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조각을 채우는
루꼴라 김밥
8시, 퇴근하자마자 먹을만한 게 있는지 뒤적거리다가 샐러드를 해 먹고 남은 루꼴라를 발견했다. 까맣게 잊고 있던 녀석이라 흐물흐물하게 시들었겠거니 하고 열어보았는데 줄기가 아직 뻐시다. 2주가 지났는대도 싱싱하다. 어째 처음보다 약간 자란 것 같기도 하고. (믿거나 말거나) 미리 물에 담가 전처리를 해둔 것도 있지만 와일드 루꼴라에 비해 대가 굵으니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두었다가는 하루 이틀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일단 꺼냈다.
집에 있는 것들로 당장 해 먹을 수 있는 걸 생각하니 김밥이 가장 만만했다. 자주 해 먹었던 것도 아니고 잘 아는 레시피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얼레벌레 대충 말아먹으면 되니 딱히 어려울 것은 없었다. 파릇한 루꼴라는 잘 씻어두고 밥을 지었다. 퇴근 후라 쌀을 미리 불려 둘 여유는 없어서 물을 여유 있게 잡아 불에 솥을 올렸다. 현미, 흑미, 조를 눈대중으로 섞었다. 넣을 만한 다른 재료를 고민하다가 냉동실에 있는 닭가슴살 소시지를 넣기로 했다. 계란 지단 같은 걸 채 썰어 풍성하게 넣어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귀찮아서 말았다. 이미 예상치 못한 루꼴라의 등장으로 일이 조금 번거로워졌으니 이쯤 하는 걸로 선을 그었다.
한 2주 전쯤 엄마가 보내 준 압력밥솥에 여태 적응 중이다. 압력추가 격하게 흔들리면 평정심도 같이 요동 치는 바람에 매번 밥이 조금씩 설익는다. 아무래도 불이 부족한 탓인 것 같다. 이럴 땐 전기밥솥에 옮겨 재가열을 한 번 돌리는 꾀를 부리는데 이게 최선인지는 모르겠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이렇게 저렇게 쓰다 보면 언젠간 요령이 좀 붙지 않을까 싶다. 푸석한 밥 대신 찰기 넘치는 엄마의 밥 맛을 얼른 내고 싶다.
또 밥이 설익었다. 이번엔 타이머까지 맞춰 나름 치밀한 자세로 임했지만 역시나 불의 세기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아주 못 먹을 정도는 아니라 바로 맛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했다. 배고픔을 넘어 배가 곯기 직전이라 설익은 밥쯤은 아무렴 상관없었다. 앞전에 강릉에 갔다가 사 온 구운 곱창김을 꺼냈다. 얇디얇은 데다가 구멍까지 숭숭 나있는 구운 김이다. 속 터지는 상황이 보나 마나 뻔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 역시나 그냥 쓰기로 했다. 오늘은 전체적으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하는 식이다.
최대한 터지지 않게 싸려고 김밥 발을 꺼냈다. 김 위에 밥을 쓱쓱 펼치고 그 위에 루꼴라와 반으로 길게 가른 소시지를 올려 돌돌 말았다. 일단은 무사했다. 하지만 칼을 대니 예상대로 옆구리가 펑펑 터졌다. 찰기가 부족한 밥에 엉길만한 소스도 없다 보니 터진 김밥은 그대로 활짝 피어버렸다. 당황해 얼른 오므려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쌉싸래하고 매콤한 루꼴라가 닭가슴살과 담백하게 잘 어우러져 정말이지 흠잡을 데 없이 맛있었다. 어차피 먹으면 똑같다고 쿨하게 생각하면서도 손 끝은 아기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터진 김밥 서너 알은 다른 김밥에 서로서로 기대어 붙여 놓았다. 감쪽같았다.
엄마표 싱근지(물김치)를 곁들였다. 설익어 호화가 덜된 밥이라 어찌나 목이 메던지 싱근지 국물을 연신들이 켰다. 아삭 거리는 루꼴라를 씹을 때마다 터져 나오는 머스터드 향이 코 끝에 오래 남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반이 훌쩍 넘었다. 별것 아닌 것인데도 무언가를 챙겨 먹는 건 적잖은 시간과 품을 요하는 일이라는 걸 다시금 인지하는 순간이었다.
일의 성과가 곧 존재의 가치를 좌지우지하던 때가 있었다. 효율과 성과를 쫒다 보니 밥 한 끼 해먹을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시간이 없어서라기 보다 생산성을 운운하며 따지고 들다 보니 배달음식이나 때우기식의 식사가 최선이었던 것이다. 그저 배만 불리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정해진 양의 시간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조급해졌다. 퇴근 후 마음을 먹고 밥을 준비하더라도 오늘처럼 늦은 밤이 되고 나서야 일단락이 되니 결국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죄책감 비슷한 무거운 마음이 남았다.
다행히 이제는 잠시 멈춰 숨 고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지독한 번아웃을 4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완전히 통과하고 나서야 체득한 사실이다.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무조건적인 최선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말이다. 더불어 최선의 모양은 완성형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경주마처럼 끝을 모르고 내달리기만 하다가는 방향도 잃고 목적도 잃기 십상이다. 그러니 잠시 멈춰 두리번거릴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고루하고 진부한 얘기지만 시큼털털해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실천하고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이것이 삶의 가치와 의미를 결정하는 전부가 될 수는 없으므로 한 조각에 집중하기 이전에, 그 이전에 다른 조각들과의 발란스를 더불어 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균형 잡힌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꽉 채워진 조각뿐 아니라 빈 조각도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어휴- '배도 부르고 쏜 살처럼 지나가버린 시간의 속도를 생각하니 저절로 가쁜 숨이 터져 나왔다. 무사 끝에 느낀 안도감에 떠밀려 나온 숨이었다. 늘어지는 몸을 일으켜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기대앉았다. 시계를 보니 이제 막 10시 16분 언저리를 지나고 있었다.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에 한 번 사로잡기 시작하니 소리가 점점 귓전에 가까워졌다. 낭비라 치부했던 시간이 요란하게 흘러들어 빈 조각을 채우고 있었다.
글과 사진 @g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