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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을가다 Aug 09. 2017

칭다오

양꼬치 엔 칭다오, 맥주박물관, 크리스마스 

2015년 12월 25일 

오늘은 메리 크리스마스다! 홀로 중국의 칭다오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바쁘게 살아오던 나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서울 가는 것만큼이나 가까운 거리의 비행이었다. 하지만 성수기이다 보니 많은 비행기가 이착륙을 하기에 착륙 지연 사태가 일어났다. 예정보다 1시간가량 늦게 도착하였다. 공항을 나오자 여기가 중국이란 걸 실감하게 되었다. 야바위꾼 같은 사람들이 택시 호객행위를 하였고 공항에 가득 찬 인파들 역시 인구가 많은 나라라서 그런가 새까만 머리카락이 빼곡히 들어찬 모습이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예약한 숙소로 이동을 하였다. 중국에서는 오직 중국말만 통한다고 들었다. 왠지 미지의 세계에 온 것처럼 긴장이 되었다. 난 버스기사에게 나의 목적지는 언제 도착하냐고 물었다. 그의 짧고도 단호한 한마디"Next" 긴장도 풀리고 재미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이동 중에 보이는 모습들은 어릴 적 보던 80~90년대의 한국의 풍경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였고 난 체크인을 하였다. 난 지도를 꺼내어 들고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하였다. 요즘 사람들처럼 앱을 쓰는 것에도 그리 익숙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저 발길이 닿고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여 그곳을 즐기는 편이다. 버스를 타고서 이동 하였는데 초행길이라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모르지만 저 멀리 잔교라 불리는 바다 위로 연결된 정자 하나가 보였다. 일단 버스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오늘 날씨가 심상치 않다. 하늘이 온 통 뿌였고 나의 눈과 마음까지도 무겁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너무 하늘이 흐릿하기에 운치 있는 구경은 물 건너 갔다. 나중에 뉴스로 들은 사실이지만 내가 갔던 그 날이 중국에서 그 해 겨울 최악의 미세먼지가 덮친 날이었다고 한다. 자 이제 바다 위로 쭉 뻗은 다리와 거기에 있는 한 폭의 정자가 나를 기다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관람 중이었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도 몇 컷을 찍었는데 정신이 없었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두고 조용히 둘러보았다. 사실 잔교의 역사나 그 의미도 잘 모른다. 난 그저 2015년 12월 크리스마스의 어느 날을 이곳 중국의 칭다오 어디에서 보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잔교가 있는 곳은 유럽으로 따지면 구시가 같은 곳이었다. 그 주위에는 기독교 교회, 소어산 공원, 성당 등이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난 현대식 상업시설물과 건축물이 즐비한 신시가로 가보려 하였다. 그중에서도 5.4 혁명 광장이 있는 마린시티로 말이다. 해 질 무렵의 시간 그리고 나쁜 날씨 속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지나가던 어떤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 사람도 친절히 나에게 설명을 해주려 하였지만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말을 하려니 대답을 못해주고 그저 답답해하는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지만 낯선 외국인을 도와주려던 그의 호의에 감사할 따름이다. 일단 무작정 걸었다 걷다 보면 택시가 보이겠지 싶어서이다. 그런데 걷다 보니 퇴근시간이 겹치면서 차는 많아지고 택시를 잡기는 더욱더 어려워졌다. 우여곡절 끝에 한대의 택시가 내 앞에 섰다. 외국인임을 알아챈 그가 어디로 가냐 물었고 흥정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5.4 광장까지 가는 요금으로 50(한화 약 8300원 정도) 위안을 요구하였다. 일단 난 30위안을 불렀고 기사는 거절하였다. 이미 해는 다 저물었고 점점 체력이 바닥이 되어가고 있었고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그가 짜증 나고 괘심 했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 생각하면서 다음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난 망설임 없이 30위안을 불렀고 그는 잠시 주춤하더니 오케이 사인을 보내었다. 이리 기쁠 수가 어서 가서 마음껏 칭다오의 밤을 느끼고 싶었다. 약간의 긴장도 몰려왔지만 어서 이 택시를 타고 마린시티로 가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택시 안은 우리나라의 80년대 스텔라 택시를 연상시켰다. 낡은 시트와 손때 묻은 택시 안 기사는 담배도 자연스럽게 피워댔다. 그렇게 한 10분쯤 갔었나 보다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난 안전하고 빠르게 데려다준 그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러나 내가 지불한 30위안도 꽤 많은 금액을 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택시기사들이 미터기를 누르지 않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바가지를 씌우려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멀리 빨갛게 불타오르는 5.4 혁명 광장의 횃불 모양의 조형물이 형형색색 빛나는 건물들을 배경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칭다오의 랜드마크 중의 하나인 이곳에서 난 뿌연 연기의 미세먼지와 거센 바람과 싸우며 마린시티를 걷기로 하였다. 한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고 밤바다 옆에서 산책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그러다 문득 눈 앞에 보이는 음료 가게 커피를 사 먹고 싶었지만 그냥 차를 한잔 마시기 위해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던 중 가게 주인이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차리고 한국 유자차를 꺼내어 보여주며 권하였는데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한국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되었나 싶기도 하고 대중화되어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난 그린티 라떼 주문을 원하였다 그런데 착각을 하고 말았다 그린티를 그린티 라떼로 본 것이다 그냥 녹차 티백을 넣은 것인데 말이다. 어찌 되었든 추운 밤 내 몸을 녹여주기에는 딱이었다. 밤의 네온사인과 미세먼지가 섞인 크리스마스의 밤 이제 슬슬 배가 고파왔다. 여기 유명하다는 오리집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커다란 건물들 사이에 식당이 하나 있었고 거기 입구에는 커다란 오리 한 마리가 여기 오세요! 하듯이 서있었다. 붉은색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특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가게 간판과 인테리어 굉장히 큰 규모의 식당이었다. 한국에서도 잘하지 않는 혼밥이었다 대부분 커플이나 가족단위의 손님들이었는데 아무렴 어떤가 난 여행객이고 그들 문화를 즐기러 왔으니 말이다. 내 눈앞에 놓인 오리요리와 칭다오맥주 종업원이 직접 맥주까지 손수 따라주는 서비스는 정말 흥미로웠다. 음식은 약간 딱딱하고 너무 짭짤해서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분명 기억에 남는 음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맥주는 정말이지 최고였다.

