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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Mar 24. 2019

영화 <돈> 리뷰 - 돈 얘기는 돈 얘기로 풀었으면..

지원동기에 "돈 벌고 싶어서여!"라고 쓴 자소서를 읽는 느낌

기업에 자소서를 쓸 때 꼭 적어줘야 하는 항목이 있다. 바로 '지원동기'다. 우리 회사에, 이 직무에 왜 지원했는지 설득력있게 알려 달라는 의도에서 제시되는 항목일 것이다. 근데 사실 지원동기라는 게 따로 있나? 먹고 살아야 되니까 쓰는 거지. 쉽게 말하면 '돈!!' 때문이다. 이걸 지원자도 알고 면접관도 안다. 근데도 서로 눈 딱 감고 모른 척 "이 산업과 직무에 흥미와 적성이 어쩌구 저쩌구..." 한 바탕 연극을 하는 거다. 솔직하게 말해달랜다고 "돈 벌라고 지웠했는데여ㅎㅎ"하면 당연히 탈락이다. 절대 그러면 안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왜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되셨죠? 동기가 뭔가여?"라는 질문에 캐릭터들이 "네! 저는 이러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요! 저러저러한 숨은 성격과 요러요러하게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하는 식으로 풍부한 받침 설명을 해줘야 한다. 지원동기가 없으면 영화 전체가 붕 떠 버린다. 근데 바로 이 영화 <돈>이 바로 지원동기를 그런 식으로 써서 붕 떠버린 작품이다. 지원동기 항목을 백지로 내놨길래 이 돌아인 뭐지? 하고 자세히 보니 조그맣게 '돈'이 쓰여 있더라, 하는 느낌이다.


영화는 주인공 조일현(류준열)의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라는 독백으로 시작한다. 자, 지원동기 끝! 조일현이 주식 브로커가 되고 주가 조작을 저지르며 타락하게 되는 계기는 그냥 '돈을 벌고 싶어서'다. 그럼 그는 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걸까? 모른다. 말을 해주지 않으니까. 영화 후반부에 조일현은 번호표(유지태)에게 "뭐하려고 이렇게나 많은 돈을 위험하게 계속 벌려고 하냐?"라는 질문을 날리는데, 정작 자기부터가 왜 그렇게 돈에 집착을 하는 지 이유가 불분명하다. '돈 많이 벌고 싶어 하는 데에 이유가 있나?'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자소서 지원동기 항목에 "돈 벌려고요"하면 면접관이 껄껄 웃게되듯, 영화 역시 주연 캐릭터 가치관의 배경을 '야, 이건 당연한 거 아니냐?' 하는 식으로 처리해 버리면 관객이 곤란해진다. 최소한의 설득력을 담아서 논리적으로 동기를 제시해 줘야 '기본은 되는' 영화가 된다.


물론 그런 허점들을 수습하려는 노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영화 중반부 쯤 물건을 재활용해서 쓰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얘가 이렇게 궁상맞은 집에서 자랐다'라는 걸 살짝 보여주긴 하는데, 별로 설득력은 없다. 복분자 농장주 집에서 자란 게 돈에 미칠 이유가 될까? 감독도 역시 좀 부족하다 싶었는지 피날레 씬에서 조일현이 돈을 뿌리자 사람들이 미친듯이 달려 들어 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는 연출을 보여주는데, 이 미치도록 진부한 연출은 '돈인데 환장하는 게 당연하지!'라는 무논리 백업을 합리화 하려는 시도로 보여질 뿐이다.


동기가 없는 건 조일현 뿐 만이 아니다. 처음 무능하고 띨빡한 조일현에게 번호표를 소개시켜 주는 캐릭터 유민준(김민재)도 그렇다. 왜 굳이 조일현을 간택하여 성은을 내려준 것인지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자기한테 어떤 떡고물도 떨어지지 않는데 말이야. 그렇게 보면 번호표도 마찬가지. 앞에서 대놓고 윽엑 거리는 초짜 조일현을 눈으로 보고도 성큼 큰 일을 맡기는 결단력은 정말 대범한 리더의 그것이라고 느꼈다. 또 왜 베테랑 유민준은 버림받고 초짜 조일현이 선택된 것일까? 모른다! 어떤 설명도, 암시도 없으니까. 극의 중심부로 가는 연결고리를 이처럼 터무니 없이 억지스럽게 매듭지어 놓으니 서사 전체가 그냥 우스워지고 만다.

