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게 아니고요. 화가 없는 게 아니고요.
화를 못 내는 거예요. 화를 내는 게 힘든 거예요.
대학생 때 '도를 믿으십니까' 로 포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몇 번이나 말을 걸어온 적이 있다. 기운이 좋으신데요. 로 시작해서 '화'가 많다. 그래서 그 기운이 내 주변에서 사람들을 멀어지게 된다고 치성을 올려야 한다고. 조상신들께 치성을 올려야 한다고.
도도 믿지 않고 치성도 믿지 않고, 조상신도 믿지 않지만, 화가 많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부정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 나는 어릴 때부터 화가 많았다.
나의 화는 '분노'만이 아니다.
분노도 슬픔도 고독도, 감당하기 힘든 기쁨까지.
모든 감정이 있었다.
화가 많아서 내 안의 화를 추스리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날은 혼자 운동장을 걸으면서 삭혔고 어떤 날은 잠을 자야했고 어떤 날은 울었다.
혼자일 때는 고독만이 내 안에서 찰랑거렸다. 고독은 쉽지 않았지만 분노보다는 편안했다. 고독에는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울고 나면 어린 아이처럼 잠들고 싶어졌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졌다.
화를 내면 더 큰 화가 몰려왔다.
화가 난 그 이유 자체보다도 화를 내는 나에게 더 화가 났다.
아마도 화를 내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화를 내는 방법을 모른다.
화를 내는 방법 말고는 많은 것을 할 줄 알게 되었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