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아.버.지.께.
이 여덟 글자 앞에 앉아 있다 벌써 몇 번이나 그냥 노트북을 덮었는지 모르겠어요. 아직은 아버지가 이 세상에 더 이상 계시지 않다는 사실이, 더 이상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도, 반주를 곁들인 긴 수다를 나눌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엔 아침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봄 꽃망울을 보고는 다시 울컥 눈물이 쏟아졌어요.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단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봄쯤엔 회복하셔서 공원을 산책하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부랴부랴 하버드 봄 점퍼를 사서 짐에 넣고 비행기에 탔었는데, 그 점퍼를 한 번도 입으시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서 한동안 길바닥에서 또 그렇게 울고 서있었습니다.
몇 주 전에는 아버지의 7살 난 막내 손주도 갑자기 새벽에 깨더니 "할아버지 보고 싶다!"며 30분 넘게 통곡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왜 그렇게 갑자기 울었는지 그 이유는 한참 뒤에야 들을 수 있었는데, 꿈에 유령이 되신 할아버지가 나오셨는데, 자기하고는 놀아주지도 않고, 다른 유령 하고만 놀아서 너무 슬프고 서러웠다고 해요. 이별을 알기엔 너무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소화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고 아버지 친구분들이 급히 미국에서, 태국에서 귀국해서 한걸음에 달려와 주셨어요. 몇십 년 된 환자, 또 제자분들도 빈소를 찾아서 가족보다 더 서럽게 함께 울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정겹게 서로를 챙기셨던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까지 어찌 아시고 빈소를 찾아와 주신 걸 보고, 역시 아버지는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셨구나.. 아버지에게도, 찾아와 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길지도 않은 몇 문장을 다 쓰는데 넉 달이 넘게 걸렸네요. 습관대로 또 관련된 여러 책들을 사모으며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고 위안을 얻어보려 애썼지만, 지금까지 제가 확실히 알게 된 건 이 슬픔과 그리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 오히려 점점 더 깊어질 것이라는 것뿐인 것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앞에서 사 온 백 원짜리 병든 병아리들까지 밤샘 간호하며 모두 살려내셨던 다정하셨던 아버지... 제대로 인사할 시간도 없었던 갑작스러운 이별이 너무나 서럽지만, 제게 남아있는 시간 동안 아버지 가르침대로 좋은 사람으로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축복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즐겁고 편안하게, 잘 지내고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