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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rang Dec 10. 2024

다시 만난 세계, 다시 만난 세대

      

바자회 준비 때 일이다. 판매할 의류를 후원해 달라고 한 업체에 연락했다. 이 년 전에도 많은 옷을 보내주신 곳이었는데 올해도 옷을 보내주실 수 있냐는 부탁 전화였다. 사장님은 일정을 물어보시고는 흔쾌히 주겠다고 하셨다. 약속한 날 사장님은 160여 박스를 1톤 트럭 2대에 싣고 오셨다. 짐을 내리고 차를 한 잔 대접하며 감사 인사를 드렸다. 대화 중에 사장님은 올해 나이가 칠십이라면 이 일도 올해까지 한다고 하셨다. 더 도와주고 싶어도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곤 안 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흰 봉투를 꺼냈다. 후원금이 들어있었다. 옷을 보내주신 것도 고마운데 후원금도 주시냐며 또다시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요즘 젊은 사람들 보면 지금이 우리나라는 정점인 것 같아. 그런데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희망이 보여.”      


백발의 노(老) 사장님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한 표정은 커피 때문인지 나라 걱정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오는 길에 노(老) 사장님의 말을 곱씹었다. 젊은 세대가 만들어갈 우리나라 미래가 밝아 보이진 않는다는 냉소에 내 생각도 얹었다.     

맞아, 어찌 보면 지금이 우리나라의 최전성기일 수도 있겠다. 이미 퍼질 대로 퍼진 k 열풍도 영원할 리 없고, 기술 격차도 줄어드는 마당에 수출도 현재 수준을 유지하기엔 어려울 수 있고, 화이트칼라 선호로 제조업은 무너질 테고, 중간 지대가 사라진 경제 계층은 양분될 테고, 힘을 잃은 사회는 더 늙어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를 살아갈 세대는 위기의식이 없어 보였다.


요즘 젊은 세대는 혼자가 익숙한 이기주의,  타인을 외면하는 부족한 연대 의식, 뜨겁지만 금방 식는, 꾸준함을 지루해하며 호기심과 법의 경계를 넘나들고, 현재만 즐기는 쾌락주의, 부만 쫓는 물질주의, 안 통하면 거부하는 소통방식, 몰랐다고 뒷걸음질하는 회피, 익명에 숨어 난사하는 언어 총질, 권리를 혐오로 바꿔 치는 남녀 갈등. 끝없이 열거되는 문제에 절망이 엄습했다. 우리 아이의 세상은 어찌 될까. 암흑 같은 세상을 떠올리며 주름이 접히도록 눈을 감았다. 어쩌면 노(老) 사장님의 생각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12월 3일 수요일 밤 10시 30분.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키기 위해 12월 7일 토요일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열렸다. 수많은 국민은 국회의사당을 둘러쌓았고 여의도 일대에 모여 목 놓아 외쳤다. 질서 있고 평화로운 집회였다. 사람들은 촛불을 들었다. 몇 해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수많은 국민이 사용했던 촛불은 평화로운 집회의 상징이자 뜨거운 열망을 표현하는 도구다. 이른바 촛불 집회다. 나라의 큰 격변이 예고될 때 우리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이날도 그랬다.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이날은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하고 무서운 사태를 겪고 이에 맞는 대가를 바라는 집회이니만큼 과격하고 비장한 집회가 될 거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어느 집회보다 활기찼고 웃음이 넘쳤고 화려했다. 분위기를 주도한 건 젊은 세대였다. 흔히들 MZ 세대라 불리는 세대. 정치 무관심층으로 불리던 세대였다. 그들은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촛불 대신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할 때 사용하는 led 야광봉을 들었다. 처절한 가사의 민중가요 대신 K-pop으로 일컫는 신나는 가요를 불렀다.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며 몸을 흔들었다. 의결정족수 미달로 탄핵소추안이 폐기된 순간에도 삐딱하게 를 따라 부르고 아파트 노래 박자에 맞춰 투표해 를 외쳤다. 그들은 울분의 순간에도 흥을 잃지 않았다. 눈물은 노래로 토해냈고 실망은 야광봉에 실어 하늘을 찔러 댔다. 정치에 관심이 없을 거라던, 나라 걱정을 안 할 거라던, 계엄의 공포를 모를 거라던, 다음 세대 염려는 하지 않을 거라던 그 세대가 수없이 모여 그날의 집회를 주도했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듯, 분노가 꼭 과격할 필요는 없다는 듯 그들의 방식으로, 그들의 문화로 집회를 만들어갔다. 그들은 정치 메시지로 사람들을 모으지 않았다. 지역, 정치 성향, 지지 정당 등 기존 방식을 넘어 취미나 관심사가 같은 사람을 모아 광장을 찾았다. 이는 우리 사회는 특별한 개인들이 모여 이루는 것이지 구성된 사회 안에 개인이 속하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 같았다. 어른스러웠다.


노(老) 사장님의 걱정은 틀렸다. 우리나라는 아직 정점이 아니다.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갈 것이다. 나는 젊은 세대를 통해 확신했다. 그들의 만들어가는 세상은 더 세련되고 더 도전하고 더 이타적일 것이며 덜 폭력적이고 덜 혐오하고 덜 거부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세대 간의 걱정은 내리 걱정이다. 윗세대에서 아랫세대로, 매번 비슷한 걱정으로. 그 걱정은 자식 걱정하듯 근심으로 표현되는 애정과도 같다. 하여 불안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걱정에 기분 나쁠 필요도 없다. 이젠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주어진 시대에 충실히 사는 것, 그 방식이 다르더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임을 알기에.


나는 희망이 있는 세계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살아갈 세대도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난 세계, 다시 만난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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