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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요원 Feb 26. 2023

감정 표현

[책] 아몬드

아몬드/ 손원평/ 창비/ 2017/ 2016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어느날 TV에서 월드스타 BTS(방탄소년단)가 이 책을 읽고 있었다하여 그 호기심에, 결국은 우리 집 두 아이들과 나 까지도 읽게 된 책이다. 시작은 큰 아이였다. 책을 즐겨 찾는 아이는 아니었던지라, 갑자기 책을 구해달라 하니 어찌된 일이냐며 바로 구매했고, 큰 아이는 하루 밤 사이 완독을 했다. 그 후 둘째 아이가 읽었고, 나 또한 최근에 읽게 되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육아와 교육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가족과 직업, 더 크게는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저런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을 듯도 하다. 아이들과 또 하나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더 기뻤다. 더불어 난 감정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난 사실, 감정 표현에 서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책 아몬드의 주인공 처럼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것을 느끼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나의 희노애락보다 상대방이 내 표현으로 느낄 감정에 더 집착과 미련, 두려움과 기대를 갖게 되어 내 감정을 매번 표현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낀다. 대부분은 그냥 삭인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나의 행동에는, 어렸을 때의 잘못된 교육, 또는 습관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오래전 그 당시에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남에게 표현하는 것은 나쁜 아이들이나 하는 행동에 속했기 때문이다. 착한 아이는 인내하고 참고 견디는 아이라고 배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때의 그것들이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그래서 감정 표현이 서툴고,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한다. 적어도 아이들은 이러한 것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나도 조금더 감정을 표현 하는데 노력해야 겠다. 그래야 소통도 관계도 즐거움도 늘어날테니까 말이다.



내가 반한 글귀들


나라는 아이를 어떻게 이해할지 헷갈린 엄마는, 엄마답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또래에 비해 겁이 없고 침착한 아이.' 엄마의 일기장 속에는 내가 그렇게 묘사되어 있다. 24p, 25p
의사들이 내게 내린 진단은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는 알렉시티미아였다. 증상이 너무 깊은 데다 나이가 너무 어려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볼 수 없었고, 다른 발달 사항들에 문제가 없어 자폐 소견도 없었다. 표현 불능이라고 하지만 표현을 못한다기보단, 잘 느끼질 못한다. 언어 중추인 브로카 영역이나 베르니케 영역을 다친 사람들처럼 말을 만들어 내거나 이해하는 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감정의 이름들을 헷갈린다. 의사들은 선천적으로 내 머릿속의 아몬드, 그러니까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데다 뇌 변연계와 전두엽 사이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입을 모았다. 29p, 30p
엄마는 모든 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고 다른 말로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더 가까웠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사랑이라는 건, 단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한다, 저럴 땐 저렇게 해야 한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 게 사랑이라면 사랑 따위는 주지도 받지도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물론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엄마의 행동 강령 중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라는 덕목을 입이 닳도록 외운 덕이다. 40p
엄마의 얘기가 다 끝난 뒤에도 할멈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갑자기 표정을 바꾸었다. - 네 엄마 말이 사실이라면, 넌 괴물이다. 엄마가 입을 쩍 벌리고 할멈을 바라봤다. 할멈은 내 눈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며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고 눈꼬리가 아래로 축 처져서 입과 눈이 만날 것 같은 미소였다. -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괴물. 그게 너로구나! 그러곤 내 머리통을 아프도록 쓰다듬었다. 46p
나도 그곳이 편안했다. 다른 사람들의 언어로는 '좋았다' 라거나 '맘에 든다' 가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쓸 수 있는 단어로는 '편안하다'가 최대치다. 정확히 말하자면 헌책의 냄새가 익숙하게 다가왔다. 처음 맡았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대하듯이. 틈만 나면 책을 펼쳐 들고 냄새를 맡는 나에게 할멈은 퀴퀴한 헌책 냄새는 맡아 뭐하느냐고 핀잔을 놓았다. 책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의 고백을 들려주었고 관찰할 수 없는 자의 인생을 보게 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 겪어 보지 못한 사건들이 비밀스럽게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그건 텔레비젼이나 영화와는 애초에 달랐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 속의 세계는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더 이상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영상 속의 이야기는 오로지 찍혀 있는 대로, 그려져 있는 그대로만 존재했다. 49p, 50p
엄마와 할멈은 이런저런 일들로 티격태격하고 자주 깔깔대다가도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말수가 줄어들었다. 해가 공기를 붉게 물들이면 할멈이 소주를 들이켜며 캬, 소리를 냈고 엄마는 가슴에서부터 나오는 목소리로 좋다, 하고 장단을 맞췄다. 캬, 좋다! 엄만 그 말의 뜻이 행복이라고 했다. 52p
늘 한가지 정답을 제시하던 엄마의 가르침에는 좀 위배됐지만 나는 그런 결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 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74p, 75p
학교는 계속 다닐래요. 그게 그날의 결론이었다. 심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문제는 '어떻게' 겠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이거다. 머리라는 건 쓰면 쓸수록 좋아진단다. 나쁘게 쓰면 나쁜 머리가 좋아지고 좋게 쓰면 좋게 발달되지. 네가 특정 부분에서 남들보다 취약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연습을 하면 어느 정도 달라질 수도 있을 거야. 90p, 91p
그 애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나쁜 건가요? - 그 애와 친해지고 싶다는 뜻이니? - 친해진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 예를 들어, 이렇게 너와 내가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것. 같이 무언가를 먹기도 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 특별히 돈이 오가지 않는데도 서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 이런 게 친한 거란다. - 몰랐어요, 제가 아저씨랑 친한 줄. - 하하, 아니라고 하진 마라. 아무튼 진부한 표현이지만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난단다. 그 애가 너와 그런 관계가 될지는 시간이 알려 줄 거야. - 아저씨가 말리지 않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 난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는 걸 경계한단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네 나이 때는 더 그렇고. 129p, 130p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가지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132p
이상하게 이제 더 이상 그런 옛날 잡지 보기 싫다. 즐겁지 않아. 아름다운 것들이 시들어 가는 상상이 돼서. 151p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 있는 엄마만이 영원한 1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152p 
예를 들어 주마. 스케이트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 백날 연습을 한다고 해서 최고의 스케이터가 되지는 못할거다. 타고난 음치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멋들어지게 불러 청중의 갈채를 받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연습을 하면 말이다, 적어도 비틀거리며 얼음 위로 조금 나아가는 것 정도는, 서툴게나마 노래 한 소절쯤 부르는 것 정도는 가능해진단다. 그레 바로 연습이 허용하는 기적이자 한계란다. 160p, 161p
한가지 질문에도 백 가지 다른 답이 있는 게 이 세상이란다. 그러니 내가 정확한 답을 주기는 어렵지. 특히 네 나이 땐 세상이 더 수수께끼 같을 거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되는때거든. 그래도 굳이 조언을 원한다면, 질문으로 대신하마. 그 애가 너한테 제일 많이 한 행동이 뭐지? 164p
나한테 그건 있지, 살아서 뭐하려고, 하는 질문이랑 비슷해. 넌 무슨 목적이 있어서 사니? 솔ㅈㄱ히 그냥 살잖아. 살다가 좋은 일 있으면 웃고 나쁜 일 있으면 울고, 달리기도 마찬가지야. 1등 하면 좋고 아니면 아쉽겠지. 실력 없으면 자책하고 후회도 하겠지. 그래도 그냥 달리는 거야. 그냥! 사는 것처럼, 그냥! 186p, 187p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 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2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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