고 말았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나의 엄지손가락은 조금 조용해졌다. 한국에서는 틴더가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저 가 없다는 것은 곧 내가 그 앱을 열어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과 같았다. 어느 날, 대학교 선배가 카톡이 왔다.


선배: “뭐하노? 요새 어떻게 지내는데?”

수연: “저야 뭐 별일없 이 잘 지내죠. 운동하고 달리기하고 요가하고 일하고 숨 쉬면서 잘 지내요.”

선배: “아니 내가 마라톤을 가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는 거야..”

수연: “마라톤 같이 가자고요? 선배 여자 친구한테 말했어요?”

선배: “여자 친구는 마라톤에 관심 없거든. 그래서 같이 뛸 사람이 없다.”

수연: “저도 마라톤 뛸 만큼 달리기 몸을 만들어 온 게 아니라서.. 마라톤 몇 km인데요?”

선배: “6km”

수연: “아 그 정도는 연습 안 하고도 뛸 수 있을 거 같긴 한대. 선배 여자 친구가 괜찮다고 하면 마라톤 같이 갑시더.”

선배: “알겠다이”


선배의 여자 친구가 전혀 나를 경계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스포츠에 진심이었다. 왜냐? 나는 인문대학 체육대회를 5 연속 참가한 시조새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배의 여자 친구와 같이 축구도하고 발야구도 했다. 나는  사실에 우쭐했다. ‘영문학과 레전드로 남을 여자 선배.’ 그리고 선배 일은 선배가 알아서 하겠지 내가 무슨 상관이야. 과도한 도덕성과 오지라퍼 레이더를 껐다. 그래서 2017 4 서울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참가하게 되었다. 미리 이태원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숙소를 예약했고 나는 하루 전날 올라갔다.


나는 혼자 놀기의 달인이다. 중학생 때 주말 토요일 조조할인을 받기 위해 할머니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혼자 갔다. 오히려 혼자 보는 게 더 편했다. 그러던 내가 토요일 밤 이태원에 덩그러니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자니 뭔가 쓸쓸했다. 그래서 나는 ‘틴더'를 켜고 말았다. 혼자 있는 쓸쓸함에 패배한 기분이 들었지만, 동시에 호기심과 흥분이 넘쳐났다. 틴더를 켰다. 어차피 나는 서울에 안 사니까 다시 볼 일도 없겠지? 열심히 Yes or No를 눌렀다.


수연: “선배 어디예요?”

선배: “ 지금  늦게 출발하게   같다.”

수연: “얼마나 늦게 오는데요?”
선배: “내가 도착하면 연락할게.”


나의 첫 번째 틴더남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첫 번째 틴더남: “맥주라도 같이 한 잔 할래요?”

수연: “좋아요.”


첫 번째 틴더 남은 공대생이었다. 연애도 한두 번 해봤을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뿜뿜나는 남자였다. 나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는 하지만 그가 잡고 있던 맥주잔은 지진 난 듯이 덜덜덜 흔들렸다. 여자 앞에서 떨려서 맥주잔을 제대로 못 잡는 첫 번째 틴더남이 귀여웠지만 나는 실망했다. 이 어플에. 아니. 틴더는 목적이 분명한 앱이라며. 나 큰 마음먹고 이 앱을 켰는데 아주 순진하고 순수한 남자를 틴더에서 만나게 된 걸까. 조금 속상했다. 나는 공대남과 인사를 나누고 선배를 만나러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새벽 1시. 드디어 선배가 오고 우리는 술을 마시며 미뤄왔던 이야기를 나눴다. ‘띠링’ 알림이 왔다.


라우리 아호넨: “하이”

수연: “하이”


누가 누군지 잊을 만큼 Yes or No 눌러 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답장이나 해보지 뭐. 그렇게 2시간 동안 카카오톡으로 이야기를 했다.


라우리 아호넨: “택시 타고 여기 올래?”

수연: “나 친구랑 달리기 가야 해.”

라우리 아호넨: “달리기 가지 말고 우리 집에 와.”

수연: “지금?”

