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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Dec 27. 2023

제주 4.3 평화공원

겨울 제주

  




사실 겨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제주는 화려했다. 


길가 가로수로 먼나무의 새빨간 열매들이 지천이었고 

호랑가시나무 이파리는 여름철 윤기를 내뿜고 있었다. 

사철나무의 열매도 얼마나 크고 선명한지, 

곳곳에 피라칸사 열매는 따먹고 싶을만큼 풍성했다. 

하다못해 굴거리 나무의 이파리들도 붉은색을 매달고 서니 탐스러운 꽃처럼 보였다. 

작은 동백이야 말해 무엇하리, 


돈내코 리조트에 묵었는데 이내 성향이 길 끝나는 곳에 흥미가 있는 터라 

한라산 오르는 돈내코 탐방길로 운전해갔다.  

세상에 중산간을 조금 올라서니 그 위로는 거의가 무덤의 세상이었다. 

대한민국 지역 이름을 딴 무덤 동네들, 

무덤 동네를 여기저기 훠이훠이 돌다가 

내려오는 길에 울긋불긋 꽃동네를 만났다.

식물을 키우는 농원쯤으로 보였는데 문득 그 식물들이 사자들과 벗하며 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저리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는 게 아닌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꿈>속의 <복숭아 밭>이 생각났다.  

복숭아 나무를 베어버린 자리에 나타나는 나무의 정령들, 

그들이 추는 아름다운 춤,

피어나던 아름다운 복숭아꽃들,

그 아름다운 영화가 연상되던 곳      



제주 첫날, 4.3평화공원을 갔다. 

공원 가는 길에 노루를 볼 수 있는 생태공원이 있어서 들렸다. 

제주에서는 노루가 가장 큰 야생동물이라고 한다. 

수노루에게는 귀여운 왕관처럼 자그마한 뿔이 있었는데 

그 뿔은 새해 이른 봄에 솟아나고 겨울에 떨어진다고.,

관찰원답게 아주 가까이서 노루를 볼 수 있었다. 

크고 맑은 눈, 그리고 귀여운 두 귀와 삼각형의 자그마한 얼굴, 전형적인 미인형이다. 

아름답고 생경하고 순수하고, 

세상에 노루 눈을 바라보니,   

악다구니 넘치는 도시에서 살다가 툭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박하를 삼킨 것처럼 속이 싸 해지는 느낌,

그러네. 니 눈이 꼭 바다네,

너는 나에게서 두려움이나 느끼겠지만 나는 너를 통하여 이리 마음이 시원해지는구나.

네가 바로 아름다운 자연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구나.

노루에 대한 만화를 영상원에서 봤는데 

막 태어날 때는 하얀 얼룩이 있다가 삼개월쯤 지나면 없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짝짓기를 할 때면 계속 달리기를 하며 애태우는 암컷, 

뒤를 따르는 숫컷, 

암컷이 지칠 때가 짝짓기를 하는 시간, 

그러니 노루는 남편을,

남편보다는, 새끼의 아빠에 대한 테스트를 하고 또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없는 지혜라고나 할까, 


평화공원 가는 길에 노란 리본이 보였다. 세월호 추모관.

저절로 핸들이 그리 틀어지고

아무도 없는 자그마한 건물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비극이 어떻게 생길 수 있을까? 

그 싱싱한 아이들이 바닷물 속에서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시간이 흐를수록 더 참혹해지는 역사가 있다.

가슴이 더 뛰고  더 쓰리고 더 분노하게 되고 세월호가 그렇다. 

그러니 그 생때같은 자식들을 잃은 부모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4.3 평화공원엘 갔다.

생각보다 훨씬 더 넓었다.  

월요일이라 실내 박물관은 문을 닫았고 공원 안을 천천히 걸으며 상징 조형물 등을 살펴봤다. 

우선 선명한 동백꽃 한 송이 

4.3 그 무서운 시간에 덧없이 툭 져버린 생명을 상징하는 꽃이

땅 위에 아주 커다랗게 피어나 있었다.

원래 동백은 시들지 않고 툭 져내려서 선비의 고결함과 결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강요배 화가가 동백꽃을 4.3 생명들로 직유했다. 

싱싱한 채로 덧없이 져내린 동백꽃은 그 사건과 흡사하다. 

곱기도 하네, 쌩뚱맞아서 더 고와.


1989년에 해체된 베를린 장벽 일부가 서 있었다.

벽이 무너지고 

무너진 벽의 작은 지체는 희망을 담고 이 먼 나라까지 이사를 온 것이다. 

하긴 월령리 선인장 나무들도 해류를 따라 먼길을 걸어 걸어 오지 않았던가. 

위령광장의 위패 봉안실은 사람의 한을 바람화 시킨걸까

 부채꽃 모양에 검은 선이 뚜렷했다.

가까이 가보니 상당히 넓은 사이를 두고 함께 있는 조형물이 멀리서 하나처럼 보였던 것,  

위령탑을 거점으로 둥글게 서 있는 각명비는 

올 가을 워싱턴에서 보았던 코리아 메모리얼 파크를 연상하게 했다. 

빛나는 젊음과 생명을 낯선 나라에 줘 버린 이들의 이름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적어 있었다.

내가 지금 이 삶을 누린 것도 그들의 생명 탓이라는 생각에 정말 울컥했던 기억,

그들의 죽음이 얼마나 헛되었다는 것을, 

그러나 헛되지 않다는 것을 양가적으로 느끼게 했던 각명비 위로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까마귀들이 수도 없이 물려왔다 몰려갔다.

그들이 지르지 못하는 소리 대신 울어주는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이들을 위한 행방 불명인 표석도 있었다.     

제주의 돌담은 달팽이처럼 굽이치고  

그 위에 웡이자랑소리 라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민요인 구슬픈 자장가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비설(飛雪- 쌓여 있다가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눈)이 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품고 눈 위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실제 군인들에게 쫓겨 두 살 난 젖먹이 딸을 등에 업은 채 피신 도중 총에 맞아 희생된 

봉개동 주민 변병생 모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기념 조각이다.


여전히 세련되고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4.3 평화공원은 그랬다.  

이름대로 평화로웠으며 조각작품들은 깊은 사유와 응어리진 한을 품고 나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말 죽음 곁에서 살아가고 있다.

죽음을 보고 만나고 보내며 

그러면서도 죽음을 멀리하며 어느 순간 추앙하기도 한다.

박물관에도 사실 죽음에 대한 의식이 참 많다.

어떻게 살았냐는 것보다 죽은 뒤에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죽음도 산자의 몫이라는 것일까, 

무지막지한 역사인가.....하면 

여전히 지금도 무지막지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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