배가 불렀고 난 칭다오의 밤거리를 걷기로 하였다. 밤엔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하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오늘은 그들에게도 특별한 날이다.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가게를 정리하고 문을 닫는 이들도 보인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대형마트를 발견하였다 역시 이곳 사람들도 편한 곳을 좋아하나 보다 많은 이들이 쇼핑을 하러 여기에 모여 있었다. 이곳에서 난 중국의 과자, 술, 담배 현지에 파는 물건을 사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았고 한국의 지인들에게 선물로써 딱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쇼핑을 했으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트를 나왔다.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낮에 숙소 직원이 한자로 적어준 동네 지명과 똑같은 지명을 정류소에서 찾았고 그 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역시나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하나 보다. 

사실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랐지만 숙소에 거의 다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낮에 보았던 장소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한 코스 먼저 내리고 만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조금 헤매었지만 숙소를 찾아 무사히 도착하였다. 돌아오는 길은 길을 익히기에는 최고의 훈련이기도 하였고 지리를 익히는 시간이 되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무척이나 피곤하였다. 이제 샤워하고 맥주나 한 캔 마시면서 내일 어디로 갈지 지도를 한 번 보았다 그리고 오늘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회상해 보았다 재미난 하루였다.  


2015년 12월 26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 커튼을 걷어 바깥을 보았고 화창한 날씨였다. 밤새 심하였던 미세먼지가 물러가고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얼른 씻고 나가서 오늘 하루를 즐겨 볼까 하는 마음이 앞서 나갔다. 우선 난 숙소 근처의 천주교 성당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전날 저녁에 보았던 곳이었지만 밤과 낮의 분위기는 정말 다르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독일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건물이라는데 이것이 중국 안에 있는 건축물이라는 게 이질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오늘의 첫 장소는 소어산 공원이라는 곳으로 가볼까 한다. 그런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난 택시를 타기로 마음먹고 전 날의 기억은 잊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택시를 타게 되었다. 기사가 미터기를 누르고 출발하였다. 바가지를 씌울 일은 없을 거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나에게 소어산 공원 아래엔 기독교 교회가 있으니 가보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고서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오늘 하루가 기분 좋게 시작이 되는 것 같다. 소어산 공원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입하였다. 아침 일찍 와서 일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왠지 모르게 숲 속의 정원 같다. 녹색 자연의 숲길을 오르는 것 같았다. 전망대 입구는 직원이 한 명 앉아 있었고 표를 확인하였고 거기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니 칭다오 시내를 360 각도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이어졌고 더욱더 놀라운 것은 전망대가 회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빨간 지붕의 건물들 예전 유럽에서 보았던 이쁜 집들이 떠오르며 이곳이 예전 독일 식민지였고 이것이 그들이 남겨 놓은 것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아침은 고층 아파트의 베란다에 앉아 일출을 관람하는 시간을 가진 거 같은 기분이었다. 

