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절대적인가
한국과 싱가포르의 시차는 단 1시간이다. 지도상으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도 그렇다. 상해나 홍콩처럼 1시간밖에 차이가 안 난다. 태국이나 베트남, 캄보디아와의 시차를 생각해보면 더 이상한데, 세 나라가 우리나라와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시차가 2시간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까?
이유는 이렇다. 과거에 싱가포르와 홍콩은 영국 식민지였다. 그중에서도 중국 본토와 가까운 홍콩은 영국 식민 지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국 입장에서 비슷한 식민 지역인 싱가포르와 홍콩이 같은 시간대면 관리가 편했을 터. 영국은 홍콩 중심으로 두 나라를 같은 시간대로 묶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프랑스 식민지였고 태국은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홍콩과 같은 시간대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GMT+7 시간(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관측한 그리니치 기준 시간보다 7시간 빠르다는 뜻. 우리나라는 GMT+9이다.)을 유지했다.
싱가포르가 독립하고 더 적당한 시간대를 찾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영국 점령 하에서 홍콩은 아시아 제일의 금융 허브로 성장했다. 싱가포르 역시 아시아와 서구권을 잇는, 홍콩 버금가는 금융 허브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중간한 GMT + 7을 쓰는 것보다는 홍콩이나 상해 같은 중국 본토와 같은 시간대를 쓰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시간대를 변경하지 않고 유지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와 한국이 시차가 1시간밖에 나지 않는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더 가까운 베트남이나 태국보다 더 적은 시차가.
위 지도를 보라. 세계지도를 각 지역이 사용하는 표준시로 나눈 것이다. 우리는 막연하게 시간이 '과학적으로' 경도를 기준으로 적당히 나눠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시간이 대략적으로 과학적으로만 나누어졌으면 표준시는 경도 기준 직선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보다시피 직선이 아니다. 여러 역사적, 정치적 이유로 시간은 재분류되어 왔다.
그렇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임의로 쪼개고 분류하고 의미 부여한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경우를 보자.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 하나를 좌우로는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그렇게 넓은 나라이기 때문에 한 나라 안에서 시간이 몇 개로 나뉜다. 그러나 중국 역시 큰 나라지만 단 한 개의 시간대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중앙 정부가 통치하기 쉽도록 그렇게 만든 것이다. 중국 서쪽은 GMT+7이나 GMT+6을 따르는 것이 과학적으로 더 '정확'할지 모르지만 중국에 속해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GMV+8 존을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GMT+9이다. 지도를 보고 있으면 느껴지지 않나? 이 시간대를 규정하는 선도 직선이 아니다. 어쩌면(그러니까 만약에 우리나라에 강력한 중국 영향력이 계속됐다면..) 우리는 베이징 시간대와 비슷하게 GMT+8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GMT+9를 따른 것은 일본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도쿄 기준으로 전부 GMT+9를 따르고 우리도 똑같은 시간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것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됐다.
시간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절대적이다. 인간이 지금을 몇 시라고 규정하든지 오늘 아침 해가 언제 뜨느냐는 자연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인력으로는 바꿀 수 없다.(바꿀 수 있는 과학기술이 발전한다면 내 말을 정정하겠다)
그러나 동시에, 위 사례에서 보다시피, 절대적이지 않다. 그러니까 절대적이라고 하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조금씩은 조정될 수도 있는 것. 잠깐, 그런데 이해관계에 따라 '조정될 수도 있는 것'을 절대적이라고 부를 수 있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시간대가 왜 이렇게 차이 나는지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을 텐데? 우리나라에서 2시간 차이 난다, 1시간 차이 난다 하면 그냥 '원래 그런가 보다'하고 받아들이지 세계 지도며 식민 지배 역사며 찾으며 왜 그런 것인지 생각하고 있을 사람도 소수일 것 같은데.
