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전야 - 싱글 버전
비행기 표는 끊었으니 일단 가는 거지. 신난다. 이제 음악과 읽을 책을 골라볼까. 이게 여행의 맛이지. 출발 전의 설렘. 플레이리스트는 내가 좋아하는 담배 백만 대 핀 목소리, 재니스 조플린 언니와 함께 할까 아니면 니나 시몬 언니? 나도 그렇게 경계를 뛰어넘는 훌륭한 미친년으로 살고 싶다.. 아니면 좀 슬프긴 하지만 오래간만에 우리 달빛요정님을 들어볼까? 하.. 그 새벽에 혼자 여의도를 가로질러 걸어갔던 그 빈소가 생각나네. 너무 쓸쓸하게 친구로 보이는 2명만 있었는데.. 여행은 역시 혼자 가는 게 최고지. 이번 여행에선 또 어떤 삶들을, 어떤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일단 많이 걸어야겠다. 이렇게 라오스를, 네팔을, 쿠바를... 아구 좋다.
휴가 전야 - 유부녀 버전 (여행 with 아가)
준비물은 다 확실하게 챙긴 건가?! 일단 기저귀만으로 여행 가방의 반이 차네. 먹을 것도 진짜 고민되는데, 일단 햇반과 김, 수저, 우유, 과자, 물, 아기용 된장국, 미역국. 또 뭘 가져갈 수 있지? 거기엔 아기가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는 건지 미리 검색해봐야겠다. 그래도 이유식은 끊어서, 음식들을 얼려서 가져가지 않는 게 어디야. 아가가 옷은 한 하루에 3벌씩은 갈아입을 텐데 이 정도면 되려나? 유모차는 가져가야 돼 말아야 돼? 아 또, 빠방도 챙겨야지. 요즘 제일 좋아하는 파워키 앰뷸런스는 꼭 챙겨야지, 아니면 난리 날 텐데. 내 옷은? 아 몰랑, 대충 챙겨.. 여행 가기 전에 이미 몸살 느낌, 가고 나선 실제 몸살.
휴가 전야- 유부녀 버전 (여행 without 아가/ 어제 상황)
아기가 잠을 자야 짐을 쌀 텐데.. 그나저나 재우는 방법이 너무 어려워졌네. 자, 어머니께 들은 대로 일단 아가가 손을 번쩍 들면 그걸 신호로 겨드랑이에 연고를 바른 뒤 후후 불어주고.. 그리고 팔부터 손목까지 적당한 강도로 긁어주고.. 좀 더 잠든 것 같으면 등을 긁어준 뒤, 그리고 배 주위를 살살 원을 그리듯이.. 지난번처럼 맘에 들지 않아서 한 시간 넘게 대성통곡하면 어쩌지?
(최선을 다해 긁어주며 머릿속은 복잡) 아기 똥 기저귀는 지금 화장실에 그대로 있는데, 빨리 치워야 할 텐데.. 자, 지금 기저귀와 로션 떨어진 것은 사 뒀고, 아기 주스와 과자들도 챙겨뒀고, 우유와 고기, 계란도 주문해뒀고, 우리 없는 동안 부모님 드시라고 주문한 간장게장과 갈비탕 등등은 내일쯤이면 도착할 거고, 뭐 또 빠진 거 없나?
내가 야근하던 어제, 아가가 잠들면서 나를 많이 찾았다던데, 정말 괜찮을까? 주 애착 대상자가 요즘 어머니라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랬지? 나 없는 동안 어머니도 아가도 너무 힘들면 안 될 텐데.. 평소에도 잘 못 보는데 이렇게 우리만 여행 가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네. 같이 가기엔 너무 먼데... 내가 너무 이기적인 엄마인가? 나쁜 엄마인가?...
하지만 간다, 그리스.
지난 몇 달을 이 휴가 생각을 하며 버텼는데, 최근엔 휴가 생각만으로 무척 신이 나서 사방팔방 자랑도 했는데.. 이 날을 위해 앵커를 시작하자마자 황당해하는 선배 표정을 뒤로하고 5월 말 휴가 가야 한다고 허락도 맡아두고 대타도 정해지고 정치팀에도 이른 여름휴가에 대한 양해를 구했고..몇 달간 준비해 온 일이건만, 막상 휴가 전날 나를 덮친 건 두고 가는 아기와 휴가기간 아기를 돌봐주실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
하지만 갈 거다, 그리스. 내 사랑스러운 친구 바실리키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주기 위해, 나의 버킷리스트 최상위에 늘 있었던 그리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간다, 그리스. 드디어. 엄마가 행복해야 너도 좋을 거야 아가야. 미안, 일주일 뒤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