소어산 아래에 있는 기독교 교회 아까 전에 택시기사가 알려준 그곳이다. 성당이나 교회는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명동성당 같은 곳이었다. 여기 교회를 관람하려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고 비싸지 않은 가격이었다. 독일 식민지 시절에 지어졌다는 이 곳 교회는 유서 깊은 역사와 그들의 기독교 문화가 시작된 장소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장소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크리스마스에 이 곳에 왔으니 아기 예수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하고 가야겠다.  

벌써 11시가 되었고 배가 고프다. 난 춘허루라고 불리는 여기 맛집을 찾아가기 위해 걷기 시작하였다. 아까 아침에 시간을 아끼려 택시를 타고 이동하였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성당을 중심으로 잔교나 교회, 소어산 등은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이다. 걸으며 보는 건물은 그 저 신기하였다. 이것은 중국식 건물인가? 독일식 건축물인가? 그런 궁금증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나? 낯선 풍경 속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저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었다. 

   

식당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종업원이 식당 본 건물 옆으로 날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다른 한국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종업원이 내민 메뉴판은 손수 한글로 적어놓은 음식의 이름이었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오면 한글 메뉴판이 따로 있다니 놀랍고도 신기하였다. 내가 주문한 음식은 깐풍기와 새우튀김이었다. 음식이 나왔고 예상외로 양이 많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른 나라에서도 중국식당은 음식 양이 많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음식은 정말 맛도 한국의 중국집 음식과 아주 비슷하였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도저히 못 먹고 남기게 되었고 난 종업원을 불렀다. 남은 음식을 싸가기 위해 그에게 음식 담는 일회용 박스를 손으로 표현하였는데 한 번에 바로 알아듣고 냉큼 주던 모습이 한두 번 겪어본 일은 아닌 거 같아 보였다. 

 

식당을 나와 소화를 시킬 겸 또 걷기 시작했다. 이번엔 향신료 냄새가 어디선가 흘러왔고 난 냄새를 따라서 걸었다. 한국의 야시장 같고 70~80년대의 옛 골목 같은 곳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여기서는 소문으로만 듣던 뱀, 전갈, 지네 같은 것들도 있었다. 역시 중국인들은 못 먹는 게 없다는 말들이 공감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저녁때 다시 오기로 하고 난 여기 칭다오 맥주박물관 구경을 하러 버스를 타고서 이동을 하였다. 저 멀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맥주병 모양의 병이 보였고 그곳이 박물관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처음 야외 테라스를 보게 되는데 동상들도 그렇고 이곳 박물관 모습은 왠지 모르게 동화 속의 나오는 알 수 없는 나라의 신세계 같기도 한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테라스에 보이는 동상들은 술병이나 술통을 든 신들의 모습을 그렸고 건물 꼭대기의 맥주병 모양들은 장난감처럼 보이며 귀엽게 느껴졌다. 정말 비현실적인 세상에 온 느낌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칭다오 맥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모든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고 맥주의 제조과정과 바로 시음할 수 있는 서비스까지 제공해주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박물관이란 근엄해야 하고 역사적인 기념물만 전시하는 곳이 아닌 다양한 주제로 열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칭다오 맥주 박물관이었다. 

