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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마 Nov 22. 2022

모순 덩어리의 하루

내가 이상한 거니까.

스스로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 때면 난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알던 것도 주변 반응에 따라 모르는 게 되었고, 내 마음에 아닌 것도 맞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사람.” 이 생각을 떨쳐내고 싶었는데 그러기란 쉽지 않았다. 혼자 힘으로는 어려우니 상담을 받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 까짓게 무슨, 세상에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상담해주시는 분이 시간 아까워하겠다!’ 하고 힘들어도 최대한 내가 해결해 보자고 결심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포용력도 생기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능숙함이 생길까 싶었다. 그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아보니 심각하게 많이 만났던 것 같다. 예민한 내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 하나, 섬세함을 시도 때도 없이 남발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편안해하고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나를 무척 좋아해 줬다.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와 칭찬이 가득 돌아왔다. 여전히 난 뭔가를 주장하고 표현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주위의 그런 반응에 내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고 덩달아 자존감도 올라가는 듯했다. ‘아, 내가 조금 답답하더라도 이렇게 주변을 웃게 해 주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곁에 가득가득 두는 게 내가 살아갈 길인가 보다.‘라는 생각도 했다. 사람들이 자꾸만 나를 불러주고 좋아해 주니 참 고맙고 뿌듯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나를 ‘좋아해 준다’는 사람이라면 우선 맞춰주고 보기를 반복하던 어린 날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나는 사람들과 이야기에 둘러싸여 나는 다시 작아져 있었다. 지치고 힘들었다.


그 사람들은 날 힘들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을 텐데 왜 힘들지? 결국 문제 원인은 나일 거라고 자연스레 생각했다. 사람들과의 만남 후 지쳐가는 내가 한심하고 원망스러웠다. 여전히 작은 거절, 나를 챙기는 최소한의 방법을 모르던 나는 주변을 챙기고 따라다니느라 내 상황이 늘 빠듯했다.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여유가 없어진 탓에 너무나 힘들어졌다. 정말이지 한마디로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했다. 단지 너무 피곤해서 약속이 취소되길 바라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내가 바라는 만큼 일어나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다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늘 오케이 하는 내게 늘 좋은 사람만 오진 않았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나를 믿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실망감을 주기 싫었다. 사실 그 사람이 실망할 거라는 것도 나만의 짐작일 뿐이었지만 당시엔 분명 그럴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거절 후엔 죄책감이 들 것 같았고 그 죄책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단순히 내가 싫으면 싫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건데 과하게 생각이 많았다. 내 입장에서 무리하게 느껴지는 부탁이 남에게는 별 거 아니라서 내게 부탁을 한 걸까? 거절하면 내가 쪼잔해 보이거나, 저 사람이 너무 실망하고 상처받으려나? 이걸 거절하면 난 나쁜 사람이 되는 걸까? 그냥 들어주면 되는 건데 내가 유별나니까 혼자서 또 예민하게 생각한 걸까? 그래, 나는 특이하고 이상한 사람이니까. 결론은 또 오케이!


어떠한 크기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힘든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부정의 표현이라면 늘 못했고 그 결과, 나는 그 어느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부탁이나 고민을 들어주느라 시간은 물론이고 어느새 돈도 참 많이 썼다.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 역시 또래 친구들에 비해 자주 듣는 편이었으나 다행히도 돈은 빌려주지 않았다!)


‘정말로 이번이 마지막이야.’하는 다짐을 수백 번은 하는 듯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사정과 고민에 이번까지 만이라는 건 없었다. 들어주고 나면 그다음 거절은 더 힘들어졌다. 전화 한 통도 거절 못 해 잠을 못 잤다. 내가 들은 누군가의 고민에 비해 잠을 자고 싶다는 내 사정은 너무나 사소해 보였기 때문이다. 역시 내 그릇이 작아서 힘든 거라고 생각했다. 나를 믿고 털어놔 주는 것에 감사하자는 생각으로 버텼고 참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이 싫다는 마음이 가득하면서도 따라가는 건 역시 괴로웠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내게 좋은 일이, 나의 그 노력한 마음이 돌아올까 싶어 이 참에 미래의 덕을 쌓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건 그냥 의미 없는 정신승리였을 뿐. 내가 참는 그 시간을 지나 순간순간 마주하게 되는 미래들은 뭔가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렇게 당장 지금을 사는 난 너무나 불행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남들이 내게 ‘넌 정말 착하다, 들어줘서 고맙다, 밥 한 번 살 테니 만나자’ 하는 말들이 더는 고맙지도, 뿌듯하지도 않았다. 미안하지만 다 부담스러웠다.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았다. 약속이 피곤하다는 맘에 다치고 싶었던 내 생각은 곧 극단적으로 커져갔다. ‘난 진짜 모순 덩어리구나, 이 성격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려서부터 문제였을까?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걸까, 그럴 수는 있을까? 아니면 엄마 뱃속에서부터 정해진 걸까?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걸까? 내 인생은 망했다. 나 같은 애는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구체적으로 자살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우연한 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아예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종종, 쉽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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