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낮 12시가 되면 친구를 부르러 간다. 때로 그녀는 내가 사는 아파트 앞 경비실 옆 공터에 있기도 하고 분리수거하는 나를 놀라게 하며 나타나기도 한다. 어쩌다가 며칠 심술을 부리며 안보이기도 하고 요번 겨울에는 1층 화단에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가 만들어 놓은 스티로폼 집에서 잠을 잔다.
그녀는 고양이이다. 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 예전에는 가끔 봤는데 지난여름부터는 거의 매일 보고 있다. 분명 나에게 밥을 먹으러 찾아왔는데 이젠 내가 밥을 먹이러 찾아가지 않으면 안 돼버렸다. 밀당의 고수이고 차갑고 도도하다. 그렇지만 미워할 수 없다. 할머니가 되어가는 게 보이니까 조금 서글프다. 겨울이 되니 활동량과 식사량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이젠 잘 쫓아오지 않는다. 매일 눈인사로 껌뻑 한두 번 하는 것으로 '그래~ 그럼 된 거야' 하며 지내고 있다.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는지 정확하지가 않다. 3년쯤 된 걸까? 더 됐을까? 몇 번 길에서 마주치다가 얼굴이 낯익어지기 시작했었다. 처음에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이 주변을 맴돌기에 잠시 기다리라고 길에 세워놓고 집으로 뛰어들어왔었다. 냉동실에서 꽝꽝 얼려놓은 먹지 않는 생선을 뜨거운 물에 씻어서 그녀에게 달음박질치면 신기하게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싫어하는 얼음 생선을 물고 갔다.
나는 생선을 싫어하니 잘됐다. 그녀의 몫이다.
종종 집 근처에서 마주쳤고 조금만 친한척하려고 가까이 가면, 하악 거리며 사람을 싫어했다.밥이 고파서 다가 오기는 했지만 사람을 본능적으로 경계한다. 매일 밥을 주는데도 아직도 손길이 닿을까 봐 기겁을 한다. 꼬리 한번 만져보고 싶은데...
그래도 그녀와 서로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매번 나에게 먼저 와줬기 때문이다. 내가 밥으로 보이겠지만 언젠가부터 짧게라고 나의 존재를 안식처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언어가 달라서 들을 수 없고 더구나 한 번도 소리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가만히 쳐다보기만 한다. 그냥 갑자기 '뿅'하고 나타나 주면, 그 존재를 나에게 보여만 줘도 나는 반갑다.
오늘도 밥을 주었다. 그리고 그 안도감이 나에게 매일의 감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몇 년간의 시간들이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담은 듯 기억으로 찰나는 남아있다. 그러나 나쁜 기억력 때문에 점점 빛이 바래듯 사라지고 있다. 밥을 주면 정을 주게 된다. 그러다가 마음의 준비도 할 겨를 없이 인사도 못하고 사라진 녀석들을 일부러 기억하고 싶지 않다. 정이 든 깊이만큼 아플 때가 있다.
짧게 눈길을 주고받았고 즐거웠던 시간들이 쌓여있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지는 것은 더욱 슬플 것 같다.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어서 이제부터 기억들을 글로 새겨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