라우리 아호넨: “아니면 달리기 끝나고 우리 집 오면 내가 아침에 바나나 팬케이크 만들어줄게.” 라우리 아호넨: “그리고 S로 시작하는 음흠흠과 바나나 팬케이크. 어때?”

수연: “좋아.”

라우리 아호넨: “나 7월에 한국 다시 돌아오려고.”

수연: “그래?”

라우리 아호넨: “내일 만나면 내가 더 이야기해줄게.”

수연: “그래. 나는 이제 진짜 자야겠다.”

라우리 아호넨: “달리기 잘해!”


새벽 4시 30분까지 이야기하다 이러다가는 내일 못 일어날 거 같아 눈을 감았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6km  알았던 마라톤은 12km였고 나는 처음부터 페이스 조절을 잘못했다. 입에서  맛이 났고 배가 쑤셨다. 겨우겨우 뛰었다. (선배놈... ... 가만  두겠어) 발에 물집이 잡히고 식겁했다. 나는 어제 만나자던 약속을  지킨 채로 진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버스 안에서 세상모르게 기절했다.


월요일 아침 회사로 출근을 겨우겨우 했다. 아침에 작가실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 카카오톡이 자동 로그인되어 있었다. 내가 답하지 않은 메시지 하나가 보였다. 예의 바른 수연이의 모습이 튀어나온 나머지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클릭하고 답장을 보냈다.


수연: “그때 버스 타러 가고 있어서 답장을 못 했어. 그리고 달리기하고 떡실신했거든. 핀란드로 조심히 잘 돌아가.”


6시간 후,

라우리 아호넨: “지금 비행기야. 얼마 안 남았어. 이제 곧 집에 도착해.”

수연: “잘됐네. 홈 스윗 홈. 조심히 가.”

라우리 아호넨: “고마워. 아마 내가 한국으로 다시 여행 가면 만날 기회가 있겠지.”

수연: “응! 내가 사는 도시에 여행하러 와. 아니면 내가 서울에 가던가. 기회는 매일매일 있지.”

라우리 아호넨: “아마 다음에는 대만도 여행 가고 싶어.” (엉뚱한 답변)

수연: “오 짱이네.”

라우리 아호넨: “대만 가봤어?”

수연: “아니. 아직.”

라우리 아호넨: “아 근데 혹시 직업이 뭐야? 아니면 공부? 일?”

수연: “나는 프리랜서 작가.”

라우리 아호넨: “아하. 이제 알겠네. 그래서 니가 영어를 엄청 잘하는구나.”

수연: “고마워. 사실은  번역도 하거든. (깨알 자기 PR).  영어 전공해서 그래.”


라우리 아호넨: “진짜 아침에 달리기 하러 갔어?”

수연: “응. 12km 뛰었지.”

라우리 아호넨: “그렇게 술 마시고 뛰면 몸에 안 좋아”

우리를 그렇게 오후, 네시부터 밤 12시까지 계속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날, 3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2 일 뒤,

라우리: 아호넨: “아침에 일어났는데 니가 계속 생각나. 계획해야지.”


이 남자 뭐지.. 또라이인가? 아니면 진짜 쿨한 인간 인가? 자기 돈을 들여서 또라이짓을 할 만큼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는 걸 잘 안다. 2주 뒤, 우리는 김해 국제공항에서 만났다. 매일 영상통화에서 만나던 사람을 드디어 실제로 본다니 떨렸다. 그래서인가? 여러 번 가봤던 김해 국제공항에서 길을 잃었다. 긴장한 나머지 내가 알던 길도 못 찾고 떨었다. 우리는 만난 첫날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쭉 한집에서 같이 산다. 여자 친구 남자 친구로 만났던 우리가 이제는 부부가 됐다.


결혼 안 할 거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제일 먼저 결혼한다더니.. 친구의 그 말이 정말 맞나 보다. 비혼 주의자였던 내가 결혼을 하게 되다니. 삶은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에게 혓바닥을 내밀면서 ‘메롱’을 하고 사라진다. 그 1 초의 찰나에 내 인생을 맡긴 게 우습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찰나에 묻어간다. 참 웃기다. 연쇄살인마가 공항에 나타났다면 어땠을까? 참 웃기다. 말이 안 돼서 더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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