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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핀수 Apr 27. 2024

친구 親舊

친구가 세상의 전부인 시절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그때 한창 유행하던 아이돌 그룹 멤버의 이름을 외우고, 좋아하는 척하기도 했다. 대화에 끼려고 또래 아이들이 많이 보는 방송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렇게 나의 세계는 친구들에 의해 넓혀지고, 일그러지기도 하면서 팽창해 나갔다. 나는 친구보다 애인이 먼저가 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이고 의리를 꽤나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약간 이상하게 발현이 되어 같은 무리 내에서 다들 아는 사실을 나만 모른다거나 하는 등 소외감이 드는 것을 못 참았다.


진정한 친구라면 친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꿰고 있어야 하고, 친구의 힘든 일은 만사를 제쳐두고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어야 했다. 진정한 친구를 찾고 싶어 누군가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노력은 때때로 모난 돌이 되어 나를 쿡쿡 찔렀다. 이름 모를 이들이 친구들의 애인자리를 꿰차고, 더 이상 내가 일 순위가 아닐 때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섭섭함과 서운함이 밀려왔지만 '진정한 친구'는 그런 것에 연연하면 안 되니까 겉으로 티 내지 않았다. 우리는 영원히 멀어지지 않을 거라는 우정이 가득 담긴 편지가 내게는 든든한 부적과도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내가 나이를 먹어가며 책임져야 할 것이 늘어갈수록, 친구에 연연하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그 자리에 있어 매일 보던 친구는 어느새 시간을 내어 약속을 잡아야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의 소식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친구의 소식을 가장 마지막에 접하게 되는 사람이 내가 되어도 슬프지 않았다. 어릴 적의 모난 돌은 세월의 풍파에 점차 둥글둥글해져 갔다. 처음 이 변화를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만큼 변해버린 나에게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인간관계란 늘 누군가의 마음에 달린 것이니, 아무리 노력한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줄 리 없는 불확실한 것에 '진정한 친구'라는 이름을 붙여 매달려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친구가 더 이상 소중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친구'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진심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나를 (물리적으로) 떠나야 했던 친구에게 서운함 보다는 부디 자신의 결정에 후회 없는 순간들만 가득하기를, 그리고 꼭 건강하기를, 그렇게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 머리를 스쳐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보고 싶다. 다들 무탈하게 잘 지냈으면, 그리고 가끔씩 내 생각해 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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