좀 더 생각을 확장해보겠다. 시간은 어쩌면 절대적이지만(물론 꼭 그렇지만은 않고 중력에 따라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도 아인슈타인이 입증하긴 했다.. 그러나 여하튼 우리가 지구 해수면의 동일한 중력 하에 있다는 전제 하에서 절대적이라고 해도..) 인식은 정말로 상대적이다. 그러니까 태양은 갈 길을 가지만, 우리가 그것을 몇 시냐고 생각하느냐는 상대적이다.
나이를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이 나이 인식의 상대성에 관한 정말 좋은 예다. 우리는 세계 전체적으로 봤을 때, 흔하지 않은 독특한 나이 체계를 따르고 있다. 태아 상태일 때부터 나이를 계산해 태어날 때 1살이다.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리고 언제 태어났건 상관없이 해가 바뀌면 동시에 한 살을 더 먹는다. 그러니까 12월 31일 생은 태어 난지 하루 만에 2살이 된다. 음, 이건 좀 너무한데.. 이런 방식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쉽지 않은 체계이기에 우리는 외국인들과 이야기할 때 이것을 편의상 '한국 나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것이 '장유유서'의 문화, 단 한 살 차이로도 존대가 확연하게 갈리는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께 발달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한 살이라도 차이 나면 어린 쪽이 존댓말을 해야 하는 문화인데,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가 아니라 생일로 나이를 따지게 되면 생일이 언제 도래하냐에 따라 언제는 동갑이다가 언제는 한 살 차이 나다가 하니 존댓말을 쓰다 안 쓰다 해야 하고, 동갑내기 친구였다가 형, 언니, 오빠, 누나가 돼버려서 위계관계가 엉망이 돼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에 따른 위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해가 바뀌면 일괄로 나이 먹는 방식을 채택한 게 아닐까.
이런 확연한 위계 관계가 사회에 건강하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근데 그건 기회가 되면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고 이번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생일이 지나기 전이라면 한국 나이는 글로벌 나이보다 두 살이나 많다는 거다. 내가 30대가 된다니? 하는 고민을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2년이나 일찍 하는 것이다. 억울하지 않은가? 일단 나는 너무 억울한데 (...) 안 억울하다면 아직 서른이 먼 미래로 느껴질 만큼 어리거나(그러나 그런 이들도 언제가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미 한참 나이가 많거나, 아니면 한국 사회의 나이 어쩌고에 초연한 사람일 것이다(Good for you).
그런데 이런 한국 나이는 사회 전반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지만, '공식적'인 것은 아니며, 법이나 의료 현장, 통계 등 공식적인 나이는 글로벌 기준을 따라 '만'을 사용한다. 세상에 대한민국만 있는 것은 아니니 공식 문서는 글로벌 기준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식적 단위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위가 다르기에 혼란이 있다. 가령 어떤 복지정책의 대상 나이가 만 31세까지라고 하면 한국 나이로는 사실 33세 즈음인 것이다. 그런데 쓰는 사람은 단위를 '만'으로 썼는데 보는 사람은 이것을 '만'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 정책은 왜곡되어 기억된다.
여하튼 간에 더 이상은 나이 먹는 게 싫은 입장에서 윤석열 정부가 만 나이를 시행하겠다는 공약을 하루빨리 실행하기를 바란다.. 네 그러니까 싱가포르 시간대에서 시작해서 만 나이 공약 빨리 실행해달라는 말로 끝나네요. 여기까지 한 살이라도 더 어리게 살고 싶은 사람의 넋두리였습니다. 스무 살 넘었으면 다 비슷한 마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싱가포르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떤 이유가 배경으로 깔렸건 간에, 싱가포르는 서울과 시차가 한 시간밖에 안 나기 때문에 같이 일하기 좋은 곳이다. 리모트 워크를 해도 무리가 없다. 그러니 다음 시리즈는 리모트 워크, 혹은 워케이션(Workation, Work+vacation)에 대해 쓰겠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으로 싱가포르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남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