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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마 Nov 17. 2022

그래서 제가 이상한 사람인 거죠?

예민하고 화가 많거든요.

 난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남들도 종종 나를 특이하다고, 이상하다고 말했다. 우선, 어려서부터 나는 누가 봐도 예민한 아이였다고 한다. 예민하게 타고난 기질과 그로 인한 행동 탓에 남들에게는 물론이고 가족들로부터도 유별나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런 말과 시선들이 굳이 나를 이상하다 지적한 게 아니었단 걸 이제는 알지만 어린 맘에 나는 ‘내가 좀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결국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확신했고, 더 나아가 나는 이상하고 나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밝고 긍정적이어야 예쁨 받는다고 생각했다. 사랑받고 싶었고, 주인공까진 아니더라도 소외되긴 싫었다. 예민하고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을 말하는 건 곧 불평이 많은 아이가 되는 것만 같았다. 때문에 어른들로부터 혼이 날까 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까 봐 어릴 적부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숨기기 바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예민한 만큼 남들의 표정과 분위기, 필요를 금방 눈치챘던 난 적절히 숨기고 적당히 연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딜 가나 어울리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 편이기도 했지만 늘 신경 쓸 게 많았고 생각이 저 멀리까지 뛰쳐나가 여러 가지를 걱정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는 행동을 많이 했고 진짜 내 성격이 뭔지 헷갈리고 힘들었다. 기분 좋게 어울리고 싶어서 순간마다 애를 쓰고 나니 외로움이란 기분은 대가를 치르라는 듯 나를 졸졸 따라왔다. 누군가와의 어울림 후에 느껴지는 외로움과 공허함은 이내 곧 당연해졌다.


 글쓰기를 좋아했다. 일기가 참 좋았다. 하지만 일기장도 선생님이 보기 때문에, 혹은 비밀 일기장을 쓴다 해도 언젠가는 누군가 볼 지 모른다는 그 불안한 생각이 맘에 걸려 한마디 한마디가 참 불편해졌다. (안네의 일기가 세상에 나와 세계명작으로 오래오래 사랑받는다는 건 내겐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다!) 특별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이 글을 본 사람은 혹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작은 걱정들이 따라다녔고 내 기준에 평범하지 않은 내용은 당연히 숨겨 두었다. 누가 조심하라 시킨 것도 아니지만 즐겁게 글 쓰는 능력을 빼앗긴 기분이 들어 억울하기까지 했다. 내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이 긍정적이지 않다 해서 나쁜 것만이 아닌데, 스스로를 흑백논리로 철저히 재단하며 여러 감정을 꽁꽁 숨기고 걸러내는 데에만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솔직하지 못한 내가 싫어졌다.


 시간이 흘러 (어디까지나 나만의 기준이었을 테지만) 항상 밝은 척, 착한 척을 하며 내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다른 어른이 되었다. 그건 작정하고 하는 연기가 아니었다. 그래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생겼던 건지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척’들을 완벽하게 해내진 못했지만 긍정적인 수식어는 다 갖다 붙인 사람으로 생활하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면 그런 사람이 될 줄 알았고,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면 좀처럼 힘들었던 것들이 너그러워지고 자연스러워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내 예민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정도껏 참고 합의 보는 정도가 아니라 어느새 의사 표현을 조금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건 결국 또 나도 모르는 억울함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20대를 보내던 나는 겉으로 보기엔 여전히 친구관계도 비교적 원만하고 사회생활에도 문제없어 보이는 밝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역시 나름의 많은 것을 참고 있던 나는 ‘참고 있다는 것‘에 무의식적으로 카운트를 달고 있었다. 싫어하는 사람도 아닌데 사람을 만나고 나면 불편함은 물론 불쾌한 감정이 쌓이는 날이 많아졌다. 사실 참을 것도 없었다. ‘이번만 참는다.’라고 했지만 내가 말을 안 한 거지 참을 게 아니었다. 내 의사 표현과 거절이 어떠한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곤란해도 자꾸만 반대로 말했다. 정말 작은 거절도 할 줄 몰랐다.


 그렇게 엉뚱하게 맞춰주고 참는다는 마음이 쌓이다 보니 이따금씩 나오는 감정은 바로 화였다. 갑자기 화를 내고 나면 속이 시원하기는커녕 온몸이 아프고 속이 안 좋았다. 화를 내고 난 뒤엔 정작 내가 왜 그만큼 화가 났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부터 화를 내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내가 너무 무서웠다. 제발 꿈이었으면, 그야말로 리셋 버튼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반복됐다.


 나의 화는 잠잠하다 싶을 때면 주기적으로, 그렇지만 종잡을 수 없이 내 의지와는 다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럴 때면 모든 것이 망해버렸다는 느낌에 무지 괴로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사실은 이렇게 나쁜 사람이란 걸 들켰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 날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웠다. 너무나도 창피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 감정과 기분은 화에서 후회와 반성, 그리고 창피함으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나의 부정적인 감정 중 가장 뜬금없고 무섭게 나타나던 화는 슬프고 엉뚱하게도 주위의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표출된다는 것. 그게 가장 끔찍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나, 내가 가장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그럴 마음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화를 내고 상처를 주는 게 정말 미안하고 괴로웠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주변에서 괜찮다 해도 자괴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화낸 사람은 나인데 우습게도 내가 위로받고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죄책감이 스스로를 향한 분노로 커졌고 괴로움에 작은 자해를 하기도 했다. 나는 미운 오리 새끼라고 생각했다. 아니 미운 오리 새끼는 사실 화려한 백조였지, 난 애초부터 괴물 같은 아이인 걸까 생각했다. 이렇게 이상한 나를 숨기고 감추는 걸 언제까지 해야 할까,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괴물의 자아가 튀어 나갈까 봐 일상이 조마조마하고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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