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책 한 권을 빌려주었다.
친구는 내가 시작한 새로운 일(장애인 콜택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골라줬음이 틀림없었다.
이 자극적인, 잔혹한 문장을 제목으로 한 책의 원래 제목은 'Ghost boy'다.
'Ghost boy'라는 제목을 굳이 이런 제목으로 바꾸다니... 좀 반감심이 들기도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마틴 프리토리우스는 원인모를 병으로 쓰러진 후 식물인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식이 돌아왔지만 몸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어서 사람들은 그의 의식이 돌아온 줄 알 수가 없었다.
의식이 돌아왔음을 알리려고 했지만 마틴은 눈동자조차도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Ghost boy'.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우연히 그의 의식이 돌아왔음을 알아차린 요양사로 인해 마틴은 자신을 가둬두었던 감옥 같은 육체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다.
재활을 해나가며 컴퓨터와 센서의 도움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한편 기기의 불편한 점들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도 병행한다.
첨단과학의 도움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마틴.
그는 동생의 소개로 멀리 영국에 있는 조애나와 영상통화를 나누게 되고 두 사람 사이는 조금씩 친밀해진다.
선뜻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마틴에게 조애나는 말한다.
"문제가 생기면 둘이 함께 풀어가면 돼.."
둘의 미래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그들은 현재의 감정에 솔직하게 충실한다.
어려움도 있을 테지만 기대도, 꿈도 있기 마련이니까.
무엇보다도 '지금'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
굳이 나의 직업과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읽고 난 후 나에게 작은 경각심을 갖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물론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얼마나 많은 주위 사람들을 무심코 대했던가.
입사 후 일을 막 시작했을 당시 어떤 이용객과의 만남은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우리 차를 타고 등교를 하던 학생이었는데 하차를 하고 나서 내게 뭐라고 말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가려고 했더니 보호자분이 "좋은 하루 되시래요..."라고 알려주셨다.
그냥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도 아닌 '좋은 하루 되세요'...
순간 나는 내가 이용객들에게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 그 학생의 말이 비록 어눌하기는 했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랬다.
첫 만남에서는 듣지 못한 게 아니라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
'Ghost girl' 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불편함을 갖고 있는 그들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쉽게 판단해버렸던 것이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 나름 편견을 갖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직접 현장에서 겪어보니 그게 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그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금씩 풀어가는 수밖에.
물론 지금도 잘 귀담아듣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마틴을 떠올린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를 읽고 가장 가슴 아팠지만 또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대목은 바로 엄마가 누워있는 아들 마틴 앞에서 한탄하는 부분이었다.
바로 책 제목을 'Ghost boy'에서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원제를 바꿔서 마음에 드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바뀐 제목도 잘 어울린다고 쉽게 수긍이 갔다.
마틴의 의식이 돌아오지 못하고 가망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 엄마는 아들 앞에서 원망 섞인 한탄을 하고 말았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
그걸 고스란히 아들 마틴이 듣고 있었다는 사실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다.
모든 것을 남의 손에 의지해야만 했던 마틴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폐렴에 걸렸을 때 죽기를 바랬지만 죽음조차도 뜻대로 선택하지 못했다.
엄마의 한탄을 듣는 마틴의 입장에서는 가슴이 무너지는 말이었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대목에서 위로를 받았다.
힘든 상황에서는 모두 다 비슷하다는 것.
심지어 그게 '엄마'일지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내가 나태해지거나 부도덕해지는 것은 경계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엄격하게 스스로를 자책한다고 느낄 때 마틴의 엄마의 한탄 같은 고백은 위로가 된다.
마틴은, 엄마가 자신이 한 그 말을 아들이 모두 듣고 있었음을 알았다고 해도 죄책감을 갖지 않기를 바랬다.
물론 엄마는 알고 있겠지.
평생 지울 수 없는 죄책감에 괴로워할 테지만 마틴은 엄마와 둘이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마틴의, 엄마에 대한 용서에도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며칠 전,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이용객을 태웠을 때였다.
아들이 보호자였고 연로한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이동 중이었는데 룸미러로보니 아버지의 자세가 많이 기울어져서 아들에게
"괜찮을까요?" 했더니
아들이 대뜸 아버지에게 "그러다 죽어도 난 몰라.."라고 너무나 태연하게 말했었다.
예전 같았으면 '정말 못됐다..'라고 여겼을 테지만 이제 함부로 그렇게 단정 짓지 않는다.
그게 아버지를 위한 따끔한 충고일 수도, 혹은 그간의 병수발에 지칠 대로 지친 가족으로서의 한탄일 수도 있을 테니까.. 내가 할 일은 안전하게 목적지로 이동하는 거니까.. 기분이 편치는 않지만...
'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나...?' 하는 쓸데없는 궁금증은 멀리 던져버리고
우선 운전에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