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E, 재즈클럽, 그리고 바이닐
대학시절 뉴욕을 자주 왔음에도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뉴욕에서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봐도 특별히 없었다. 자주 보면 소홀히 하는 것처럼 언제든 올 수 있던 뉴욕이었기에 매번 눈앞에 하고 싶은 것들만 즐겼던 것 같다. 예를 들면, 그리운 한국의 맛이나 학교 동네에선 찾기 어려운 화려한 디저트들.
이번 뉴욕 여행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시간이 꽤 흘렀고, 그 사이 나의 취향은 좀 더 디테일해지고 명확해졌다는 것을. 그때는 그저 뉴욕이라는 도시가 좋은 거였다면 지금은 나의 취향을 즐길 수 있는 뉴욕이라 더 깊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취향 1. 음악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 학창 시절에도 그래왔지만, 성인이 되어 다양한 음악을 경험해 보며 취향이 확장되어 왔다. 작고 큰 공연, 페스티벌을 즐겨 다니는 나에게 코로나는 정말 힘든 시기였다. 한동안 공연을 즐기지 못하다 깨달은 건 ‘꼭 보고 싶은 공연이라면 기회가 있을 때 가야겠다’였고 그렇게 내디딘 첫 도전은 작년 여름, 아델을 보러 영국에 가게 된 것이었다. 그 여름의 기억은 여행에 대한 가치관이 한번 바뀌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다음에 또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 도시의 음악을 마음껏 즐겨야겠단 다짐과 함께.
극P라 여행을 준비할 때 크게 계획을 세우진 않지만, 내가 찾아본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는 뉴욕 일정에 맞는 공연이 있는지와 레코드샵의 위치.
RAYE 'My 21st Century Blues' Tour @ NYC Terminal 5
RAYE는 좋아하는 영국 아티스트 중 한 명인 Jess Glynne 덕에 알게 된 뮤지션이다.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꽤 오랜 공백 끝에 나온 정규 앨범의 투어가 정말 신기하게 뉴욕 일정과 맞다니. 다른 뮤지션이면 몰라도 RAYE를 이렇게 일찍, 그리고 뉴욕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해외에서 티켓팅이 불가해 뉴욕에 있는 친구에게 부랴부랴 부탁해서 표를 구했다. 작년 아델 공연 때도 느꼈지만, 외국의 공연 문화는 한국과 또 달라서 재밌다. 한국 관객들은 무대 위 아티스트들에게 온전히 집중한다면, 이들은 함께 온 연인, 친구들과 자유롭게 공연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긴다.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와 RAYE의 솔직한 음악이 더해지니 감동적이었다. 뉴욕에서 볼 수 있어 더 황홀했던 것 같다.
John Eckert Nonet @Smalls
재즈클럽은 음악러버라면 뉴욕에서 꼭 가야 하는 머스트이다. 뉴욕에는 많은 재즈클럽이 있는데, 이번엔 블루노트나 버드랜드처럼 크고 유명한 클럽보다 가장 로컬의 매력이 담긴 곳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스몰스. 웨스트빌리지에 위치한 작은 재즈바로 매일 다양한 뉴욕의 로컬 뮤지션들이 연주를 하는 곳이다.
내가 예매한 날은 John Eckert라는 트럼펫 연주자가 이끄는 Nonet(9인조), New York Jazz Nine의 공연이었다. 약 한 시간 동안 이들의 연주를 보는데 9명의 연주자 모두 참 행복해 보여서 좋았다. 그중에서 John Eckert 할아버지는 무려 1939년생이신데 불구하고 트럼펫을 연주할 때만큼은 너무나 현역이셨다. 울컥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저렇게 꾸준히 행복하게 할 수 있구나. 칵테일과 곁들이는 재즈는 달콤했다.
Vinyls
꽤 오랫동안 바이닐을 모아 왔다. 벌써 7-8년이 된 것 같은데,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해외 아티스트 바이닐은 직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여행을 가면 꼭 바이닐을 사오는게 나만의 투두가 되었다. 마침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신보가 발매되기 시작하면서 뉴욕 가면 꼭 사 와야 할 나만의 리스트를 정리했다.
미친 듯이 치솟은 환율에 평소보다 비싸게 주고 사야 했지만, 한국에 들어오면 더 비싸질걸 알기에 구매했다. 한국에 입고되는 해외 바이닐은 당연한 얘기겠지만, 수요가 많은 아티스트가 대부분이라 아쉽다. 평소 좋아하는 Jorja Smith, HAIM 등 한국에서 인지도가 아직까지 없는 아티스트들은 이렇게 여행 중 품에 넣게 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발매일이 애매하게 겹쳐 못 구한 바이닐도 많지만 다음 기회에!
여행 중 좋아하는 음악을 깊이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지를 이제 알기에. 다음 여행엔 또 어떤 음악과 만날 수 있을지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