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못자는 상태로 아이를 놔둘 수는 없었다. 방치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내 성격 상 참을 수도 없었다.
4월30일 저녁 6시 목욕을 시켰다. 아이 기분이 좋았다. 곧바로 밤 분유를 먹였다. 아이 기분이 좋았다. 트림도 시켰다. 아이가 조금씩 눈을 비볐다. 울음소리도 입에서 새어나왔다. 잠이 온다는 신호다. 평소 장모님과 함께 방에 들어가던 아이를 내가 품에 안았다. 그리곤 “잘 자, 내일 보자”라고 말을 했다. 아이 방에 들어가 바닥에 넓게 펴놓은 이불에 눕혔다. 겨우 뒤집기를 하던 때라 혹시라도 아이가 구르다 방바닥으로 떨어질까 걱정해서였다.
아이를 이불 한 가운데 내려놓았다. 이불에서 10cm 떨어진 시점부터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그 때 다시 아이를 안으면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간다. 내려놓고 방문을 닫고 나왔다. 오후 7시였다.
그때부터 아이는 쉴 새 없이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도 다양했다. 소리는 달랐지만 그 울음소리는 한결 같이 숨이 넘어갈듯 한 소리였다. 부모가 그런 울음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는다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아이를 도와주고 싶고 아이를 웃게 만들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그런데도 우는 아이에게 달려가면 안 됐다. 아이를 낳고 나서 가장 힘든 때였다.
나는 곧바로 욕조에 물을 받고 반신욕을 시작했다. 욕실에서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반신욕을 할 정도로 독한 놈이라서 그런 여유를 즐긴 게 아니다. 반신욕을 하고 물에 담그고 있지 않으면 금방 방으로 달려가 아이를 안아주고, 달래주고 싶을까봐 일부러 스스로 발목을 묶은 것이다.
아이는 40분간 울었다. 그리곤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몸을 닦고 밖에 나가보니 장모님은 아이 방을 조금 열고 그 앞에 쭈그려 앉아계셨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뺨에 눈물 자국이 여러 줄기였다. 그렇게 힘든 40분 간 아이를 지켜보며 방에 들어가지 않고 참아주신 장모님께 감사했고 감동했다.
“잔다.”
장모님 한 마디에 한 번 마음이 놓였다. 울다 진이 빠져 잠에 든 모양이었다. 이불 바닥이 흥건하게 눈물로 가득했다. 아이 얼굴에 콧물이 범벅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가슴이 아렸다.
‘스스로 자는 법’을 태어날 때부터 알고 태어난 아이는 어른의 무지 때문에 그 방법을 잊었다. 그리곤 진이 빠지게 울어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이 때 만큼은 아이에게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는 부모와 조부모가 가장 큰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잠들었다고 안심할 수 없었다. 우리 아이는 장모님이 힘들게 재우고 나서 30분 뒤 다시 깨서 울고, 또 재우면 30분 뒤, 10분 뒤 계속 울며 밤을 지새우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30분 뒤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처음과 똑같이 거친 숨소리로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아이가 저러다 잘못 되는 거 아냐”라며 장모님은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가 우는 데 그렇게 민감할 필요 없다”며 달랬다. 속으론 ‘이러다 잘못되는 거 아닌가’라며 애가 탔다. 겉으로 내가 초조함을 표현하면 수면 교육이 수포로 돌아가니 티를 낼 수 없었다. 아이가 25분 울다 또 잤다. 그렇게 아이는 수시로 울다 잠에 들고 울다 잠에 드는 일을 반복했다.
아내가 새벽 1시쯤 야근을 마치고 돌아왔다. 오후 3시가 넘어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방을 살짝 들여다 본 아내는 오열했다. 아이가 울면서 몸부림을 치다 머리가 책장 맨 아래 칸에 걸쳐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어떻게 좀 해봐”라고 말하곤 벽을 치고 발을 구르며 대성통곡했다.
그런데 사실 어떻게든 해줄 게 없는 것이 수면 교육이다. 아이가 울든 웃든 미소를 짓든 시무룩하게 있든 알아서 잠을 자게 내버려 두는 게 이 교육의 핵심이다.
아내가 결국 들어가 아이를 안아 올렸고, 아이는 사람의 손길이 그리웠는지 무차별적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작전까지 울음소리 크기가 0~10 중 6 정도였다면 이땐 10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수면 교육이 뒷걸음질치는 순간이다.
아내는 이성을 잃고 장모님에게 “분유를 빨리 타오라”고 했다. 장모님도 아이가 어떻게 되는가 싶어 “분유를 타와서 먹였다” 아이는 당연히 분유를 남겼다. 배고픈 게 아니라 다시 잠에 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후회했다. 밤 수유를 끊기로 했는데도 무작정 들어가서 분유를 먹인 행동에 우울해했다. 아이를 눕히고 회의를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들어가지 말자”고. 두 사람 모두 동의했다.
수면 교육이라는 게 이렇다. 아무리 수면 교육을 하겠다고 다짐을 해도 스스로 아이가 우는 걸 보고 애타는 심정을 참지 못해 중단할 수 있다. 조부모가 동의하지 않아 못하는 경우도 많다. ‘돌 지나면 자겠지’라는 헛된 희망 때문에 중단할 수도 있다. 돌 지나도 못 잔다면 그 땐 어떻게 하겠는가. 걸어 다니고 기운도 세진 아이는 5~6개월 무렵 보다 더 오래 세차게 운다. 방문도 두드린다. “엄마~”라고 부르며 운다. 그 울음소리는 참을 수 있는가.
그 생각으로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순전히 부모가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 수면 교육하는 거 아니냐”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단코 부모가 편하기 위해 수면 교육을 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