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서울로 이사해서 보니, 서울은 빵의 천국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빵들이 많다. 평소 빵을 좋아하던 나는 신이 났다. 앞으로 맛있는 빵집을 마구마구 갈 테다. 복싱을 대회를 자주 나가고 있어서 감량 때문에 자주 먹을 수 없었지만 그만큼 한 번 먹는 빵이 간절하고 기뻤다.
서울 빵집은 찾아가는게 아니었다. 너무 많은 맛있는 빵집이 있기에, 동네를 정해서 그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빵 종류를 파는 곳으로 골라서 가야 했다.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빵 카페를 가입했다. 솔직한 빵 리뷰가 많아 마음에 들었다. 동네별로 검색하면 보다 다양한 정보를 모을 수 있다. 닉네임을 빵에도른녀라고 설정한 나는 사람들의 고마운 리뷰에 감사 인사도 많이 달았다. 한줄글 남기기에 복싱 대회라 빵을 못 먹는다고 썼더니 사람들의 안타깝다는 리플이 쏟아졌다. 그들과 든든한 유대감이 쌓인 것 같았다.
그 중 최신피드에서 많이 언급되는 성수에 한 빵으로 유명한 카페를 봐 두었다. 화려한 인증샷에 눈이 부실 정도이다. 복싱대회가 끝난 날, 지체 없이 그 곳으로 갔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30분이 넘게 웨이팅을 했다. 다른 곳을 가자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다른 곳을 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다른 곳들도 웨이팅을 할 거란 생각에 함부로 갈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기다린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다. 복싱대회를 준비하느라 물까지 못마시고 있다가 오늘에야 겨우 뭔가 맛있는 걸 먹으러 온 건데. 화가 났지만 이건 줄선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다. 통유리로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 미웠다. 별 수 없이 속으로 삭히고 계속 기다렸다. 들어갔더니 유명한 빵들은 다 팔렸고, 잔챙이 빵들만 남았다. 맛없는 잔챙이 빵을 먹었다. 맛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다.
이렇게 기대에 차서 유행한다는 여러 빵집들을 다녔다가 실망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이내 서울빵들에게 조금 질려버렸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점은 겉보기 플레이팅 때문인건지 빵을 개별포장은 커녕 그냥 실온에 와르르 쌓아 놓고 파는 것이다. 그러면 디저트류는 다 녹을 텐데. 보고 있자면 갑갑해진다. 빵도 기본권이 있거늘. 빵권모독이다. 그리고 너무 비싸게 팔아서 아무리 맛있어도 먹고나면 손해보는 기분이다. 빵을 먹을수록 불쾌해져만 갔다.
이렇게 여러 빵가게들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다. 나는 화려한 빵들과 맞지 않다. 두껍고 뻑뻑한 단순한 빵이나 다과들을 좋아한다. 심플한 호밀빵 샌드위치, 밤식빵, 스콘, 맘모스빵, 약과 같은 것들. 묘하게 투박하고 구식인 느낌이 꼭 나같다. 화려한 빵들은 꼭 서울사람들 같다. 가까이가기 어렵고 나보다 연봉이 훨씬 비싼 것도 그렇다. 나는 그들이 싫은것도 아니고 투박한 빵을 먹읍시다 라는 아저씨같은 말도 하고 싶지 않다. 퍽퍽한대로 퍽퍽한 삶을 살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할 수록 기본이 중요하다는 것 또한 알았다. 단순한 빵들은 맛을 크림이나 소스로 가릴 수 없기 때문에 빵 자체가 맛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제빵사의 테크닉이 매우 좋아야 한다. 신선도는 기본이다. 나도 단순하고 가진게 별로 없으니까 더 노력해야 한다. 회사에서는 내가 고졸이고 회사에서 쌓은 경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해도 일을 못한다고 평가받을까봐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더 일찍와서 일하고, 더 노력하고, 기본적인 일들을 잘 해나가려고 노력한다. 사실 노력해도 잘 안되고 어제도 욕을 먹었지만 어쨌든 주제파악은 하고 있는 셈이다. 복싱을 할 때도 관장님이 어떤 화려한 기술을 쓰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체력을 더 갈고 닦고, 잽을 더 잘 치라고 했다. 단순한 걸 더 많이 반복 하라고. 거기에 길이 있다고 했다. 단순 퍽퍽빵의 삶이란 지루하고 괴롭구나.
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 책만 펴면 화려한 빵들의 이야기 뿐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계속 글쓰는 커리어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그런 좁은 삶만 사느라 소재가 없는 나를 자조하는 글들. 나는 그사람들이 자기를 평범하다고 말할 때마다 놀란다. 나는 서른살이 될 때까지 그런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너무 많아서 동네를 골라서 가야하는 서울 빵집들 같다. 이렇게 쓰니까 예쁜 빵을 시기하는 못생긴 빵이 된 기분이다. 부스러기를 잔뜩 흘리는 퍽퍽한 빵. 못생긴 빵은 이렇게 오늘도 타자기로 부스러기를 흘린다. 하루하루 기본을 더 다듬자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