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킹 노마드 Apr 19. 2018

까레이스키, 불고기 잡채를 요리하다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나라에서 오신 손님들

외국인 대상 쿠킹 클래스를 시작한지 벌써 3년차에 접어 들다보니 푸에르 토리코, 룩셈부르크 등등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여행오신 손님들을 만나면서 이제는 어떤 나라도 처음 온 손님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는데, 며칠전 카자흐스탄 손님들의 예약이 들어왔다.

예약을 받고 나의 쿠킹 클래스 파트너인 친정 엄마께 말씀 드렸더니, "카자흐스탄? 우리 카자흐스탄 손님은 첨이다~ 그치?" 하신다. 맞다. 처음인데다, 직감적으로 혹시 고려인 아닐까 싶어 손님의 프로필 사진을 봤는데, 그런것 같았다. 예약일이 다가올수록 그 분들의 음식이, 삶이, 언어가, 다 궁금했다.  


10여년 전, 유네스코에서 주관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본인의 나라에 대한 초중고생 대상 국제이해 수업에서 통역 자원봉사 교사로 몇년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우즈베키스탄 수업 통역을 하게 되면서, 까레이스키와 1937년 고려인 강제 이동에 대해 나 또한 새롭게 알게 됐고, 초겨울 이미 혹독한 추위속 한달동안 달려온 기차 화물칸에서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툭 내려진 수십만의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뭐라 말 할 수 없는 먹먹함이 느껴졌었다. 일본의 지배 당시 연해주로 건너가 살 고 있던 수 십만의 사람들이 일본의 스파이가 될 것을 염려한 스탈린의 명령으로 하룻 저녁 난데없이 좌석도 없는 가축, 화물을 싣는 기차 칸에 올라야 했고, 그렇게 도착한 추운 벌판에서도 마음대로 이동도 못했다고 했다. 잘 못 한 일이 없는데 죄수처럼 살아야 했다는 한 증언이 그 상황을 다 설명한다.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처음 기차에서 내려 정착한 우슈토베 지역" by Базарбеков Ғалымбек  under CC BY-SA 3.0


80년전 바로 그 기차에서 내린 분들의 3대 후손들이, 오늘 나의 주방으로 오셔서 함께 불고기, 잡채를 요리하고 순두부찌개를 끓였다. 마늘을 다지고 당근을 채썰면서 손님 중 한 분의 손녀가 다음달에 돌잔치를 한다고 하셔서, 우리의 돌잡이 문화 얘기를 해 드렸더니 신기해 하시며 본인은 손녀 돌상 위에 돈만 올리고 싶단다. 사람 마음이 다 같은가보다.
  요리 도중, 옆에서 반찬을 준비하시던 엄마가 집 된장을 꺼내시는걸 보고 그 분들이 조금씩 찍어서 맛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본인들 할머니 된장 맛이란다. 또, 마켓 투어를 하면서 김장 문화를 말씀드렸을 때엔 이 분들도 김장철이 있는데 10월 쯤이라고 하시면서도 우리의 김치냉장고라는걸 너무 궁금해 하셔서 집에서 보여드렸다. 이 분들이 김치를 '짐치'라고 하신다는 얘기를 들으신 엄마가, 옛날 엄마의 할머니도 김치를 짐치라고 하셨단다. 또, 어떤 전통 과자를 설명하시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 가서 보여주시는 사진을 보니 우리의 유과와 비슷한데 겉에 쌀튀밥이 붙어 있지 않은 유과였다. 8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 먼 나라에서 김치를, 된장을, 유과를 먹고 있는 분들을 보니, 순간 역사속 장면들과 현재가 중첩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잡채를 볶으면서 볶음 주걱과 젓가락으로 당근, 양파, 쇠고기를 볶는걸 보여드렸더니 이 분들이 막 웃으시면서 일단 젓가락질을 배워야겠다고 하신다. 젓가락질을 배워야 한다고? 그럼 밥은 뭘로 드시냐 했더니 숟가락과 포크만 사용해서 젓가락은 한 번도 써 본적이 없으시단다. 김치도 포크로 드신다는걸 알았다. 요리가 다 끝나고 식사를 준비하면서 숟가락과 젓가락만 준비했던 상에 부랴 부랴 포크들을 갖다 드렸다.



또 이 분들이 식사하시면서 대화 나누는 언어가 카자흐어라고 생각했는데, 러시아어라고 하시며 고려인들은 주로 카자흐어는 잘 모르고 러시아어만 하신다고. 한국어는 아예 못하지만 요즘엔 한국 드라마 덕분에 한국어를 좀 알게 됐다고 하신다. 본인들의 할머니들도 한국어는 조금만 하실 수 있고, 몇년 전에 할머니가 한국에 처음으로 오셨었는데, 할머니 고향은 북한이어서 고향은 못가셨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고 자란 고향에 평생 가지 못하고 러시아어를 하며 사신 그 분들의 인생은 그 자체로 다큐멘터리다 싶었다. TV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 대신, 한국의 청년들이 그 분들을 가서 만나고 그 인생 이야기들을 음악, 웹툰, 전시, 영상 등등 다양한 형식으로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이 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 역시 그 동안 TV에서 고려인들에 대한 여러 다큐멘터리들을 봐 왔지만, 오늘처럼 많은 생각과 감정이 일어난 적은 없었던 듯 하다.   



식사가 끝나고 함께 다식을 만들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이 분들은 연령대가 다 다른데 어떻게 만난 사이일까? 함께 온 손님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절대 먼저 묻지는 않는다는게 내 철칙이지만,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내 룰을 한 번만 어기기로 했다.^^  내 질문에 넷 다 웃으시면서, 서로 다 모르는 사이인데 이번 여행을 함께하려고 만났단다. 한 분이 유명 블로거이고 다른 분들은 그 분의 인스타그램 팔로어인데, 그 분의 여행 계획과 제안을 보고 만났단다. 세상에나. 순간 깨달았다. 내 고정 관념을. 사실 이 분들을 만나기 전까지 내 머릿속의 고려인은 황량한 벌판에 기차에서 내려져 악착같이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교육시킨 분들 까지만 저장되어 있었나보다. 인스타그램으로 만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의 요리, 찜질방, 시장 등등을 체험하러 함께 여행을 온 그녀들이 내 고정 관념을 시원하게 깨 주셨다.

 티타임까지 마치고 나가시기 전에, 모두들 엄마와 큰 허그를 하셨다. 그리고 지하철 역 까지 가면서, 오늘 정말 여러 감정이 느껴진 좋은 추억이 남았다고 하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