칭다오의 명동이라 불리는 타이동 야시장과 쇼핑센터를 찾아가기 위해 박물관에서 나와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지나가던 어느 중국 청년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비슷하게 생긴 외국인이 영어로 말을 걸어오자 그도 흥미로웠는지 길을 안내해 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 인간적인 유대감마저 들었다. 중국 가면 뭐든지 위험하다는 편견을 깨 주는 순간이었다. 그는 같이 쇼핑센터로 동행하게 되었고 타이동 쇼핑센터에 도착하였을 때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거리에는 한국 음악이 종종 흘러나오는 곳도 있었고 야시장에 도착하였을 때 그는 배가 고팠는지 길거리 음식을 사 먹었는데 나도 먹어 볼까 싶었지만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 구경만 하였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보다 여기에서 더 있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운소로 미식가 거리로 가게다고 하였고 그는 마지막으로 나를 버스 정류소로 안내해주었다. 한국의 시골 풍경 같은 정류소와 수많은 사람들 그는 나에게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고 연락처를 서로 교환하게 되었다 인연이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미식가 거리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이 있지 않았다. 내가 길을 잘 몰라서 일까? 난 또 뚜벅이처럼 걷기 시작하였다. 한국 식료품점과 한국 프랜차이즈 커피숍도 보였고 한국인 또 한 많았다. 여기 거리엔 붉은색을 이용한 간판과 음식점 그리고 마사지 샵들이 즐비하였다. 슬슬 걷다 보니 체력이 고갈이 되었고 여기 근처에 유명하다는 빵집으로 들어가 쉬기로 하였다. 이 집에서 파는 소금 커피나 차가 유명하였다. 난 소금 로열 밀크티와 빵을 구입하였다. 소금 맛 나는 차 그리고 빵 적어도 나에게 이 차는 별로였지만 말이다. 그러다 내 자리 뒤편에 앉은 한국인 부부와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 부부가 대화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다. 남편은 숙소에 가서 호텔식 식사를 하자 제안하였고 부인은 무슨 소리하냐며 여기 왔으면 현지 음식을 먹어야지 하며 티격태격하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고 한 편으로 가족과 함께 온 그들이 부러웠다. 적어도 혼자 여행 나온 나는 느낄 수  없었던 그들만의 에피소드이니깐 말이다. 카페를 나오니 5시쯤 되었고 또 미세먼지가 짙게 깔리기 시작하였다. 오늘 마지막 날이고 많은 곳을 보았으니 근처 까르푸(마트)에 들러 남은 돈으로 맥주 몇 개와 과자를 구입해 숙소로 빨리 돌아와 쉬기로 하였다. 숙소에서 쉬다가 낮에 잠시 들렀던 야시장 골목으로 다시 가보기로 하였다. 현지인들도 그곳에서 사 먹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어 나도 주문을 하였는데 돼지와 치킨 꼬지 하나씩을 주문하였다. 향신료가 진하게 묻어 나오는 꼬지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단지 맥주 없이 먹 자하니 무엇인가 허전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성당의 야경 모습을 다시 한번 보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 같았다. 그리고 편의점이 보였고 그곳에서 아쉬움에 또 다른 맥주를 구입하였다. 숙소로 다시 돌아왔을 땐 내일 돌아갈 짐을 꾸리다 문뜩 지하에 있는 펍이 생각났고 그곳으로 향하였다. 거기엔 이미 중국인 아마추어 밴드가 콜드플레이의 "yellow"를 열창 중이었다. 티브이에는 최민식 주연의 루시란 영화를 방영 중이었고 난 그곳에 앉아 맥주를 마시니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약간 취기가 올라왔다. 난 나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다 문뜩 숙소 벽에 붙어 있는 엽서들을 보게 되었다. 그중에 한국인들의 방명록 후기가 적혀 있는 엽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란 그들의 추억의 글들을 보고 있으니 올해 나의 크리스마스 추억은 이곳 칭다오에 남겨 두고 간다고 나도 말하고 싶어 지는 마지막 밤이었다.

2015년 12월 27일

아침 기분은 매우 상쾌하였다. 창문을 열었을 때 공기가 아주 차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가는 날이 장날인가 보다 어제보다도 기온이 더 떨어졌나 보다. 숙소를 나와 버스 정류소 있는 곳까지 걸었다. 눈으로 보는 하나하나를 다 머릿속에 담아 간다 굿바이!! 칭다오 다음에 보아요. 정류장은 천주교 성당 아래에 있는 곳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성당 풍경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만난 어느 택시기사 한눈에 봐도 공항 가는 사람인 것을 아나보다 나에게 25위안을 요구하였고 그는 국제공항까지 픽업을 해준다고 하였다. 이제는 말이 안 통해도 서로 무엇이 필요한지 눈으로 알 수 있다. 난 버스보단 편하게 가는 길을 택하였다. 다른 중국인 2분과 합석해서 택시를 탔는데 정말 낯선 풍경이다. 한국에서 어릴 적 합석이란 것을 해보고는 처음이었다. 공항에 도착 후 난 체크인을 하고 공항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뜩 내 앞을 보았는데 한국 아주머니 5분 이서 장난을 치고 계셨다. 그분들은 서로 학창 시절의 어린 소녀로 돌아간 듯 보였다. 서로의 머리를 엉클이고 카메라 앞에서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계셨다. 여행이란 사람들에게 정말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주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장난치고 즐겁게 웃고 떠드는 별 것 아닌 것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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