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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찐 냥이 Feb 17. 2023

타인의 책장

더 어려운 시기를 건너야 하는 당신에게

신간 책이호기심에 찾아본 책들은 나중에 읽기 위해 온라인 서점의 보관함에 찜 해놓는다. 종이에 적어놓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노트가 사라지거나 다시 찾는 게 귀찮아져서 쉽게 잊는 선택을 해버린다. 온라인 서비스에 스크랩을 해 놓아도 사용하지 않거나, 서비스가 중지되면서 기록이 사라져 버렸다.


가상의 책꽂이에 읽고 싶은 책과 읽은 책 그리고 갖고 싶은 책이 뒤섞여 꽂혀있다. 그리고 종종 궁금하다. 다른 사람의 책꽂이에는 어떤 책들이 있을까?


나의 시간은 다소 오래전부터 멈추어 있다. 극심한 번 아웃이라고 해야 할지 마음의 탈수증세라고 해야 할지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작은 보폭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도심을 벗어나면서 시간의 자비 없음과 사람들의 온기 없는 치열함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코로나 이전부터 조금 느린 속도로 살고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당황한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동네생활에 새롭게 적응해 갈 때 나는 원래 내 속도대로 큰 변화 없이 새로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과 다소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관찰자 시점으로 지냈다.


핸드백과 화장품 파우치, 인공눈물 대신 낮은 운동화에 장바구니를 챙기는 반복의 일상. 가죽과 장식으로 무거운 핸드백대신 가벼운 천으로 만들어 한쪽 어깨에 툭 걸치는 가방과 길고양이 사료를 함께 꼭 들고 집 밖을 나섰다.


고양이를 닮은 성격 때문일까? 생활이 이전보다 단조로워졌다고 나의 호기심까지 단순해지지는 않았다.


그동안 읽어본 책들을 다시 찾아봤다. 나의 책꽂이에 있는 책들과 사진으로 남겨놓은 기록들 그리고 e-book의 밑줄 친 곳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되짚어보고 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과 고양이 안면인식 장애처럼 다시 봐도 기억이 안나는 책들을 다시 보면서 그때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을 비교해 본다. 어떨 때에는 왜 여기 쓰여있는데 읽어놓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왜  새롭지? 다시 보니 이런 의미였구나?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자극을  찾지 않으면  온갖 콘텐츠에 휩쓸려버리는 세상이다. 내 시간은 나의 의지로 잘 흘러가기 않는다. 잘 살아가기 위해 자기 계발에만 몰두하거나 SNS의 화려한 세상을 보며 조급해지거나 달콤한 말들에 자기 위안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긴 인생에서 세상의 변화는 너무 급하게 빈번히 오고 가는 바람에  뭐가 왔다갔나? 하면서 뒤통수에 인사하게 된다. 예측이 어렵다. 휘청이며 두리번거리게 된다.


책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건져내고

지금 이 시점에 생각할 실마리를  찾고

내 속에서  나오는  생각을

한 문장이라도 눈에 보이게 정리하는 것


지금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과연  의미가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타인에게  내  모습보이는 것이  유쾌한 것은  아니라서

놀림받을까 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여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을  또  만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이제까지  제일  반복적으로 해온 행동은  길고양이  밥 주기와 새로운 책 찾기이다. 타인들이 풀어놓은 처음 보는 세상들이 책에 들어있다. 의도적이지 않게 나를  꾸준히 움직이게  한 것은  한겨울을 버텨내고 봄에 세상을 떠났던 길 위의  꼬질한  생명과 누군가의 삶을 농축시킨 책이었다.


사람을 피해 도망 다니는  길고양이와  점점  친해지는  과정,  책을 통해 사람에 대한  실망을 거두어들이는 과정, 세상을 읽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내 글을 통해 같이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 때 욜로를 부르던 시기가 휘리릭 지나가버렸다. 코로나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가 했더니 더 혹독한 겨울이 살갗을 후빈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도움과 조언을 구하기 어려웠다. 오로지 혼자 생각하고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과정이 수월하지 못했다. 그래서 책을 찾았다. 서점으로 갔다. 도서관을 걷는 것이 산책이었다. 읽고 또 읽고 어느덧 습관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듯, 모든 책이 좋은 책은 아니었다. 첫인상과 다른 책들과 광고의 옷이 너무도 화려한 책은 허술한 내용에 실망이 컸다. 책을 읽을수록 좋아하는 책을 찾는 촉이 생겼고 나의 책 취향을 알게 됐다. 처음에 친해지지 못한 관계가 있듯이 다시 찾아서 인사하니 반가운 책도 있었다.


그림책은 유치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반쯤 버렸다. 잘 고른 그림책은 실하고 단단한 고구마 같다. 날 것으로 먹어도 맛있고 익히면 더 달아지는 맛이다. 흘깃 한 번 보면 재밌고 두고두고 장면이 생각나서 더 애틋해진다. 그림책으로 책 취향이 넓혀졌고 어른이지만 조금씩 모으고 있다. 어릴 때에는 거의 없던 그림책이 어른이 되니 점점 늘어나고 있다.


조금 더 옹골차게 살아가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이 책이었듯이, 다른 이들에게도 어려운 시기를 건너가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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