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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저리 산행

by 위영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어릴 때도 몸으로 하는 일에 느리고 굼떴다.

운동회 날 엄마가 새로 만들어준 부르마(다리 쪽에 고무줄을 낀 반바지, 검색을 해보니 블루머의 일본식 발음)를 입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좋았지만 여러 가지 순서들이 달갑지 않았다.

특히 달리기,

분필로 그려진 흰 줄 위에 모두 나란히 서고 선생님이 작은 깃발을 들고 있을 때,

그 깃발이 내려올 때,

순간적으로 차고 달려나가야 하는 그 찰라,

그 순간에 뛰는 가슴소리 때문에 몸이 흔들거리지 않나 여겨질 정도였다.


소풍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내내 틈만 나면 가는 곳이 ‘다원’이었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꼭 한번 가고 싶어 하는

초록 세상의 대명사 ‘보성 녹차밭’이란 명소가 되어 있지만

어린 나이의 내게 무슨 초록이 보였을 것이며

사실 그때만 해도 세상은 거의 초록이지 않았을까,

직선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곡선도 아닌 것이 잘 정돈된 차나무의 선이 보였겠는가,

아름찬 삼나무 길 같은 것이 뭬 좋았으랴,


소풍의 백미 보물찾기에서 도대체 한 번도 보물을 찾아본 적이 없으니

소풍에 관한 기억에서는 지루하고 힘든 ‘무서운 길’ 밖에 없다.

다음날이면 다리가 아파서 정말 걷기 힘든,

지금도 나는 자갈이 섞인 그 신작로 길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차 하면 금방 뒤처져 반에서 이탈되고 다시 정신 차려서 걸어야 같은 반 아이들과 걷게 되는,

십리 정도 되는 신작로 길은

왜 그리 ‘걸어도 걸어도’ ( 아 혹시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도 나와 같은 경험이 있어서 이런 영화 제목을 붙인 것일까) 끝이 나오지 않았는지,

타박타박 걸어가는 내 발소리는 상기도 귓가에 선연하다.


그래선가,

굳이 성격의 여러 갈래 중 굵직한 가지 하나를 들어보라면

나는 ‘목적 지향’이 아닌, ‘과정 지향’ 속에서 만족을 얻는 소심한 성격이다.

언저리 산행을 즐기는 것도 그렇다.

같이 산을 오르는 남편이 봉우리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시간

나는 돌 틈에서 솟아나는 돌단풍을 만나서 사진을 찍고

한 뼘 만큼 솟아나서 꽃을 피워내는 애기나리랑 눈 맞춤하며

계곡이 지척인데도 바위틈에 솟아나 비실거리며 자라나던 정향나무에 묻는다.

힘들지?

가끔은 나무들과 만나서 그들의 살을 슬쩍슬쩍 만져보기조차 하니

이런 섹시하고 근사한 비밀의 산행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정상등반이란 목적 아래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영화를 봐도 느리고 완만한 영화,

작은 것에 오래 앵글을 들이대며 아무것도 아닌 풍경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

거대한 액션이나 환타지,

감독만의 독특한 화법이 없더라도 평범한 인생을 다정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좋다.


뒤돌아보니 내 삶도 딱 그러하다.

도무지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지 않다.

목표를 향해서 질주하기는커녕 목표를 세운 적도 별로 없다.

좋아하는 글을 그렇게 써대면서도 유명 작가를 목표 삼아 정진한 적도 없고

남과 다른 삶을 꿈꾼 적도 없다.

부자가 되어야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

평생 가계부 한번 써본 일이 없다.

하다못해 아이들에게조차 거의 방목이었다.

하나님 은혜로 아이들이 좋은 자리에서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을 보면

다른 엄마들처럼 정성 들여 밀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살짝 아쉬운 생각이 들 때가 있긴 하다.


오늘도 아침 산책길의 해찰.

잠시 흩뿌린 빗방울을 담고 있는 남천 나뭇잎에

크고 작은 수많은 물방울이 맺혀 있는 모습이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길가에 피어 있는 자주 달개비를 보며 아주 어린 시절의 본가를 떠올렸다.

장독대 옆에서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던 꽃들,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3개고 노란 수술은 6개, 수술대에 보라색 잔털이 수북하다.

아침에 피어 오후에 시드나 이리도 고우니

주의 궁전에서의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천날보다 낫다고 한 말씀에 대한 웅변이다.

거대하거나 위대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작아서

창조의 섭리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 작은 것들 앞에서 기쁨과 평안을 얻는 시간.


꽃의 적막을 깨트리며 요란한 선거운동 소리가 들려온다.

50여 년 전 신동엽 시인이 꿈꾸던 대통령.

광부들 뒷주머니에 러셀 하이데거 헤밍웨이가 꽃힌 세상,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다 했던가.

석양이면 시인의 집에 놀러 가던 석양 대통령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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