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나는 어릴 때부터 비오는 날이 참 좋았는데 이유는 한 가지였다. 비오는 날은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나가도 되지 않으니까.
나는 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었고 발야구 피구 농구 축구 같은 갖은 공놀이,뜀틀,달리기 등 체육 시간에 하는 모든 운동이 다 싫었다. 몸을 잘 못 쓰기도 했고 달리기도 느렸다. 발야구는 차기만 하는건데도 매번 아웃이었고 피구는 첫 번째로 맞고 나가떨어지기 일쑤였고 뜀틀은 그냥 앉아버렸다. 운동이란 운동엔 모두 소질이 없던 나는 체육시간이 너무 싫었고 비가 오면 그렇게 싫어 하던 야외수업이 없으니 괜히 기분이 좋았더랬다.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때 비를 맞고 돌아 다니는 게 기분이 좋아 우산을 쓰지않고 걸어다니다 혼난 적도 있었다.
그 기억 덕분에 비를 맞고 걸어다니면 어떤 느낌인지 어떤 감촉인지 안다.
비에 관한 조금 슬픈 기억이 있다면 초등학교 때 전학을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동생과 등하교를 함께 할 때였는데 하필 집에 가려는 데 소나기가 내렸다.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난감해 하면서 집에 갈 방법을 고민 하다 결국 동생을 놔두고 신문지를 머리 위에 얹고 비를 맞으며 먼저 집으로 가 우산을 들고 다시 기다리고 있을 동생을 데리러 학교로 간 적이 있다. 비가오면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오거나 후문 앞에 우산을 들고 데리러 온 누군가의 엄마 아빠를 보며 나는 절대 가질 수 없는 현실에 한번 씩 씁쓸함을 맞봐야 했다.
가만히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런 저런 복합 적인 생각들에 설레기도 하고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조금은 서글퍼 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비오는 날이 좋다.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도 좋고 비오는 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분명 낮인데도 하늘이 어두컴컴한 것도 좋고 조용하게 가라앉은 사무실 분위기도 좋다.
다시는 오지 않을 체육 시간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것은 조금 아쉽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