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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인 Jan 30. 2024

[24.01.30] 열려있는 가방

글쓰기 연습

아침에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공원에 초등학교 6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속으로 '학교 안 가나? 아, 지금 방학이지!'를 생각하고 있던 중, 그 아이가 맨 백팩이 활짝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가방 앞칸의 지퍼가 활짝 열려 앞으로 축 쳐져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가방을 닫아줄까 하다가 강아지가 다른 곳에 정신 팔려 꼼짝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약간 먼 거리에서 "가방 열렸어요!"를 외쳤다. 핸드폰에 정신 팔려 못 들은 것인지 자기에게 던진 얘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그냥 지나가려는 아이에게 한 번 더 외쳤다. "저기요! 가방 열렸어요! 가방!" (다행히 주변엔 그 아이 빼곤 아무도 없었다.) 아이는 그제야 나를 쳐다보더니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 확인했다. 그리고 열려있는 가방을 닫으며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가던 길을 가면서 한 번 더,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표정은 덤덤했지만, 두 번이나 말할 정도면 안심됐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순간 내 어린 시절의 장면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3-4학년 즈음에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집에 가는 길에 나보다 큰 언니들이 성큼 뒤로 다가오더니 가방 열렸어, 하고 닫아줬던 기억이 난다. 그 언니들끼리 뭐라 뭐라 하면서 지나갔는데, 내가 고맙다는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나도 저번에 가방 열고 다녔잖아 이런 이야기를 하며 지나갔던 것 같다. 그다음으로는 중학교 시절 웬일인지 가방을 메고 급식실로 가는 길에 줄을 서있었는데 급식실을 같이 쓰던 고등학생 언니가 가방 열렸어하고 지퍼를 잠가주었다. 아마도 나는 고맙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 나는 무엇보다 열려있는 가방을 보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다가가 가방이 열려있음을 주인에게 알린다. 갑자기 내가 가방에 손을 대면 놀랄 수도 있기 때문에 먼저 열려있음을 말로 알리고, 원한다면 지퍼를 닫아주는 행위까지 마친다.


사실 내가 이 도움에 적극적인 것은 아직까지도 종종 가방을 열고 다니기 때문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가방을 뒤적거리고는 지퍼를 안 닫고 그냥 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시간이 지나 열려있는 가방을 보면 창피하다는 생각보단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거야!'하고 서운함이 더 크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의 가방을 닫아준다면, 그 사람 또한 가방이 열린 누군가를 도와줄 것이고 그렇게 돌고 돌아 또 나도 도움받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다른 이의 가방을 챙겨주는 것이다. 만약 열려있는 가방을 말해주면 상대방이 창피해할까 봐 주저하는 분이 있다면 순간의 당황스러움이 내내 열고 다녔다는 창피함보다 나으니 꼭 알려주시길... '가방 열렸어요(소곤)' 하고. 오늘도 누군가의 가방과 존엄을 지켜주었으니 나 스스로를 칭찬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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