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환승, 73세, 털모자를 뜨시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성함이랑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내가 이름이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아요. 버스 타면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하잖아. 내 이름은 버스에서 계속 부르고 다니는 거야. 내 이름이 이환승이야. 내가 이씨고, 버스 타면 환승입니다. 병원에도 가면 내 이름을 기억하더라고. 내가 45년생. 닭띠. 한국 나이로 73살.
1층은 가게시고, 2층은 할아버지 댁이신가 봐요. 집이랑 직장이라 가까우셔서 좋으시겠다.
여기 처음 시작할 때 내 꿈이 아래층 가게 하고, 위층이 집하고 하는 거였어. 안양에서 하다가 수원으로 내려오면서 그런 가게 하나 하면 성공한 거 아닌가 생각했지. 이렇게 된 게 3년? 지금 가게 하고 집.
이 거리에 사시는 분들은 옛날이 그립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할아버지는 어떠세요?
앞에 있는 불교 전시장이 옛날에는 서점이었어요. 문제집, 전과 팔던 데예요. 처음에 여기 했을 때, 전과 달라고 두 줄씩 서서 열 권만 더 줘요. 다섯 권만 더 줘요 그랬어요. 그렇게 성업을 했었는데 그 학교에서 시험 안 보는 걸로 바뀌고 장사가 안돼서 없어졌어요. 그때가 그립지 항상.
제가 무궁화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되나요? 간판에 '무궁화'라고 적혀있길래요. (웃음) 원래 예전에는 문구점을 운영하셨다고 들었어요. 뜨개질을 새로운 취미로 가지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문방구로 시작했는데, 문방구도 자꾸 없어지고. 학교가 옆인데, 방학이 있잖아요. 방학에는 오시는 분들도 별로 없고 한가하니까 무료한걸 어떻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털실이 있으니까 이거다 싶었지. 우리 안식구 보고 뜨는 것 좀 알려달라 했지. 겉뜨기 하고 안뜨기 하고 배워서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어. 목도리를 뜨기 시작하고 하루에 몇 개 떠보니까 하루에 잘 안 끝나. 이틀, 삼일 떠야 돼. 그러다가 우연히 할머니가 지나다니면서 모자를 쓰고 가시는 걸 보고 모자를 떠야겠다 하고 생각했는데, 처음에 모자 뜨기 시작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어. 아주머니한테 물었는데 잘 안 가르쳐주더라고. 내가 조금씩 그냥 해보니까 하다 보니까 되더라고. 뜨다 보니까 재미를 느꼈어. 아주머니나 문방구 하는 분들이 남자가 쪼잔하게 뜨개질을 한다고 그만하라고 하더라고. 큰소리로 그게 뭐냐고. 그래서 나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할머니, 할아버지 다 뜰 수 있는 건데 뜨개질 해보지도 않고, 남자 여자 구분하지 말라고. 이게 얼마나 좋은 건데. (웃음) 이제 2,3년 됐어요. 그리고 내가 잘은 못해도 이런 걸 좋아해. 좋아한다 하면 잘은 못해도 우선 해. 예전에 집에 있을 때도 그냥 그릴 줄도 모르는 거 그리고 그랬지. 내가 뭐 활동적이다 이런 것 보다 조용히 하는 걸 좋아해.
직접 뜨신 모자가 꽤 많겠어요.
1년에 150개 정도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4,500개? 이게 실로 뜨는 거니까 만만치 않게 들더라고. 실도 거래처에서 조금씩 보내주기도 하고, 우리 여기 팔던 거 가지고 뜨기도 하고.
뜨개질을 하시는 것도 하루 일과 시겠지만, 요즘 하루는 어떻게 보내세요?
다른 집들은 다 전화로 주문도 받고 배달도 하고 그러는데, 우리는 배달도 안 하고 주문도 안 받고 오면 팔고 아니면 말고. 그냥 장사는 편안하지. 그리고 여기 문 열고 꽃나무에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 주기도 하고 손주도 봐주고 하니까. 조금 전에 장미 콩쿨 마저 시들어있길래 손 봐주고 벌어진 것도 묶어두기도 하고 나무 한쪽 모퉁이에 있으면 잡아두고.
