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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개미 Oct 12. 2020

오늘도 반품합니다.

옷도 내 시간도


유명 유튜버 pick 한 와이드 팬츠 2차 예약판매

퇴근 후 밥 먹으면서 주로 패션 유튜브를 본다. 킬링 타임과 대리만족으로 주로 시청하게 된다.

그 영상이 분명 광고인 줄 알지만 그들의 말 발과 옷 발에 어느덧 나는 마우스로 지갑을 열 준비를 한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나의 혼을 빼놓는다.

마치 시간제한이 있는 홈쇼핑인마냥 ‘이 영상이 끝나기 전에 몇 분 몇 초에 있는 저 옷을 사야만 해!’라는 생각을 들게한다.

나름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어느덧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컴퓨터에 시간을 죽이며 쇼핑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 저도 요즘은 그렇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이지만 그들은 대단한 브랜드처럼 말하는데..... 이상하게도 엄마보다 믿음이 간다. (홀렸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엄마 미안!)


유튜버와 콜라보한 판매라 그런지 추천한 브랜드 사이트 주문은 폭주하여 2차 예약판매를 하고 있었다.

‘2차 판매라고?’ 여기서 또 믿음이 간다. 하지만 이말은 100개 준비하고 ‘완판!’하고 ‘여러분들의 호응에 못 견뎌서 2차를 냈습니다!’ 일 수도 있는 것인데

2차 예약 판매는 2주 뒤 옷이 도착한다고 하는데 멀다면 먼 2주 뒤의 나의 패션을 위해 눈과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고객님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00월 00일까지 입금해주세요.

뭐가 급한지 카카오 뱅크로 바로 입금을 시도한다.


짧은 시간의 노력은 어느덧 잊고 지내다 보니 2주가 지나버렸다.

‘이제 왔을려냐? 생각하고 택배 문자 확인하니. 마침 오늘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행복한 마음으로 택배실로 가니, 내 이름 석자가 당당히 빛나고 있다.


'내 것이 맞네.'


기쁨과 기대감으로 택배를 갖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칼도 없이 탄탄한 테이프를 손으로 찢었다.

하지만 동시에 드는 불안함 '으.... 또 다리 길이가 안 맞아서 잘라야 하거나 안 어울리면 어쩌지?'

드디어

개. 봉. 박. 두

응?

뭐지... 예쁜 건가?

재질은 원래 이렇게 얇은 것인가...? 초가을에 입는 옷 치고는 너무 얇다. 2주 전에 예약 구매를 했으니 이미

그 계절은 지나고 없다. (이젠 너무 춥다.)

내가 입으니 난쟁이 똥자루...

그리고 바지 밑단도 12cm 정도 잘라야 한다. 비루한 키작녀 인생

이상하다.

패션 유튜버는 ‘이 옷만 있다면 당신은 시크녀!’ 이 느낌으로 나를 유인했는데 왜

거울 안에 있는 나는 그저 난쟁이 똥자루인 것이지?


 '이젠 저렴한 것만 입지 말고 비싼 것 하나 사서 오래 입자!'마음으로 구입한 옷인데,

난 왜 그만한 가치를 못 느껴지는 것일까?


2주간의 기다림과 결제까지의 노력이 아까워 나를 다독이기 위하여 다시 쇼핑몰에 들어가 본다.

그 옷을 사기 위해 가입을 한지라 아이디와 비번도 기억이 안 난다. (1회성 고객이었던 나)

그 옷을 사고 싶었지만 소중하진 않았던 것일까? 또 시간을 들여서 아이디와 비번을 겨우 찾았다.


멋지게 착장 한 모델을 보기 위한 노력이었다 치자.


그렇게 홈페이지에 오랜만에 들어가 보니 웬걸. 동일한 제품이 할인 판매를 하는 것 아닌가?!!!


분명 2주 전엔 물량이 없어서 예약판매를 진행하더니 내가 제품을 받은 날엔 이미 할인 판매

그리고 새로 나온 신상품들 (가을 계절에 맞게 도톰한 원단).


이거 이거 분명 마케팅이야! 하고 혼자 ㅂㄷㅂㄷ 속을 끓는다.


인플루언서랑 나랑 몸은 분명 다른 것은 알지만 이렇게도 다를까? 싶기도 하고

왜 하필 내가 받고나서부터 할인을 하나 싶기도 하고. 억울하다.


그 옷이 좋아지길 바라며 거울 앞에서 입었다가 벗었다가를 반복

'이 정도 자르면 괜찮을까~~~?'


ㅜ.ㅜ......


반품.... 오늘도 반품해야겠다.


이렇게 난 또 택배비 5,000원을 날렸고 나의 소중한 퇴근 후 시간도 물거품이 되어 날아갔다.

(생각해보라  유튜브 시청부터 택배를 받고 착장하고 실망하고 반품 신청하고 택배를 다시 싸서 택배실에 놓는 그 순간까지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원래 나는 패션에 시간을 들이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모든 것은 자원 낭비&시간 낭비로 생각했지만

엄마는 항상 "네 나이 때가 제일 예쁠 때야. 꾸밀 수 있을 때 꾸며"이 말이 떠올라 나 자신을 꾸미고자 노력하고 있다.

(디자이너다 보니 사실 나를 꾸미는 것조차 일처럼 느껴져서 싫다.)


옷을 반품하는 동시에 내 시간을 반품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나만의 룰을 만들었다.


평소에 필요한 의상 리스트를 정리해본다. (충동구매를 막기 위함)

쇼핑은 오프라인에서 입어보고 사자. (재질/ 사이즈/ 나에게 맞는지 확인을 위함)

퇴근 후 나는 컴퓨터를 안 할 것이다. (저녁 먹는 시간 제외 이유는 유튜브를 보면 끝없는 광고가 나에게 온다. 킬링 타임 진짜 시간을 죽인다.)


=> 퇴근 후 우리의 시간은 너무 소중하다. 공짜도 아니고 돌아오지 않는다. 그 시간에 글을 한자 더 쓰거나 그림을 더 그리기로

나와 약속했다. 외면은 비루해질지라도 잃지 않는 내면을 채울 것이다. (옷은 그냥 깔끔하게만 입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뭘 입어야 예쁜지, 어떤 브랜드가 어울리는지 아직도 너무 어려운 서른 살이다.

서른 살도 교복이 필요하다.

차라리 벗고 다니는 게 더 괜찮을 수도.


하하하하


사람은 맨몸으로 태어나 맨 몸으로 가는 것을 뭐 이리 옷이 중하이오....(인연이 되는 옷을 꼭 만나고 싶다.)




P.S 무슨 바지 종류와 재질은 왜 이리 많으며 옷의 스타일은 왜 이리 많은지.

월화수목금 교복처럼 정하고 회사를 나가는 게 정신 건강과 내 시간 활용에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반품을 동시에 미니멀리스트를 실천해 본다....!




오늘도 내일도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요.

@mingaemi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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