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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석 Oct 05. 2016

권력은 유익한 가치에서 출발한다

백성이 먼저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일을 잘했던 롤 모델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사이클을 잘 타기 위해 열심히 연습만 하는 것보다는 사이클 경기의 토대인 투르 드 프랑스를 공부하고 익히면 자전거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춘추시대의 패자가 되었던 제나라 환공을 보필한 재상 한 사람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희가 머릿속에 품어야 할 의문은 ‘과연 그 재상이 어떤 일을 했는가?’ ‘재상이 왜 이렇게 일할 수 밖에 없었는가?’ 입니다.


앞서 말한 재상의 정체는 누구일까요? 그는 우리에게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로 유명한 관중입니다. 삼국지에서 유명한 인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제갈공명이 닮고 싶어했던 사람으로, 중국에서는 관중과 제갈공명을 합쳐 중국의 2대 재상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이유로 제갈량이 이토록 관중을 존경했던 것일까요? 우리는 그 내용을 그의 언행과 행적이 담긴 책인 관자 (管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관자는 총 86편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0편이 분실되어 현재는 76편만 전해지고 있으며 그 내용은 정치, 법률, 제도, 경제, 군사, 법학, 철학 등 다방면에 걸쳐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사상백과사전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명저이지요. 이 중 제일 우리가 눈여겨 볼 부분은 바로 경제와 정치 부분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제와 정치가 백성들이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데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관중은 이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주군인 제환공에게도 지속적으로 관련 내용을 건의하고 실제 정치에 반영되도록 노력했습니다. 


관중의 경제철학은 ‘치미(侈靡)’로 요약됩니다. 치(靡)란 크게 베푼다는 뜻이고 미(靡)는 많이 소비한다는 의미입니다. 관자 35편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며 그 본 뜻은 ‘경기 부양의 물꼬를 트기 위해 소비를 장려한다’ 입니다. 제환공의 질문에 관중이 답한 내용을 살펴보면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음은 관자 치미(侈靡)편에 기록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음식과 화려한 음악은 백성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만족시키고 원하는 것을 넉넉하게 하면 그들을 부릴 수 있을 것입니다. (……) 부유한 사람이 충분히 소비하면 가난한 사람은 일자리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백성이 편안한 삶이고 온갖 생업을 진작시켜서 먹고 살게 하니 이것은 백성이 혼자 스스로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군주가 나서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위의 문구에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부자의 소비량이 많으면 저절로 경제가 돌아간다는 낙수효과(영어로는 Trickle Down Effect 라고 합니다)를 무려 2000년 전에 미리 예측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들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될 과제를 생존으로 보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에서 언급했던, 역사의 제 1 전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백성이 잘 되어야 나라의 기반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상식이지만 신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던 당시에는 꽤 파격적인 발상이었습니다. 물론 낙수효과는 요즘 들어 많이 비판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건 일단 논외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2000년 전에는 이런 문제를 예측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제도의 구조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사실 무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관중이 시대를 앞서서 미래의 경제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위의 소비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어 민심을 얻도록 하는 체계입니다. 관자 목민 편에는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피하고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필요한 4가지 조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백성은 근심과 노고를 싫어하므로 군주는 그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줘야 한다

백성은 가난하고 천한 것을 싫어하므로 군주는 그들을 부유하고 귀하게 해줘야 한다

백성은 위험에 빠지는 것을 싫어하므로 군주는 그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해줘야 한다

백성은 후사가 끊기는 것을 싫어하므로 군주는 그들이 잘 살도록 해줘야 한다


위의 4가지 문장은 오늘날의 정치에 적용해도 좋을 정도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이 제일 좋지만 그것보다는 백성들이 스스로 생산하고 소비하며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유대인 식으로 말하면 ‘고기를 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지요. 이에 대한 전략으로 관중은 사농공상의 신분에 따라 거주지를 구분하되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같은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근거지를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제환공에게 권했습니다. 결과는 역사책에서 보는 그대로입니다. 제나라는 발전했고 결국 춘추시대의 패자가 되었지요.


관중이 건의한 이 방안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더 좋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선비들이 모이면 토론을 하면서 학문의 깊이가 더해질 것이고 대장장이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겨루며 금속공예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사회 내에 정착될 때 관중은 백성들의 생산과 소비를 증대시킬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국가의 힘이 커질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백성들에게서 나온 힘을 바탕으로 나라를 키워야 된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관중이 오늘날까지도 높게 평가 받는 이유는 그의 말이 모두 옳기 때문이 아닙니다. 관중이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유는 이전까지의 역사와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우면서도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전의 역사를 기반으로 하여 현대를 살아갈 힘을 얻고 이를 자신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 향후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관자를 읽고 단순히 그의 철학과 치세방법을 익히는 것이 공부의 목적은 아닙니다. 그가 제환공에게 조언하기 위해 했던 고민을 더듬어보고 나라면 어떤 전략을 제시했을지 생각하는 가운데 창의적 사고력이 발달하게 됩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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