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의석 Dec 24. 2016

천재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시선(詩仙) vs 시성(詩聖)

우리 주변을 보면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종종 발견됩니다. 이들을 보면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아우라가 확실히 있습니다. 무언가를 척척해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자괴감이 듭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도 이처럼 전설로 회자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가깝고도 먼나라인 중국을 살펴보죠. 비록 우리가 문학에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태백과 두보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이들이 이름을 날린 분야는 ‘시(詩)’입니다. 이태백은 시선(詩仙), 두보는 시성(詩聖)이라고 불렸습니다. 신선과 성인이라는 말을 함부로 붙이지 않았던 중국의 문화를 생각해봤을 때 그들이 얻은 칭호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을 살펴보면 글을 쓰는 스타일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먼저 이태백의 경우 한 번 입에서 나오면 바로 시가 될 정도로 탁월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이 시가 되는 경우도 매우 흔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시가 천 편 이상이니 작가인 저로서는 정말 부러운 재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에 두보는 한 번 쓴 시를 계속해서 고치며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퇴고의 과정을 거쳤던 거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더 좋은 문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우상이 될 모습이기도 하죠. 


이 과정에서 둘 중 어떤 방식이 나은지 고민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저는 두보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태백과 같은 천재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태백 역시 시를 입 밖으로 내기 전에 마음 속으로 수천번 고쳤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파악하지 못했던 거겠죠.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기존의 것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면서 항상 내가 사람들에게 얼만큼 좋은 것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소중한 가치를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럼 세상은 여러분들에게 밝은 빛을 비춰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물론 제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올린 글이 마음에 드셨으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 구독을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인문학 꾸러미를 선물로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글로 찾아뵐 것을 약속 드립니다. 


세모공 인문학 정기메일 서비스 신청



매거진의 이전글 연필깎이에 대한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