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뉴욕에서 3달을 보낸 이유
2022년 12월 16일. 뉴욕의 금요일 밤. 그날은 내가 뉴욕에서 맞는 첫 금요일 밤이었다. 나는 한 달간 머무는 것을 계획하고 뉴욕에 왔고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연말 분위기를 즐기면서 맨해튼 중심가를 걸었다.
그러다 33번가 근처에 왔을 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유동인구가 엄청난 맨해튼 중심가에 영어와 한국어 간판이 병기된 한국 식당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특히 삼겹살집 앞에는 한 블록을 다 채울 만큼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뉴요커 친구는 이곳은 한식당이 밀집한 코리아타운이라고 했다. 하지만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다 한국계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백인, 흑인, 히스패닉, 멕시칸, 다양한 국적의 아시아인들, 그러니까 다양한 '외국인'들이었다.
가게를 들여다봤다. '외국인'들이 한국식 그릴 앞에 삼삼오오 모여서 삼겹살과 소고기를 굽고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반찬과 쌈채소, 쌈장이 보였다. 외국인들은 고기를 먹으며 즐겁게 소주를 마셨다. 친구는 한국 식당이 2018년부터 늘기 시작했고 현재는 엄청나게 인기라고 말했다. 삼겹살집 같은 진짜 한국식 식당 외에도 다양한 식문화와 결합한 퓨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도 유명하다고 했다. 찾아봤다. 정말로 한식당이 엄청나게 많았다. 1인당 200달러 이상을 써야 하는 파인 다이닝도 많았다. 미쉐린 스타를 받은 한식당이 뉴욕에만 무려 9개였다. 2 스타는 뉴욕 전체에서 12개밖에 안 되는데 그중에 2개가 한식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마트를 갔다. 아시안 마트가 아니라 그냥 뉴욕 중산층이 사는 동네의 평범한 마트였다. 한국 라면이 갖가지 종류별로 있었다. 한국 과자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고 한국 배, 김치, 고추장을 가져다 놓은 모습도 눈에 띄었다. 매장에서는 가끔 K팝이 흘러나왔다.
카페를 갔다. 커피 외에 브런치 메뉴도 파는 카페였다. 메뉴에 코리안 불고기 샌드위치가 있었다.
내가 특히 감명받은 것은 이곳이 다른 도시가 아니라 '뉴욕'이라는 점이었다. 뉴욕은 미국인들만 사는 도시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비즈니스 때문에, 공부를 위해, 여행하러, 그리고 꿈을 찾아 모이는 도시다. 맨해튼을 둘러싼 인근 공항만 세 개다. 전 세계에서 날아드는 비행기가 이 도시에 사람을 수송한다. 그러니 뉴욕에서 한식이 대세라는 것은 한식이 일부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수용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뉴욕에 방문한 외국인이 뉴욕에서 한식을 먹어보고 긍정적인 경험을 한다면 본국에 돌아가서도 한식을 찾을 것이다.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 전 세계의 다양한 나라에서 한식의 인기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K팝, K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콘텐츠 사업이 커진 것보다 더 큰 기회가 우리 앞에 자리하고 있다. 음식은 아주 보편적이면서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것이고 진입장벽도 더 낮다. 내가 아이돌이나 배우가 될 수는 없어도 한식당을 할 가능성은 있지 않은가. 어쩌면 식품 사업을 할 수도 있다. 일단 나부터 미국에서 한식당을 하거나 가공식품을 유통하고 싶어서 미국 사는 친구들과 한참 이야기한 것은 비밀 아닌 비밀.
내가 마지막으로 미국에 갔던 건 2017년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런 조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2022년 뉴욕. 5년 사이에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난 게 분명했다. 그렇다. 상전벽해다. 그 사이에 BTS와 블랙핑크가 빌보드 차트를 장식하고 엄청난 규모의 월드 투어를 성공시켰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오징어게임이 글로벌 1위 넷플릭스 콘텐츠에 등극했다. 외국인들이 한국 먹방을 보고, 불닭볶음면 먹기 챌린지를 했다. 이렇게 달라진 한국 콘텐츠의 위상만큼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 자체도 올랐고 더불어 한식의 인기도 엄청나게 오른 것이다.
그 뒤로 결심했다. 뉴욕에서 한식이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인기를 얻게 되었는지 더 알아보기로. 뉴욕에 있는 미쉐린 코리안 다이닝 레스토랑과 대표적인 인기 레스토랑들을 전부 가보고 분석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떤 품목이 가장 인기이고 현지인 식습관에 맞춰서 어떻게 모습을 바꿨으며 매장 인테리어는 어떻고 음식을 어떤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하는지. 한식의 어떤 부분은 그대로 살리고 어떤 부분은 바꿨는지 말이다. 그렇게 나는 비행기 티켓을 미뤘고 온 겨울을 뉴욕에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