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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ndy Garnet Jun 22. 2020

박 새리를 만나다

나의 러닝 파트너




최근 박 새리를 TV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반가운 마음에 예전 추억을 꺼내어 든다.








이야기는 너무 오래전 국민학교로 돌아간다. 나는 가정 형편 때문에 서울에서 시골로 또다시 서울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전으로 국민학교를 여러 번 옮겨 다녀야 했다. 대전의 한 국민학교로 전학 온 것은 5학년 때였다. 새로운 학교에 전학을 온 나는 학교 친구들과 오래가지 않아 친해졌다. 그 계기가 된 것이 운동회였던 것 같다. 

예전에는 5월 15일 스승의 날이면 운동회를 했는데 난 자그마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를 꽤 잘했기 때문에 친구들 눈에 띄기 시작했다. 




운동회가 끝나고 어느 날 학교 육상부 선생님께서 반으로 찾아왔다. 학교 끝나고 운동장에서 보자고 하신다. 무척 무뚝뚝하고 무섭게 생긴 육상부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어린 나는 확 졸았었을 거다. 

방과 후 운동장에서는 육상부 아이들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뛰고 뛰고 계속 뛴다. 힘들 것 같았다. 여름이 다가오는 데에도 땡볕에서 달렸다. 한참을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게 육상부 선생님은 육상부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오 마이 갓! 내가 육상부를!' 한편으로 두렵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반가웠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던 때에 육상부의 일원이 되면 왠지 감투 라도 쓴 것처럼 힘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덥석 "네!"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 대답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할지 그때는 몰랐다. 




육상부는 힘들었다. 남들보다 체구가 작아 힘들었고 남들 다 있는 스파이크 하나가 없어서 일반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것 또한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육상부 선생님은 누군가의 스파이크를 나에게 주었다. 매우 고마운 일이었지만 마냥 좋을 순 없었다. 그 스파이크는 한쪽 바닥이 깨져서 달리는 데에 좋은 감각을 주지 못했고 다리에 무리를 줄 때가 많았다.




육상부는 방과 후에 연습을 한다. 100미터를 전력으로 달리고 쉬지 않는다. 100미터를 걸어간다. 그리고 다시 100미터를 전력으로 달린다. 이렇게 하다 보면 해가 지고 어두워져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이렇게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숙제를 하는 것도 매우 힘이 들었다. 




난 계주에서 3번째 주자였다. 3번째 주자는 마지막 직선 주로의 4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줘야 하는 주자로서 곡선주로를 달려야 한다. 전국체전 예선전에서 우리는 아쉽게 탈락했다. 이유는 나와 4번째 주자의 사인이 잘 맞지 않아서 4번째 주자가 너무 빨리 뛰어 나가는 바람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고 우리는 아쉽게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바통 실수가 있기 전까지는 우린 1,2등을 다투었다.  




난 남자부에서 전교 4등이었다. 이 얘기는 육상부 남자부에서는 제일 못 뛴다는 얘기다. 그래서 난 자주 여자부 1등 러닝 메이트를 해 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박 새리였다. 러닝 메이트는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경쟁하듯 달려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이다. 이때 새리는 4학년, 나는 6학년이었다. 하지만 새리는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좋은 기록을 가졌었다. 그때에는 새리 러닝메이트를 해 주는 것이 조금은 창피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 또한 멋진 일 아니었나 싶다. 

새리와 러닝 메이트를 자주 하곤 했지만 말을 많이 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거의 1년 동안 함께 훈련했지만 말이다. 새리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었던 아이였다. 묵묵히 열심히 달리는 단단한 여자 아이였었다. 




그렇게 국민학교 육상부의 시간은 흘렀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육상부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키도 크지 않았고 국민학교 육상부를 하면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정도 떠났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시간은 흘렀다. 그러다 TV에서 새리가 골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모습은 국민학교 때의 모습과 같았다. 묵직하게 자신을 훈련하는 모습이 그대로였다. LPGA에서의 감격적인 순간을 보며 '역시'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육상을 그만두고 골프를 시작하면서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려서부터 혼자 해야 하는 골프는 분명 육상과는 또 다른 어려움과 고통이 존재했으리라...




이 이야기가 벌써 33년 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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