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망원동>
"최근 서점 가판 좋은 목에 놓인 에세이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지만 나로선 조금도 궁금하지 않은 저자에 대한 TMI만 한가득인 느낌이다."
종종 글을 찾아 읽는 칼럼니스트 위근우 씨가 페이스북에 남긴 문장입니다. 보자마자 옳다꾸나! 이것이다! 내가 요즘! 에세이에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것이었다! 라는 명쾌함이 급습해 얼른 캡쳐를 해두었던 것입니다. 1년 전에 쓰인 문장이지만, 지금의 서점을 보자면 아직까지도 유효한 것 같고요.
그렇다면 좋은 에세이는 뭘까요.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경험을 서술한 것? 가볍게 술술 읽을 수 있도록 쉬운 문장으로 쓰인 것? 교훈을 줄 수 있도록 일상을 이리저리 꿰매 보여주는 것?
저는 좋은 에세이가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에세이는 있습니다. 1) 내가 대강이라도 아는 동네 얘기를 하든가 2) 내가 흥미를 갖는 모르는 동네 얘기를 하든가. <아무튼, 망원동>은 제가 아는 동네, 그것도 애정을 가진 동네 얘기가 가득해서 좋아하는 에세이입니다.
제목은 '망원동'이지만, 사실 망원동은 대표격으로 제목에 쓰였다 뿐이지, 망원동 인근의 동네가 더 많이 나옵니다. 과대포장이 아니라 과소포장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 만큼. 읽다보면 <아무튼, 망원동>보다는 <아무튼, 망원동성산동서교동동교동신촌>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신촌에는 볼드 처리를 해야 합니다. 이 책에는 신촌 얘기가 정말 많이 나오거든요.
신촌 로터리에서의 2002 월드컵 응원, 신촌 빨간 거울 앞에서의 만남, 연세대학교 공학원의 순두부찌개, 신촌기차역의 민들레영토... 읽는 내내 어! 여기! 나도 아는! 어! 이거! 나도 했던! 어! 이거! 나도 먹었던! 이라는 감상이 튀어나옵니다. 신촌에서 몇 년 지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마 저와 비슷한 대목에서 비슷한 감상이 어! 어! 하고 나오실 것 같은 책입니다.
이미 내가 다 아는 얘기인데, 내가 다 해봤던 얘기인데, 뭐가 재밌다고 전 이 책을 다 읽고 이렇게 감상평까지 쓰고 있는 걸까요? 저도 그 이유를 몰랐는데 리뷰를 쓰다보니 알겠습니다. 나만 이 동네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나는 여기에 대해 이런 추억이 있는데 다른 사람은 이런 추억이 있었구나. 내가 좋아했던 동네가 과거에는 이랬구나. 이 책이 저에게 준 건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시간.
그래서 저는 <아무튼> 시리즈의 에세이들을 좋아합니다. 제목만 봐도, 이 에세이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건지 알 수 있거든요. 웬만하면 자신의 경험에서 그 '소중한 것'에 대한 얘기만 하니, 다른 TMI를 읽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내가 원하는 분야에 대한 공유와 공감만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에세이라고 하겠습니다.
서점가의 에세이 열풍은 쉽게 사그러질 것 같지 않아요. 그렇다고 저자의 흥미없는 일상 이야기를 몇 십 페이지씩이나 보고 싶지도 않고요.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아무튼>시리즈가 재미있게 읽히실 것 같습니다. <아무튼, 피트니스>, <아무튼, 쇼핑>, <아무튼, 편의점>, <아무튼, 예능>, <아무튼, 소주>... 이 중에 네가 좋아하는 게 하나쯤은 있겠지! 싶은 기획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 중에 좋아하는 게 하나쯤은 있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