오늘은 뭐 뜨셨어요?
뜨던 모자? 여기 모자 두 개. 색을 바꿔서 떠보려고. 이게 쉬운 것 같아 보여도 쉽지 않아.
잠깐 이야기 나누는 동안 벌써 한 줄 뜨신 거예요?
기본적으로 틀을 만들어 놓은 거야. 지금부터 이제 한 단, 한 단 올라가는 거야 이제.(웃음)
벌써 동그란 틀이! 그 동그란 틀은 뭐예요?
처음에는 목도리를 떴는데, 목도리를 뜨면 판판하게 떠나가잖아요. 근데 이게 동그랗게 뜨기 시작한 게 어느 날 뜨다 보니까 모자를 떠볼까 하고 싶어서 돌려 뜨면 되겠다 하고 떠보니까 이렇게 동그랗게 되더라고.
뜨개질을 하셔서 그런지 손이 고우세요.(웃음)
우리 집이 워낙 그래요. 우리 아버님은 예전에 철공소 하셨는데 워낙 거친 일을 하셨는데도 식구들이 다 손이 고와요. 그래서 어디 나가면 햇빛 안 쬐고, 피부가 하얘가지고 그런 말씀들 많이 하시지. 곱다고. 아이들도 일을 안 시킨 애들처럼 거칠지 않고 고우니까.
털모자는 대부분 겨울에 많이 쓰는데, 여름에 쓰는 모자도 뜨시나요?
털실이기 때문에 여름 모자는 가는 실로 떠드려야 되는데 우리 집 실이 마땅한 게 없어. 가는 실로 뜨기 때문에 뜨기 쉽지 않지. 어떨 땐, 가끔 가게에 오시는 분들한테 이렇게 챙있는걸 선물로 드리면 부담이 있어요. 챙이 짧다. 더 넓게 해줄 수 없냐. 챙이 짧다. 길다. 이렇게 요구 사항이 많으세요. 그러면 고쳐달라고 하는데, 난 잘 못 고쳐. (웃음)
뒤에 걸려있는 모자들이 보이는데, 카메라로 찍으니까 알록달록하니 예쁘네요. 손님들이 지나가시다 모자 보러 많이 오실 것 같아요.
여기 와서 보시고 저 모자 좀 쓸 수 없냐고 하시거든. 할아버지, 할머니 오시면 하시면 돼요 하고 보내드리지.
손님이 지나가다가 시골 가는데 모자 하나 주세요 그래요. 그 이전에는 이 동네도 명절 때는 괜찮았어요. 여덟 명씩 쓰고 다니시고 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우리 식구끼리 하고, 한 두 명 남의 집 식구 쓰고 그래요. 우리 집은 찾아주면 수세미라도 주고, 모자라도 하나 주고 그래야 되는 게 뭐냐면 그래야 기억에 남는다고. 동네 분이 지나가다가 인사하시면, 모자나 수세미라도 준다고. 왜 주냐면 나한테 오는 게 고마움이거든. 동네 사람들도 그냥 지나가면 반가운 거고, 들어오면 더더 반가운 거고, 만지면 더더더 반가운 거구, 사가면 더더더더 반가운 거라고. 안 사가셔도 되니까 골목 좀 많이 이용해 주세요. 그게 당연한 거라고. 여기 지나가다 필요하면 살 거 아니야.
저는 할아버지처럼 가만히 앉아서 뜨개질 이런 걸 잘 못해요. 할머니한테 배우려고 시도했다가 제가 너무 못해서 결국 포기했거든요. (웃음)
시작은 쉬운 것부터 해야 돼. 모든지 쉬운 것부터 해야 돼. 그게 짜증이 안 나는 거야. 처음부터 어려운 걸 시키면 초장에 진력이 나니까 벗어난다고. 애들한테 잘한다 잘한다 하고 키워야지 처음부터 야단치고 몽둥이질하면 거부감을 일으킨다고. 젊은이들이 연애할 때 부모들이 반대하고 그러면 성립이 돼. 둘이 이어진다고. 안된다고, 못한다고 할수록 사람 마음은 더 하고 싶어 지거든. 그런 식으로 마음이 중요한 거야.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거지.
