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 Jul 01. 2022

나는 나로서 충분해 괜찮아 이제

어제 레드북 넘버를 흥얼거리다가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에서 턱 걸린 가사는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였다. 따라 붙는 가사는 '나는 나로서 충분해 괜찮아 이젠'이다. 레드북은 결혼이 배고프면 밥 먹는 것처럼 당연하고 여성의 덕목은 아이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것이었던 시대에 자신의 욕망을 담은 글을 쓰고 자신의 이름으로 그 글을 출판하는 것을 꿈꾸던 '안나'의 이야기를 다룬 극이다.

중간에 백마탄 왕자님 같은 남자 조연 브라운이 등장하고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안나는 결국 그가 이해하지 못할,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기로 마음 먹으며 이 노래를 부른다.



공연장에서 '당신과 같은 심장으로 숨을 쉬고 당신과 같은 표정으로 꿈을 꾸는 그러나 결국 당신과 다른, 당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말하는 안나의 표정을 보며 속수무책으로 눈물이 터졌던 기억이 난다.

안나가 그 말을 브라운에게 할 수 있는 데는 당찬 성격과 더불어 그의 선택을 지지하는 다른 여성들이 등장한다. '웃기는 녀석이네'라고 말하면서도 상상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격려하는 윗 세대의 여성과 함께 글을 쓰며 세상의 손가락질에 똘똘 뭉치는 동료들, 그리고 우연히 자신을 알아보고 '너무 좋았다'고, '이 글 덕분에 숨쉴 수 있었다'고 경찰이 붙잡는데도 소리쳐 외치는 독자까지. 성추행을 당하고 사회가 너는 부적절하다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조차 왜 굳이 그런 일을 하느냐고 하는 상황에서 그가 꺾이지 않는 것은 결국 작은 지지가 모여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나로서 충분해 괜찮아'라는 가사가 안나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사실 인생에서 잠깐 등장하고 마는 사람들과 그들이 건넸던 다정함과 용기 덕분이다. 그들이 안나의 목소리에 힘과 살을 붙여 끝끝내 마음의 소리를 바깥으로 내뱉을 수 있도록 도왔다.




어제는 수술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병상에서 약기운에 취한 채 외울 정도로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들어서 1년이 되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보고 싶어, 보러 갈게'는 2PM 'MUST' 앨범에서 가사와 제목을 듣자마자 눈물을 터트렸던 노래다. 그 때의 나는 '다 필요 없고 보고 싶어 보러 갈게'라고 말하는 사랑과 사람이 절실했다. 하지만 당시의 내 곁에는 아무 것도 없고 산더미처럼 처리해야 할 일과 파견을 반대하는 가족과 찢어진 연골만 있었으므로 그 노래를 들으면서 어떻게든 해내야지 이를 악 물었던 기억이 난다.



선택을 하고 무엇인가에 뛰어들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원했다. 주로 가족- 특히 부모님이었는데 아쉽게도 네가 무엇을 하든 지지하겠다는 부모님은 아니셨다. 그들이 하는 사랑은 보호와 보편성을 기반으로 했으므로 내가 하려는 것들은 늘 그들과 충돌했다. 부모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기분은 나를 오래 외롭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했다. 왜 이런 것을 좋아하고 하고 싶지? 왜 이러지? 어릴 때부터 몸이 아파서 손이 많이 가는 자녀였기 때문에 부모가 나에게 쏟은 정성과 돈과 애정을 제대로 보상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더 욕심을 부려야 해, 더 해야 해, 성과가 나와야 해. 



하지만 다행히 내게는 자매들이 있었다. 지지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헛짓을 할 때마다 그걸 대단하다고 해주는 친구와 동료들이 곳곳에 있었다. 어떤 마음이 끓어오를 때 불안과 반대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굴 수 있는 에너지는 그들로부터 왔다. 인생의 연대기를 쓴다면 오래 머무르지 않았어도 분명 흔적을 남겼던 사람들. 삶의 마라톤을 뛰는 내가 지칠 때마다 물을 먹이고 바나나를 쥐어주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다정함에 은혜를 많이 입었다. 그래서 자기혐오를 조금씩 밀어내고 '나는 나로서 충분해'라는 목소리를 직면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그들이 만들기도 한 것이기에 함부로 폄하하고 좌절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과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순간은 살면서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말을 '진심으로' 쓰는 순간이 오다니! 넘어지는 순간은 또 오겠지. 하지만 일으키는 손도 분명 등장할 것이라는 근거 있는 낙관이 만 30년 만에 드디어 자리잡은 것 같다.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간대도 또 다음이 있을 것이다. 끝없는 목표 도장깨기의 끝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면 의무감에 사로잡힌 도장깨기는 그만둬도 될 것 같다. 마음 한켠에 묵직하게 자리잡은 의무감까지 툭툭 털어내고 나만의 방식으로 지금을 살고 싶다. 서른은 나를 수용하는 나이인가보다. 이제는 나로 충분하다는 가사에 울지 않고 안나를 한껏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레드북-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https://youtu.be/Q48dRaLeGGk

작가의 이전글 느긋하고 꾸준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