우스운 얘기하니까 생각났는데 이 분 이제 얼굴만 봐도 웃김.. 존나 진지한 역할인데도... 정극 어떻게 하냐 이제;;

모든 캐릭터들이 다 인위적이다. 조일현을 제외한 캐릭터들은 생명력이 없다. 그저 자기 자리에 앉아 맡은 바 역할을 기계적으로 연기한다는 느낌을 준다. 갑작스레 등장한 로이 리(다니엘 헤니)는 정말 억지스럽다. 돈으로 이만한 사치를 누릴 수 있음을 조일현에게 처음 가르쳐 주는 역할로 등장했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주인공의 반란을 적극 지원하는 정의의 사도로 역할이 급변한다. 회사 본부장이나 금감원의 팀장 등은 모두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드러나는 건 없다. 그야말로 '신'과 같은 권능을 지닌 번호표의 정체와 목적 역시 드러나지 않는다. 처음 조일현의 "이렇게 돈 벌려는 목적이 뭐냐?"는 질문에 번호표는 "재밌잖아"라고 답하지만, 체포 이후 조일현은 한지철(조우진)을 통해 다시금 같은 질문을 전한다. 이는 곧 번호표의 진정한 목적이 '재미' 말고 다른 부분에 있음을 의미하는데, 또 영화는 답을 해주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유지태는 계약 조건에 '가오가 몸을 지배한다'가 들어있었던 걸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마지막에 수갑 차는데도 졸라 가오 부림.. 내가 검사였으면 그 자리에서 싸대기 3차례 날렸다

굉장히 단점이 많은 영화지만,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돈'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놓고도 순수 돈 얘기로만 서사를 풀지 못했다는 점이다. 영화가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이는 마틴 스콜세지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4)는 주인공 조단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돈에 대한 욕망 하나만으로 정점에 올랐다가 몰락하기 까지의 과정을 아주 긴 러닝타임동안(179분) 순수하게 '돈'과 '과욕'으로만 풀어낸다. 그러나 박누리 감독의 <돈>은 돈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척 하다가 후반부에 가서 갑자기 육탄 범죄 스릴러물로 변신하고 만다.

포스터부터 너무 좀... 이거 패러디라고 해야 하나..

앞으로 한국 영화들이 장르 불문하고 부디 벤치마킹을 해줬으면 하는 최근 한국 영화가 있다면 바로 <극한직업>(2019)이다. <극한직업>은 어쩌다가 다소 뜬금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대성공을 거뒀을까?(3월 23일 기준 관객 수 1625만 명으로 역대 2위) 물론 영화가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졌고 또 재미도 있어서겠지. <극한직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다. 이게 '특이하게도' 특이한 맛의 비법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순수하게 코미디로만 꽉꽉 채워진 아주 희귀한 한국 코미디 영화다. 코미디 영화가 코미디로만 채워진 게 뭐가 특이하냐고? 그런 한국 코미디 영화가 없다. 무조건 드라마가 들어가고 신파가 섞인다. 그런데 <극한직업>은 그딴 개같은 한국식 영화 감성들을 모조리 빼내고 담백하게 코미디만 밀어붙인 정말 대단하고 혁신적인 코미디 영화인 것이다.

뜬금없이 극한직업 얘기해서 죄송하긴 한데 이 영화는 ㄹㅇ 대단한 작품임. 졸작들이 역대 관객 수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게 수치스러웠는데, 그나마 극한직업이 2위 먹어줘 다행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닥치고 코미디를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소재를 정하고 그에 맞는 장르를 정했으면, 한 우물만 파달라는 거임. 좀 쓸데없이 "범죄물? 응 소재 뭐가 됐든 살인 꼭 넣고 추격 스릴러로 마무리 하자"라든가, "코미디? 웃기만 하면 쓰나. 울다가 웃다가 그게 우리네 정 아니갔어?!"같은 짓좀 제발 그만하자. 신년부터는 제작되는 한국 영화들은 부디 퀄리티 좀 빵빵하게 높여 나올 수 있길...



★★☆(2.5/5.0)



p.s)그래도 그냥 멍하니 볼 정도의 재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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