그렇다면 뜨개질을 잘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야 할까요?(웃음)
이 뜨개질은 이게 집중 안되면 안 되니까.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돼.(웃음)
항상 찾아올 때마다 뜨개질하시면서, TV를 즐겨보시는 것 같더라고요.
요즘 TV 보면, 자기들 욕심들로만 가려고 하는 거야. 같이 안으면 되는데 이렇게 움켜쥐고서 같이 어울리려고 안 그래. 그렇게 하면 젊은이라든지 일자리라던지 모든 게 풀린다고 생각해. 나라에서 기득권 가진 사람, 회사에서 기득권 가진 사람들이 꼭 움켜줬던걸 자연스럽게 놓아야 되는데, 그걸 안 하니까 안 풀리는 거야. 이게 지금 정치고 경제고 이런 원리라고. 거기서 하나도 안 벗어나. 누구 하나만 건너면 다 육촌이래. 너도 나도 형제인데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같이 어울릴 생각 해야지. 자기들만 잘 먹고. 나는 장사도 안 돼도 남의 집거 탐내지 않아. 내 만족이다 살지. 더 팔려고 욕심부리지 않아요. 내가 물건 주는 사람들도 여기는 물건이 잘 팔리지 않으니까 공급 끝내야 되겠다고 하면, 난 욕심 없는 사람이니까 내 몫이 그거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그 사람한테 고맙다고 하는 거야. 그렇게 살아야 돼. 여기가 내 한계고 내 만족이라고.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렇다고.
네, 저도 많이 내려놓아야겠네요. 욕심 많이 부리지 않고, 즐겁게 살아야겠어요. 말은 쉬운데. (웃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웃을 위해 내가 뭔가 보탬이 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구슬도 꿰어야 보배인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이게 실타래 밖에 안되는 거 아니야. 내가 이걸 꿰면 보물이 되는 거 아니야. 그게 또 예술가의 일이에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물로 만들어 내는 거예요. 내가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거야. 내가 손주한테도 그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라고. 짜증내면 뭐할 거야.
이전에 보던 풍경도 사라지고, 직업도 사라지고 많은 것이 빨리 바뀌고 사라져 가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 뵈면 자신만의 시간과 리듬에 맞춰서 사시는 게 부러워요.
요즘 젊은 사람들 참 딱하다. 앞으로 당신들이 잘 살아가는 방법은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발명해 가지고 개척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 방법밖에 없어요. 잘 사는 길은 나라에서도 잘 해야 하지만, 본인들이 창조하거나 개척을 하는 게 중요하지. 그게 쉽지는 않지만 해야지. 답을 가르쳐주면 한방에 잘 풀리겠지만 지금 답이 있나. 계속 찾아 헤매야지. 우리는 좋은 말도 할 줄 모르고, 지식도 가진 것도 별로 없고 그러다 보니까 했던 말 되뇌고 되뇌고 하는 거지.
오늘 뜨개질 인터뷰였네요.(웃음) 다음번엔 제가 이전에 실패했던 뜨개질 도전하러 찾아올게요. 감사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 봄이었는데 이제 가을이다. 인터뷰 이후에도 몇 번 할아버지를 찾아뵈었는데 할아버지께서 직접 뜨신 털모자 두 개를 선물로 받았다. 이제 곧 겨울도 다가올 테니 색이 고운 털모자를 게시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항상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고 나면, 그것을 쓸 때마다 선물 준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모자를 쓸 때마다 할아버지를 떠올리겠지. 감사한 마음.
영상 촬영/ 편집 현지윤
사진 촬영 박태식
제작 지원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과 수원문화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