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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찐 냥이 Jan 20. 2023

미술관에 갈 큰고양이

세상에 미술관과 길고양이는 많으니까

우리가 미술관에서 작품과 마주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많은 감상의 방법 중에서 여러분이 꼭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답이 나온다. 그것은 '즐기는 것'. (중략) 그러니 미술 감상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 가겠다'하는 굳은 의지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한정희_취미는 전시회 관람_중앙북스 2016



미술관이 예전보다 문턱이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패딩점퍼보다는 코트를 입고 가야 할 것 같은 곳이다. 이제까지 미술관을 많이 다녀 본 것은 아니었지만,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장소와 사건들은 있다. 이상하게도 나는 미술관에 다녀와서 작품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오히려 그때 같이 간 사람과 그 주변 풍경, 사람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

 

미술관에는 작품을 즐기러 가는 것이지만 왠지 긴장이 먼저 될 때도 있다. 가끔 무슨 전시인지 잘 확인해 보고 가지 않아서 '헙' 소리가 난 적이 있었다. 나와 매우 다른 차원의 세계를 그림으로 보면서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와 있는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이 그림을 그린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꼬리를 무는 돌림노래를 머릿속으로 부르다가 나오면서 아이스커피 한잔을 찾았다. 다리가 아프니 좀 앉은 김에 머리를 비우고 싶어 져서 말이다.


유명한 외국 작가의 대중적인 전시를 갔을 때였다. 뜻밖에 그날은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휑한 바람만 임시 매표소 앞의 먼지를 쓸고 있었다. 어떤 모녀가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 같았다. 뭔가 예기치 못한 상황인 듯 꽤 오랜 대화가 오고 갔다. 전시 관람을 하면서 그 모녀의 실루엣을 살짝 마주쳤다. 벽면마다 가득 움직이는 화려한 그래픽과 임시로 천을 뜯어 만든 듯한 인테리어, 어두운 공간을 돌아다니며 건조해진 눈이 제대로 그림을 보기 어려웠다. 현란한 빛의 움직임과 더불어 엉성한 설치물들이 집중을 방해했다. 순수한 자연을 그린 작가의 작품을 통조림 같은 공간에서 인공햄 같은 가공물로 보려니 뭔가 잘못 먹은 기분이었다. 먼지 많은 어두운 공장을 이리저리 헤매면서 걷고 있는 느낌에 빨리 나가고 싶었다. 그저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매점 같은 곳으로 드디어 나왔다.


출구로 나가는 길이었다. 작품과 관련된 소품을 팔고 있었다. 아까 본 그 모녀가 그곳에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말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매표소 앞에서의 당황했던 표정은 사라져 있었다. 가까이 보니 삶에 겹겹이 쌓여온 피곤이 얼굴의 주름과 표정에 새겨있었다. 그러나 눈은 딸에게서 벗어나지 않았다. 딸은 '이거 예쁘지?' '이거 어떨까?' 계속 엄마에게 말을 건네듯 혼자 말하듯 분주히 손을 움직이며 소품들을 보여줬다. 씩씩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제야 그 모녀가 왜 자꾸 마음에 쓰이는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크고 깊은 화상자국이 있었다. 딸에게도 화상 흉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오래전에 모녀는 큰 화재를 같이 겪은 것 같았다. 화재는 몹시 크고 피할 길이 없었던 것 같았다.  


어머니는 미술관에 그림을 즐기기 위해 오신 것 같지 않았다. 딸을 보기 위해 오신 것 같았다. 딸이 가고 싶은 그곳이 미술관이라 온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처음 봤을 때부터 마지막까지 딸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소 힘이 없는 눈이었다. 그러나 딸을 조용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녀는 머나먼 외국의 아주 오래된 작가의 유명한 작품보다 바로 그 순간 그녀 앞에서 조잘대는 딸의 모습이 '그 어떤 것보다도 보고 싶은 그림' 같았다. 그날의 전시는 그 모녀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언젠가 여러 전시실이 있는 미술관에 갔을 때였다. 발길이 닿은 곳에 들어가려니 입구 안으로 온 통 하얀색 벽이 있었다. 그리고 천장과 바닥에 알 수 없는 기호가 매달려 있었다. 한글의 ㄱ, ㄴ,ㄷ이라도 달려있으면 낱말 맞추기라도 해 보겠는데 도저히 그 형이상학을 이해하기에 미술지식이 역부족이었다. 문 앞에 덩그러니 의자에 혼자 앉아있던 직원이 나의 입장과 함께 일어나더니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예술작품을 건드리면 안 되니 조심해 달라는 말과 함께 그곳에 서있었다.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바닥과 머리 위의 조형물을 피해 가며 발걸음을 떼었지만 나를 쳐다보는 그녀가 너무도 신경이 쓰여서 곧 나와야만 했다.


아마도 그 전시의 의도는 조형물을 피해 다니며 움직이는 관람객의 행동과 그림자가 '제3의 조형물'이 되는 종합예술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따뜻한 커피와 마카롱 그리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담은 작품들로 연말의 삭막함을 살짝 밀어내준 전시를 간 적도 있었다. 서울 도심, 오래된 건물 고층을 올라가니 여러 사무실들 끝에 미술관이었다. 큰 창문이 맞대에 있어서 도심이 한눈에 보였다. 커피를 마시며 창문 밖을 보니 아래에서만 보던 오래된 건물들의 옥상과 하늘을 볼 수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두 남자 스님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모습도 그 전시의 일부처럼 기억된다. 그때 구매한 작품 엽서들은 매년 연말마다 내 방에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직접 감상해 본 지 오래되었다. 그곳, 그 자리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 아직 살아갈 날은 많고 가보지 못한 미술관은 매우 많으니 다행이다.


작든 크든 감동할 기회들은 아직 풀지 않은 선물과 같으니까. 


것은 아직 친해지지 못한 길고양이도 마찬가지다. 동네에 얼마전부터 빼꼼히 나를 관찰하는 녀석이 생겼다. 녀석에게 나는 밥나르는  큰 고양이로 보이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아직 풀어볼 선물이 많다. 미술관과 길고양이는  전 세계  곳곳에 있을테 새로운 것들의 마주침에 대한 기대감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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